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에 떠올리는 ‘똘이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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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에 떠올리는 ‘똘이장군’
  • 이재표 기자
  • 승인 2011.12.21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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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이장군’이라는 극장판 만화영화가 있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제3땅굴편’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인터넷에 의존하지 않고도 명확히 기억나는 장면은 늑대들이 따발총을 찬 군인이었고, 불여우동무라는 여간첩이 등장했다.

늑대군대의 지도자는 직립보행하는 덩치가 큰 돼지였다. 왜 늑대가 돼지의 부하가 됐는지는 그때도 의아했던 것 같다. 붉은 망토를 두른 돼지의 얼굴에 붙어있던 종이가면이 떨어져나가자 조그만 새끼돼지로 변해 도망치는 마지막 장면에서 크게 웃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1978년에 개봉한 애니메이션이니 지금의 40대가 이 영화를 인상 깊게 본 세대에 해당될 것이다. 당시에는 극장에 갈 일이 많지 않았기에 ‘로봇 태권V’ ‘마루치 아라치’ 등 만화영화와 ‘엄마 없는 하늘 아래’ 등의 극영화도 제목은 기억이 나지만 스토리나 장면에 대한 기억이 똘이장군 만큼 선명하지는 않다.

사생대회에서 북한 사람을 그리라면 늑대를 그리고 ‘때려잡자 김일성 무찌르자 공산당’이라는 표어와 포스터를 그리며 유년을 보냈던 터라 돼지와 늑대들에게 인간이 지배를 받는 줄거리에 비분강개했던 것일까?

충청리뷰는 2004년부터 박왕자씨 총기 피살사건이 있던 2008년까지 5년 동안 북녘 금강산에서 마라톤행사와 단체관광을 해마다 실시했다.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라는 구호가 8월을 뜨겁게 달구던 그때 마침 대학을 다녔고, 아스팔트 위에서 이 구호를 꽤나 외쳤던 터였다.

분단의 안전판이었던 금강산

그래도 휴전선을 넘어 처음으로 금강통문을 넘어가는 그 순간은 가슴이 터질 것처럼 떨렸다. 북한 주민들도 한 민족, 동포라고 늘 생각했건만 군인들이 총을 들고 버스에 올라와 검문을 하는 그 순간에는 두려워 눈도 마주칠 수 없었다.

그러나 한 해 두 해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은 급변했다. 상황에 익숙해진 것이 아니라 분명한 변화였다. 버스검문은 사라지고 입경사무소가 생겼다. 금강산에서 만나는 북측의 복무원들이 먼저 웃어주고 농담을 건넸다.

금강산에 자주 간다는 리뷰 직원들도 1년에 한 번인데, 그들은 매일 같이 남한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그토록 유연해진 것이다. 금강산호텔 하늘라운지에서 일하는 여자복무원은 손님들이 노래를 시키자 혁명가요를 불렀다. 그 다음해에는 남한 손님들에 대한 서비스로 아침이슬을 불러줬다. 당시 금강산은 분단조국의 안전판이었다.

1994년 김일석 주석 사망 당시 조문파동이 있었다. 국회 외통위에서 이부영 민주당 의원이 “혹 정부가 조문할 의사가 있냐”고 한 번 물어봤다가 색깔논쟁으로 번졌고 북한은 통미봉남(通美封南) 정책으로 맞섰던 것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17일 세상을 떠났다. 정부는 고심 끝에 조의를 표했고,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이희호 여사에 한해 방북을 허용했다. 고 정몽헌 전 회장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조문한데 따른 답방이다. 햇볕정책의 온기가 아직도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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