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부짖는 학부모와 선생님들, 목청 높여 실랑이를 벌이던 사람들, 잠시라도 흐트러지면 모든 것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그랬기에 더 처절하게 막아섰는지도 모른다. 이 과정에서 모 기자는 대치중인 선생님들에게 “병신 꼴값하네” 라고 욕을 했다. 믿기 어려웠다. 몇 차례나 정말 욕을 했느냐고 확인했다. 분명히 들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기자도 아니다, 어째 교육청 직원보다 기자가 더 충성하냐”고 사람들은 말했다.
오로지 조직에 대한 충성심으로 스크럼을 짠 교육청 직원들, 그리고 취재 보다는 취재원에게 쌍욕을 한 기자, 믿기 어려웠지만 내 두 눈으로 확인한 현실이었다. 이튿날 언론들은 조용했다. 그저 갈등이 있었다고만 했다. 그 어떤 언론도 현장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위 사건은 지난해 10월 벌어진 일이었다. 그보다 한 해 전에는 이보다 더 한 일도 있었다. 제천의 한 초등학교 교장이 성적이 나쁜 학생에게 전학을 가라고 한 사실이 알려져 문제가 됐다. 이 교장은 학생과 학부모에게 심한 말도 했다 한다.
그런데 언론은 교장의 문제를 지적하기 보다는 엉뚱하게 학생이 꾸며낸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과정을 담은 학생이 쓴 일기가 너무 잘 썼기 때문이라고 기자들과 교육청 관계자들이 판단했기 때문이란다. 이때 한 기자가 대필의혹을 제기했고, 모든 언론이 이를 따랐다. 이를 주도했던 기자는 공교롭게도 취재원에게 쌍욕을 거침없이 던졌던 그 기자다.
묵혀두었던 일들을 다시 꺼내는 이유는 해당 기자를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언론이 교육청 편이 되어버린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서다. 어느 한 기자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동안 여러 차례 확인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갈등 사례를 꼽아보자. 학업성취도 평가, 무상급식, 야간자율학습, 인조 잔디 조성 등 사례를 보라. 이때마다 언론은 갈등이 있다는 식의 보도태도를 벗어나지 못했다.
교육청 정책에 전교조를 비롯한 시민사회나 학부모들이 나서서 반발하고 있다는 식이다. 그 바탕에는 교육청 입장이 충실히 반영되었다. 도대체 기자들은 왜 출입처 의견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교육청에서 주는 밥을 먹어서? 아님 실력이 없어서? 왜 아이들의 입장이나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 따위는 주목하지 않는가. 이런 정책들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인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무엇이 더 나은 대안인지를 왜 전혀 살펴주지 않는 것일까. 너무 무책임하다.
교육 문제는 사실 지역주민들의 생활과 매우 밀접하다. 환경정책이나 지자체나 정부 정책보다도 훨씬 앞선다. 내 자식의 문제, 우리 동네 아이들의 문제, 즉 아이들의 미래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역사회가 아이를 함께 키운다는 말도 있다. 우리가 어떤 틀을 만드느냐에 따라서 미래도 달라질 수 있게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언론은 왜 늘 아이들은 뒷전인가.
최근 우리지역에서도 학생인권조례를 만들자는 움직임이 있다. 여지없이 교권침해라며 교육청과 교총이 반발하고 나섰고 언론은 갈등이 있다고 보도하는데 그쳤다. 지역언론의 수준이 곧 그 지역사회의 수준이라는 말에 공감할 때가 참 많다. 학생인권조례를 둘러싸고 억지를 부리는 집단들을 보며, 참 형편없는 지역에서 살고 있구나,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생각한다. 지역 사회 구성원인 우리 스스로를 반성하게 해주는 역할을 그나마 언론이 했다고 봐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