“향토기업 자부심 끝까지 지켜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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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기업 자부심 끝까지 지켜야죠”
  • 김진오 기자
  • 승인 2009.10.2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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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기 흥업백화점 사장

▲ 김명기 흥업백화점 사장.
대형할인점에 SSM, 유명 쇼핑몰, 물밀 듯이 밀려오는 브랜드의 홍수…. 유통업계에서 향토의 맥을 지키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유통 분야에서 지역경제란 없다’라는 말이 이심전심 공감대를 얻고 있을 정도다.

유통업계에서 ‘향토’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몇 안되는 곳중의 하나가 흥업백화점이다. 비록 법정관리를 받고 있지만 전국적으로 시야를 넓혀도 대구백화점을 제외하면 유일한 향토 백화점이다.

언론과의 접촉, 더욱이 ‘카메라 울렁증’이 있다고 손사래를 치는 김명기 흥업백화점 사장(정확히 표현하면 법정관리인)을 그가 즐겨 찾는다는 청주 성안길 학천면옥(043-252-3111)에서 만났다.

20년이 넘도록 ‘흥업맨’으로 전성기를 지켜봤고 어려운 시절 최고경영자의 위치에서 느끼는 심정이야 가늠하고도 남지만 그래도 그는 이렇다저렇다 말을 토해내지 않는다.‘고객이 만족하도록 최선을 다할 뿐’이라는 게 전부다.

뜨끈한 국물이 좋다는 김 사장. 그래서 그는 이곳 학천면옥 칼국수를 즐겨 찾는다. 부드러운 국수발이지만 고기고명을 얹어 제법 든든하다고. 여기에 어른 주먹만하게 빚어 쪄낸 왕만두를 곁들이면 찬바람이 부는 날 점심으로는 최고란다.

그는 백화점이 만두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먹음직스럽게 예쁜 모양과 윤기가 흐르도록 피를 만들어야 눈길이 가지만 진짜로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있는 만두소라는 것.

고객의 입맛에 맞는 만두소를 찾기 위해 손님의 얼굴을 살피고, 만나 이야기 하고 의견을 듣는 일이 귀찮아서는 결코 안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우려낸 녹차 컵을 들고 매장의 손님들을 만나러 나선다. 후문 주차타워 대기실은 그가 즐겨찾는 고객과의 만남의 장. 그곳에서 차를 나누다보면 자연스럽게 고객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고 그렇게 반영된 것도 여러 가지다.

또 한달에 두 번 300여 직원들과 함께 성안길 구석구석 쓰레기를 줍는 정화활동도 거르지 않는다. 아침 8시. 상점들이 문을 열기 전이라 보는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한번도 걸러본 적 없는 백화점의 공식 행사다.
흥업백화점의 이미지 제고를 위한 것도, 향토백화점이라는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다.

“처음엔 거창하게 주민과 함께 하자는 취지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습관이 돼 버렸다”는 그의 말처럼 월중 행사표에 가장 먼저 적어 넣는 것이 이 날이다.

그는 “고급스럽게 차린 비싼 음식보다 칼국수에 왕만두처럼 소박하게 즐길 수 있는 음식이 좋아요. 흥업백화점도 그런 매장이 됐으면 해요. 어차피 고객들 모두 이웃사촌인데 억지로 꾸미고 포장한들 그 속을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지난해부터 경기가 침체에 빠져들고 있지만 흥업의 매출은 크게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오히려 최근에는 한자리수지만 증가하고 있어 고객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다 어렵죠. 조금만 눈을 돌리면 여기저기 브랜드들이 즐비한데 나만 잘 되겠다고 하면 안되잖아요. 그 가운데 고객들이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살피고 함께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습니다.”

‘향토기업’이라는 최소한의 자부심은 결코 잊지 않겠다는 김명기 사장의 이 한마디는 눈 앞의 이익에만 급급해 물량공세를 마다않는 대형 유통업체에 던지는 소리없는 항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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