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최초 근대병원 시설은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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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최초 근대병원 시설은 어디?
  • 경철수 기자
  • 승인 2009.12.29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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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의료원 때 아닌 ‘최초 서양식 의료기관’ 논란
기독교사연 최지호씨 ‘소민의원이 최초 근대병원’

   
▲ 충북 최초의 근대식 병원 시설로 알려진 청주의료원이 최근 '충북 최초의 서양식 의료기관' 논란에 휩싸였다. 사진은 1913년 청주 중앙공원에 자리했던 청주의료원의 전신 청주 자혜의원 전경.
청주의료원이 때 아닌 충북 최초의 근대 병원시설 논란에 휩싸였다. 청주의료원은 개원 100주년이었던 지난 1일 성대한 기념식과 함께 충북개발연구원 정삼철 박사 등이 참여해 ‘청주의료원 백년 지역주민과 함께 하는 공공병원’이란 기념책자를 발간했다.

이 책에는 1909년 충청북도 관찰도에서 발간한 ‘한국충청북도일반’이란 사료를 인용해 구한말 개화시기인 1909년부터 실질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한 충북최초의 근대 병원 시설은 현 청주의료원의 전신인 청주 자혜의원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또 장로파 교회병원이 건축 중에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를 두고 충북기독교연구회 최지호 간사는 충북 최초 근대 병원시설을 자혜의원으로 정리하는 것은 논란의 여기자 있음을 지적했다. 충북 최초의 서양식 병원은 기독교 선교사들이 지은 소민의원(蘇民醫院)이란 주장이다.

청주의료원의 전신인 관립 자혜의원이 지난 1909년 8월21일(융희 3년)에 칙령 제 75호로 반포되어 전주, 청주, 함흥 등 3곳에 같은 해 12월 설립하려 했으나 예산을 확보하고도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충북기독교 의료선교 활동 1907년부터
반면에 일제강점기인 1907년부터 1941년까지 충북기독교의 의료선교 활동은 소민의원을 중심으로 왕성하게 이뤄져 왔다는 것. ‘백성을 살리는 집’이란 뜻을 담고 있는 소민의원은 민노아(밀러·1866∼1937) 선교사가 1892년 미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선교활동을 벌였던 시기와 맥락을 같이 한다는 설명이다.

사실 민노아 선교사는 1893년 민노아 학당(서울 경신학교)을 세우고 3대 교장을 지냈다. 주로 서울과 경기남부 지역의 선교를 담당했던 민 선교사는 1900년에 경기 남부지역을 맡고 있던 김홍경과 함께 청주시장에서 전도 활동을 벌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실제 충북대중원문화연구소 전순동 박사(역사교육과 교수)는 지난 2001년 9월 중원문화논집 5권을 통해 내 놓은 ‘일제시대 충북기독교의 의료선교 활동 청주 소민병원을 중심으로’란 연구 논문에서 1907년 민노아 선교사와 함께 한 널 의사 부부 등이 무료 진료실을 열어 진료활동을 벌였고 이것이 청주 자혜의원보다 2년이 앞선 것으로 명시하고 있다.

소민의원은 사실 1908년 민노아 선교사의 요청으로 미국 뉴욕에 살던 지인 던컨 부인이 병원 건축비 5000달러를 보내오면서 1910년 4월 건축 공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병원 집기류와 의약품, 의료진을 구하기 힘들었던 소민의원은 던컨 부인으로부터 추가로 2000달러를 지원받은 1911년 1월에야  비로소 던컨 기념병원(후일 소민의원)의 문을 열 수 있었다.

자혜의원 역사성 인정...소민의원도 중요
후일 청주제일교회에 소민병원 진료소가 다시금 문을 열면서 일신학원 내의 소민병원은 입원실로 활용되었다. 소민의원은 청주일신학원 내에 있는 양관 중 제일 서편에 있는 건물로 충북 유형문화재 제 133-6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학교의 양호실, 상담실, 선교실 도서관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논란의 여지는 여전하다. 1985년 발간된 ‘청주근세 60년 사화’에선 우리나라 의료사업은 오래 전부터 한방에 의존해 오다가 융희3년(1909년) 한국정부의 칙령 제 75호로 영세민과 일반인의 치료를 목적으로 북부지방인 함흥, 중부지방인 청주, 호남지방인 전주에 자혜의원을 개설하게 되어 1909년 청주 서문동에 자혜의원이 설립된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청주의료원과 충북의사회 관계자는 “의료 선교활동 전부를 충북 최초의 근대병원 시설의 개원으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관보에 등재되어 간판을 달고 진료를 시작한 시점을 충북 최초의 서양식 의료기관의 개원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지호씨는 "충북 의료사를 연구하면서 청주 자혜의원을 떼어 놓고 말할 수 없다"며 "다만 소민의원의 발자취는 기독교 의료 선교사의 발자취로 충북 의료사 연구의 한 획을 차지하고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특히 소민의원의 전신인 진료소의 경우 선교사 널 의사 부부가 1907년 5월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3개월 동안 왕성한 진료활동을 벌였고 퍼비언스는 진료소에서 500명의 환자를 받아 2300회의 진료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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