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잣집 마당 쓸다 식구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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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잣집 마당 쓸다 식구가 됐습니다”
  • 이재표 기자
  • 승인 2009.11.2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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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명 국립청주박물관장

청주시 사창동 증평순대

김성명 국립청주박물관장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집착이 있다. 유수한 순댓집을 놓고 장소를 물색하다가 사직주공 재개발 현장 인근에 있는 증평순대(267-3458)를 낙점한 것도 내년 봄 6차선도로가 나면서 이 집이 머지않아 헐릴 예정이기 때문이다.

김 관장은 사진기자에게 세월의 더께가 덕지덕지 않은 식당 곳곳과 주인장의 익숙한 손놀림 하나까지 앵글에 담아둘 것을 당부했다. “찍지 말라”는 주인장의 말에 “30층 빌딩이 우리나라의 자산이 아니라 오래된 이 모든 것들이 더 소중한 자산”이라는 역설과 함께.

순대 한 접시와 구수한 국밥 한 뚝배기, 이 집의 또 다른 메뉴인 수제비까지 골고루 시켜놓고 오래된 얘기부터 실타래를 풀기 시작했다. 순대를 메뉴로 정한 곡절이 있었다. 남주동에서 보낸 청소년 시절에 외할머니가 장날마다 순댓국을 끓여 팔았고, 자신도 삐루(맥주)병을 잘라 만든 깔때기를 이용해 순대 만드는 걸 도왔다는 것이다. “피곤할 때 순대를 먹으면 포만감과 함께 심신이 안정된다”고도 했다.

김 관장은 1985년 학예사로 박물관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충북대 사학과에 77학번으로 입학한 김 관장은 입학 15일 만에 충북대박물관을 찾아갔고, 23일 만에 이융조 교수가 주도한 청원두루봉동굴 발굴에 참여했다.

현장이란 현장은 빠짐없이 쫓아다닌 것이 이 교수의 눈에 들었고 추천에 의해 2학년 때부터는 총무처에서 주는 국비장학금을 받았다. 김 관장이 특채로 학예사가 된 것은 장학금을 받은 것에 대한 일종의 ‘의무복무’였다. 김 관장은 이를 두고 “부잣집 마당을 쓸다가 부잣집 식구가 됐다”고 표현했다. 이 같은 마당쇠 기질이 오늘 그를 20여년 만에 관장으로 만든 것이다.


김 관장은 고향도 청주지만 국립청주박물관과 인연이 깊다. 1987년 국립청주박물관이 처음 문을 열 때도 개관 요원으로 1991년까지 일했다. 그 뒤 1998년, 2005년에도 청주로 발령을 받아 각각 2년씩 근무를 했다. 지난해 11월7일에는 드디어 관장이 돼서 금의환향했다. 농담인 양 던지는 얘기지만 김 관장은 청주에서 제일 높은 기관장임을 자처한다. 우암산 중턱에 박물관이 있고 관장실의 커다란 통유리를 통해 굽어보는 풍경을 생각하면 그럴듯한 얘기다.

재임 1년 동안 박물관을 찾는 연간 인원은 2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일단 청주에서 가장 넓고 아름다운 정원이 있고 복합문화공간으로 연간 40여 차례가 넘는 문화행사가 열리다보니 가까운 나들이로 이만한 장소가 없다. 김 관장은 그러나 “상설전시관을 찾는 사람은 방문객의 45%밖에 안 된다. 올해 연 5개 특별전조차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왕 대문을 열고 들어왔으면 현관문까지 열어 달라”고 당부했다.

청주박물관은 관람객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내년 5,6월부터 1년 6개월 동안 상설전시관을 완전히 뜯어고치는 리노베이션 계획을 가지고 있다. 기증실을 신설하는 등 내부의 면모가 완전히 달라진다. 이 기간 동안에는 상설전시관의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김 관장은 “이제 청주에도 박물관 후원회가 생길 때가 됐다. 그래야 공무원 조직에서 못하는 일을 할 수 있고 문화의 저소득층까지 향유층을 넓힐 수 있다. 내가 고향에 왔을 때 한 건 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다음에 누가오더라도 이제는 이를 공론화할 때가 됐다”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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