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년맞은 옥천신문 ‘새로운 역사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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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년맞은 옥천신문 ‘새로운 역사 쓰다’
  • 이승동 기자
  • 승인 2009.10.22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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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부수 공개 등 타 신문사에 롤 모델로 급부상
언론계 촌지수수 관행 공론화해 저력 보여주기도

도내 주간신문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옥천신문이 창간 20돌을 맞았다. 이 신문은 5년 연속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대상 신문으로 선정되며 전국 최초로 유가부수 공개, 인터넷 사이트 유료화 등을 통한 신문발행으로 지역주민들의 신뢰도가 여느 신문보다 두터운 것으로 유명하다.

이와 함께 전국 지역 일·주간 신문사에 롤 모델로 관심을 모으며 풀뿌리 지역신문의 모범적인 운영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옥천신문은 1989년 사회민주화와 지방자치제 실시의 염원을 안고 탄생했다.

1987년 지역의 청년시민단체가 발행한 소식지가 모태가 돼 1989년 1월에 창간준비위원회를 발족하고, 9월30일에 타블로이드 배판 16면의 창간호를 발행했다.

창간 자본은 한겨레신문의 모델을 따라 주민 주 모집 방식을 채택해 현지 주민과 출향 인사 226명이 주주로 참여했다.

   
▲ 옥천신문의 발자취를 보여주는 신문에는 20년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

옥천신문의 창간
옥천신문 이안재 대표는 “당시에는 주민들 사이에 지역신문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았기 때문에 불과 5,000만원의 자본금 모집도 그리 쉽지는 않았다”며 “단 한 번도 신문발행에 있어서 소홀 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창간 다음 호부터는 타블로이드 배판 4면으로 발행하다 1992년 5월말에 8면으로, 1994년 10월초에 12면으로, 그리고 1997년 10월말에 다시 16면으로 증면하며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창간 초기에는 홍보용 무가 신문으로 배포됐지만 1990년 1월부터 유료로 전환됐다. 이후 1995년 유가 부수가 500부, 1998년경에는 유가 부수 1000부를 돌파하고 2005년  유가 부수는 3,300여부 2009년 현재 유가부수는 4714부다.

한편 옥천신문은 지역신문발전법에 근거한 지원에 첫 회부터 내리 연속 선정되는 등 지역신문의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옥천신문은 창간 직후부터 권력에 대한 감시견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각 관청과 유착돼 있던 기존의 제도권 언론과 확연히 다른 자세를 보였다. 소속 기자들은 그 동안 자치단체에서 관행적으로 지급하던 촌지를 거부하고, 1996년에는 회사 차원에서 계도지 예산도 거부했다.

계도지 예산 거부를 계기로 1997년에는 옥천군에서는 계도지 예산이 폐지되는 등 언론개혁의 작은 성과를 일구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당시에 거의 관행화돼 있던 각종 언론 관련 비리를 기사로 크게 다뤄 공론화시키기도 했다. 실제로 옥천신문은 나눠주기 식으로 이뤄지던 군 홍보예산의 문제점과 아울러 군의 언론계에 대한 뿌리 깊은 촌지수수 관행을 폭로하며 옥천신문만의 저력을 보여줬다.

또한 부적절하게 이뤄지고 있던 언론의 불합리한 관행에 대한 지속적인 보도를 통해 지역언론계의 정화를 촉구하는 한편 지역의 각종 권력기관에 대한 철저한 감시보도와 지역단체 활동에 대한 충실한 보도를 통해 공공영역의 구축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충북도의회 이규완 의원은 “옥천신문은 거대 미디어의 변방이었던 옥천, 아니 ‘지역, 지방’을 당당히 삶의 뿌리가 박힌 곳으로 복원시켰다”며 “옥천신문이 이 나라 풀뿌리 지역언론에 끼친 영향과 공로는 한국언론사에 길이 기록되고도 남을 것이다”라고 극찬했다.

언론개혁의 이정표 ‘옥천신문’
한편 옥천은 언젠가부터 ‘언론개혁의 성지’로 각광받고 있다. 옥천신문 백정현 취재부장은 “조선일보를 비롯한 거대언론이 사회변화에도 아랑곳없이 언론개혁과는 거리가 먼 행태를 보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제하 강점기에는 반민족 친일행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해방 후 한 마디 사과도 없이 민족지로 둔갑한 사실을 주민들에게 밝혀주기 시작하면서 개혁의 성지로 부상했다”며 “이 같은 사실을 바탕으로, 지면 광고와 칼럼 등에 조선일보의 반성과 민족정기의 회복을 꾸준히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활동을 통해 ‘조선일보바로보기 옥천시민모임’이 꾸려졌고, 옥천이 언론소비자 운동의 새로운 전형을 연 고장으로 부각됐다. 언론바로보기 운동을 통해 주민들은 언론의 방향성에 대한 의식을 넓힐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백 취재부장은 “결국 언론이 올바로 서야 민족정기를 살리고, 주민들에게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독자들에게 좀 더 솔직하고 투명한 언론이 되도록 강제하는 한편 옥천신문 스스로도 채찍질을 통해 건강성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이다”라고 덧붙였다.

옥천신문은 유료 부수를 가감 없이 공개하는 신문으로 유명하다. 백 취재부장은 “언론개혁은 독자들과 주민들의 믿음을 얻는 것부터 시작한다. 옥천신문은 독자에게 신문 발행 부수와 유가 부수를 정확히 공개하는 것이 투명한 경영, 언론개혁의 시작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공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신문은 지난 2001년부터 매주 신문 첫 면에 발행부수와 발송부수를 공개하고 있다. 이번 주 이 신문의 발행부수는 4750부이고 발송부수는 4714부다. 또 지난 20년간 지령 1000호의 기록이 담긴 DVD를 출시해 일반에 예약 주문판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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