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사람들, 후불제 출판 ‘도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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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가는 사람들, 후불제 출판 ‘도전장’
  • 이재표 기자
  • 승인 2013.04.26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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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군 낭성면 호정리, 쌍샘교회 중심의 공동체 형성
누구나 책을 내고…먼저 받아보고…맘에 들면 지불

다시 책을 찾아서-꽃잠출판사 그리고 호정리

▲ 사랑방카페에서 꽃잠출판사 이용수(좌) 대표와 윤여민(우) 팀장을 만났다. 동네이웃인 이들은 후불제 출판을 시도하고 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마을이 있다. 그래서 살만 하다. 우리시대의 상식이 최선이 아니라는 것을 이 마을에서 깨닫게 된다. 청원군 낭성면 호정리가 그곳이다. 상당산성을 넘어가는 864번 시내버스를 타고 호정천 종점에서 내려 2km는 걸어가야 나오는 동네다. 거기에 쌍샘자연교회(담임목사 백영기)가 있고 교회를 중심으로 공동체마을 15가구가 있다.

옛날 면지(面誌)에 나오는 100년 전 동네이름은 ‘도토실’이었다. 도토실은 ‘골짜기 사이로 큰물이 나더라도 사람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돋아진 땅’을 의미하는 순우리말이다. 면지에는 이곳에 10여호가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청주시 흥덕구 모충동 서원대 북문 입구 쌍샘골에 있던 쌍샘교회가 2003년 5월 이곳으로 옮길 당시에는 이곳에 민가가 없었다.  

주일에 교회를 찾던 신도들이 도토실의 풍광에 반했다. 팍팍한 도시의 삶에 지쳐 자연의 삶을 원했던 것일까? 한 집, 한 집 들어서면서 지금의 마을이 형성됐다. 집이 계속 지어지면서 대기 중인 사람도 있다. 자급자족을 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이 로컬푸드운동으로 발전하면서 생산 및 유통조직 ‘착한살림’을 발족했다. 자연염색, 천연비누, 목공, 매듭 등을 체험하는 노작하는 체험교실을 운영하다가 ‘노아공방’도 설립했다.

이 정도로는 피부에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다. 미장원이 없어서 불편하다 했더니 미장원을 운영하던 신도가 들어와 동네사람들의 머리를 깎아준다. 미장원은 없다. 출장미용이다. 돈을 받지도 않는다. 답례로 먹을거리를 주면 받는다. 학원도 있을 리 없다. 대신 민들레학교가 있다. 초등학교 교사 출신인 신현숙 사모가 아이들을 가르친다. 이쯤 되면 화폐는 큰 의미가 없다.

교회 앞마당에는 ‘사랑방카페’가 있다. 실내에는 책이 빼곡히 차있는 북카페다. 그런데 주인이 없는 무인카페다. 알아서 차를 마시고 책을 읽다가 돈을 내든 말든 간섭하지 않는다. 문을 열 때는 적자운영을 작정했다. 그런데 돈이 남아돌아 수익금으로 장학금을 준다. 모든 게 상식 밖이다.

화폐가 무의미한 동네를 향해

그런데 도토실에서 진짜 상식 밖의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이 산골마을에 출판사가 설립된 것이다. 이름은 ‘꽃잠출판사’다. 직원은? 예상했겠지만 4명에 이르는 직원은 모두 이 마을 주민이다. 그런데 꽃잠출판사는 도토실에서도 상식 밖이다. ‘후불제’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후불제로 한다는 것은 일단 가격을 매기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한다. 저자가 필요로 하는 만큼만 찍어서 알음알음에 따라 나눠준다.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선물의 개념이다. 책을 읽은 사람이 상품으로서 가치를 느낀다면, 느낀 만큼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후불제 출판이다. 이쯤 되면 도토실은 반(反) 자본주의운동의 근거지가 아닐까? 1970년대라면 동네사람들 모두가 불순분자 취급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도대체 이같은 후불제 출판이 돈이 되기는 되는 것일까? 꽃잠출판사 이용수 대표와 윤여민 기획팀장을 사랑방카페에서 만났다. 다른 직원들은 만날 수 없었다. 직원들은 모두 낮에 자기 일을 한다. 컴퓨터 보안업체를 운영하는 이용수 대표는 마침 결혼준비로 출근하지 않았고, 기독교방송 본사 구성작가인 윤여민 팀장은 재택근무를 하는 터라 한낮의 만남이 성사됐던 것.

꽃잠이란 예쁜 이름의 뜻에 대해 물었다. 윤 팀장은 “꽃잠은 첫날밤을 의미한다. 상대를 향해 나를 다 주는 그날처럼 ‘모든 걸 다 주는 마음으로 책을 만들고 생각을 나누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름을 지어준 사람은 ‘사소한 일상’이라는 에세이집 출간을 앞두고 있는 전북 군산지역 시인 조희선씨다.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의 출판비용을 이 대표가 내고 5월25일 결혼식에서 하객 답례품으로 나눠줄 계획이라는 것이다. 작가도 인세를 요구하지 않는다.

꽃잠에서는 누구나 작가가 된다

▲ 꽃잠출판사가 출판을 기획하고 있는 에세이집의 초안. 전통제본을 시도해 봤다.
꽃잠출판사는 지금까지 묵상집 3권을 냈다. 시와 에세이, 여백이 있어 독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책이다. 출판비용은 구성원들이 출자했고 본전은 뽑았다. 다만 월급을 준 적이 없으니 아직까지는 재능기부 수준이다.

이들은 본격적인 창업에 들어가며 먼저 구성원들의 책을 내려 한다. 허진옥 디자이너는 아이를 기르는 엄마로서 그림책을 낼 계획이다. 신현숙 사모는 시골의 일상을 기록해 온 블로그를 책으로 출간하려 한다. 윤 팀장은 자신 보다 주변 사람들의 책을 만들어 줄 계획이다. 그 1호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될 것 같다.
그러나 이들이 언제까지나 자기만족에 머물러있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세상으로 나가는 작업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후불제 잡지로 수익을 내고 있는 ‘월간 풍경소리’가 모델이다.

이 대표는 “많이 찍고 많이 팔아야하는, 그래서 출판사가 서점에 책을 납품한 뒤 다시 사오기까지 하는 출판유통구조에 반대하는 것이다. 유명한 사람이 아니어도 책을 낼 수 있어야한다. 우리 출판사에 출판을 문의해 온 고객 중에는 일반 출판사를 찾아갔는데 ‘1만권 이상 자비 출판을 해야 책을 찍어준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더라. 누구든 일기나 습작 시를 출판할 수 있는 곳이 꽃잠출판사”라고 말했다. 나의 책을 읽어줄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꽃잠이 그를 작가로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얘기다.

꽃잠출판사는 그래서 전통방식의 수작업제본도 실험해 봤다. 종이는 재생용지를 사용한다. 이 대표는 “2005년엔가 교인들이 모여 ‘만약 호정리에 동네가 만들어진다면’이라는 전제로 그림을 그려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때 상상했던 대로 동네가 만들어지고 있다. 정말 신기하고 가슴이 벅찬 일이다”라고 밝혔다.     



생태전문도서관 50% 공정 진행 중
마당에는 ‘맛있는 밥집’과 게스트하우스도

도투실의 상상력은 도대체 어디가 끝일까? 이들은 2012년 5월 도서관 공사의 첫 삽을 떴다. 1·2층 100평 규모에 생태·환경, 어린이도서로 꾸미는 전문도서관은 현재 50% 공정이 진행 중이다.

백영기 쌍샘자연교회 목사는 “연말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도서관 마당에는 ‘맛있는 밥집’과 게스트하우스를 별도 건물로 지어 개인은 물론 가족단위의 체험객을 초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정도면 단순한 마을공동체를 넘어 힐링의 공간으로도 부족함이 없을 듯 하다. 도서관 공사에는 현재까지 7000만원의 공사비가 들어갔고 1억원 정도가 더 투입될 계획이다. 건립비는 후원금으로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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