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석 논란 속 언론, 소통·매개 역할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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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석 논란 속 언론, 소통·매개 역할 아쉬워
  • 충북인뉴스
  • 승인 2011.05.12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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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희 충북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국장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2주기를 얼마 앞두고 다시 노 전 대통령 추모 표지석이 논란이 되었다. 2년 전 시민들이 낸 추모성금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시민추모위원회는 표지석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표지석은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됐다. 당초 상당공원에 설치하려 했으나 보수단체들이 반대한다는 이유를 들어 한나라당 소속 시장은 표지석 설치를 외면했다. 상당공원 인근 수동성당으로 쫓기듯 옮겨졌던 표지석은 1주일 만에 오창의 한 농가 창고로 옮겨졌다.

그렇게 2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2년여 동안 아무도 노무현 전 대통령 표지석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 짧지 않은 시간인데 우리는 왜 함께 이야길 나누지 못한 것일까. 한나라당 소속 시장과 도지사도 선거에 졌고, 의회마저 민주당이 다수당이 됐는데도 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표지석은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지난 4월13일 수동 성당으로 옮겨졌고, 이튿날 <한겨레> 보도가 나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 표지석이 다시 수동성당 정원에 설치됐지만 교구청과 성당이 부담을 느껴 다시 옮겨져야 할 처지라는 내용이었다. <한겨레> 보도를 시작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표지석 관련 기사들이 쏟아졌다. 모두 같은 내용이었다. 수동 성당에 있던 노무현 전 대통령 표지석이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됐다는 식이었다.

언론은 시민추모위원회가 표지석을 어떤 절차를 거쳐 수동성당으로 옮겼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쏙 빼놓고, 교구청과 시민추모위원회가 마치 갈등을 겪는 것처럼 보도했다. 갈등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어떻게, 누가, 왜, 표지석을 수동성당에 다시 설치했냐’는 문제다.

당일 밤 시민추모위원회 사람들이 가져다 놓았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언론은 시민추모위원회에 왜 그렇게 했는지를 물어야 했다. 그래야 그 다음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나. 전후 사정을 뚝 떼어놓고 표지석이 다시 나왔지만 교구청에서 부담스러워한다는 식으로 보도할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수동 성당을 드나드는 신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도 의문이다. 하루아침에 다시 나타난 표지석도 당황스러웠겠지만 졸지에 표지석을 내쫓은 사람들이 돼버린 현실도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2년 동안 왜 얘기 나누지 않았나

혼란스러운 일주일이 흐른 후, 지난 4월21일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표지석이 사라졌다”는 <뉴시스> 기사가 인터넷을 달궜다. 이 기사에는 “20~21일 밤사이 감쪽같이 사라져 행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는 사진 설명이 달렸다. ‘사라졌다’는 표현은 분명 누군가 가져갔다는 걸 말한다. 누가 가져갔던 것일까. 제대로 취재하고 보도한 것일까. 듣자하니 20일 아침에 추모위원회 사람들이 표지석을 옮겼다 한다. 사라진 게 아니라는 걸 확인했다면 이 기사는 정정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기자는 이후 후속 보도에서도 ‘사라졌다’는 표현을 버리지 않았다.

시민추모위원회가 얼마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고 있는지는 나름 짐작할 수 있다. 어떻게 해서든 표지석 설치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도 헤아릴 수 있다. 추모위원회는 왜 표지석을 남몰래 옮겨 놨다 다시 옮겨가는 방식을 취했을까. 문제제기를 하기 위해서 표지석을, 언론을, 수동성당을 활용한 게 아니냐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을 감수할 만한 용기가 있다면 애초부터 정당성과 절차를 확보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늘 강조했던 소통의 방법을 찾았어야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한다는 명분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진 않는다.

<충청리뷰>가 페이스북 토론회를 열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번 사건을 다룬 언론보도엔 아쉬움이 남는다. 흥미와 갈등 위주의 보도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표지석 논란이 계획된 오보였거나 아니었다 해도 차라리 이번 기회에 표지석 설치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의제를 설정하고 보도해야 했다.

뒤늦게나마 정당과 시민사회가 모여 머리를 맞댄다니 슬기로운 해결 방법을 찾길 기대한다. 서로 우스워지는 꼴은 한번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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