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벽에 잘려나가는 역사와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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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벽에 잘려나가는 역사와 문화
  • 김진오 기자
  • 승인 2011.05.26 1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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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오 정경부장

2005년이나 2006년 쯤으로 기억된다. 아파트 시행업체가 청주시 흥덕구 사직동 상업지역에 초고층아파트를 짓기 위해 땅을 사들이고 있다는 내용을 취재했었다.

이 지역은 옛 청주시외터미널과 길 하나를 두고 인접해 있는 곳으로 1990년대 초까지 청주 최고의 상권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시외터미널이 떠나고 속속 외곽택지개발사업이 진행되며 공동화 현상이 빚어졌고 성업하던 숙박업소들 마저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토지가격이 떨어졌고 주택건설경기 호황을 탄 시행업체가 이곳에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를 짓겠다고 나섰다. 당시 서울의 타워팰리스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청주에도 (주)신영이 대농지구를 주상복합아파트를 중심으로 복합용도 개발한다는 계획이 알려지는 등 이같은 구상은 충분히 승산이 있어 보였다. 심지어 3개의 시행업체가 사업을 벌이겠다며 토지확보 경쟁이 벌어지기 까지 했다.

그러는 사이 3.3㎡에 200만원대 였던 땅값은 300만원을 넘어 500만원을 웃돌았으며 700만원을 호가한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토지확보가 여의치 않았고 시행업체의 자금난도 겹쳤다. 시간이 흐르는 사이 침체에 빠진 건설경기는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도시·주거환경 정비사업을 추진하던 청주시는 이 지역을 정비예정구역으로 묶어 시직4구역이라 이름을 붙였다. 시행업체는 그렇게 6년여의 시간을 흘려 보냈다. 어림잡아도 수백억원의 자금이 땅에 묶였고 또 수십억원의 금융비용이 발생했을 터다. 이들에게 땅을 팔겠다며 계약한 주민들이 잔금을 제대로 받았는지 그동안 별 문제 없이 재산권은 행사했는지 걱정스럽다.

토지를 협의매수해 아파트를 짓겠다던 계획이 불가능해지자 이번에는 조합을 결성해 정비사업으로 전환했다. 물론 시행업체가 상당수 땅을 사들였기 때문에 조합의 주도권을 쥘 수 있었다. 시행업체 입장에선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했기 때문에 초고층아파트가 아니라면 절대 이익을 낼 수 없는 구조가 돼 버렸다. 한마디로 사활을 걸고 관철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지적하고 싶은 것은 청주시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기본계획을 수립하던 당시에도 오늘과 같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는 점이다. ‘천편일률적인 전면개발에 따른 부작용’ ‘공공성과 어메니티 상실’ ‘주택 과잉공급에 따른 도시문제 발생’ ‘투기세력에 따른 원주민의 경제사회적인 피해’ 등 갖가지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당시 청주시는 ‘법대로 할 뿐’이라며 건물 노후도, 4m도로 인접율 등 책에 나온 기준만 들이댔다. 오히려 공익적인 측면에서 보면 건설경기가 침체돼 사업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당시 계획대로 일사천리로 아파트가 들어섰다면 청주도심은 이쑤시개를 꽂아 놓은 것처럼 빽빽한 콘크리트 숲에 갇혔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사직4구역 시행업체 관계자가 경남 함양군수에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청주시의 잘못이라고 몰아세우는 것도 옳지는 않다. 청주시 입장처럼 법과 규정이 그러했으니 말이다.

이제라도 과감하게 시각을 바로잡아야 한다. 헌 건물 헐고 아파트 짓는 게 도시정비가 아니라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살았던 이 도시의 모습을 내 아들과 손자가 살 때에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최소 100년 전통의 역사와 문화, 여기서 녹아난 정서가 앞으로도 최소한 100년은 이어질 수 있는 그런 도시를 설계하는 게 지자체와 지금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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