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달려야 해, 거짓과 싸워야 해
상태바
우리는 달려야 해, 거짓과 싸워야 해
  • 이재표 기자
  • 승인 2014.01.02 13: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 이재표  글씨: 김재천

우리는 과연 기마민족의 후예일까? 다양한 설이 있지만 북방 기마민족이 우리나라의 고대국가 형성과 연관이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실제로 시베리아 바이칼호 남동쪽 연안에 위치하며, 호수 남단을 지나 몽골과 국경을 이루는 부랴트 공화국에 사는 코리 부랴트족은 고구려(高句麗)나 부여(夫餘)라는 고대국가의 이름과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몽골족의 특성대로 말을 잘 타고 활의 명수이도 하다.

2007년 국립민속박물관이 발간한 ‘부랴트 샤머니즘-어둠 속의 작은 등불’이라는 책에 실린 사진들을 보면 이들과 우리나라의 연관성에 대한 믿음이 더욱 커진다. 이들은 일단 용모부터 우리와 너무 닮았다. 그리고 이들의 샤머니즘은 서낭당과 신목, 솟대, 굿의 도구인 방울까지, 우리와 너무 유사하다. 무엇보다도 이들이 빨갛고, 파란 샅바를 다리에 걸고 씨름을 하는 모습은 두 눈을 의심하게 만들 정도다. 몽골에도 씨름이 있지만 그들은 상체를 주로 쓰는 이른바 그레코로만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김병모 같은 고고학자는 신라의 금관을 장식하는 신목(神木)에 달린 사슴은 순록이라며 부랴트(부여)족이 신라까지 내려와 지배계층이 됐고 인도 등 남방에서 흘러온 평화적인 농경민족이 피지배계층이 됐다고 주장한다. ‘하늘에서 천마가 내려와 알을 낳는 등’의 신라 신화는 북방과 남방의 신화가 혼합된 것이라고 한다. 어찌 됐든 한국인의 몸속에 대륙을 말 달리던 기마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말은 빠르고 역동적이다. 유럽정복에 나섰던 몽골기병의 이동속도는 하루 최대 352km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말 위에서 먹고, 말 위에서 자며 전진했다. 가볍게 무장했으며 등자에 발을 걸고 철궁(鐵弓)에 화살을 걸어 쏘아댔다. 그야 말로 빛의 속도로 달린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까지도 기병이 활약했으나 이제는 말이 전쟁에 쓰일 만큼 유용하지 않다. 인간이 만든 이동수단들은 말보다 훨씬 빠르고 지치지도 않는다. 아니 세상의 속도가 너무 빨라져 느리게 사는 것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갑오년은 말의 해다. 그래서인지 덕담도 ‘말처럼 힘차게, 또는 빨리 달리자’고들 한다. 기마민족의 후예라서 그런지 우리는 근현대를 쉴 새도 없이 달려왔는데 말이다. 국민들은 곤고하다. 위정자들이여, 염치없이 국민들에게 “더 달리자”고 당부하지는 말아 달라.

그런데 뜬금없이 인디밴드 ‘크라잉 넛’이 불렀던 ‘말 달리자’라는 노래의 가사가 떠오른다. ‘닥쳐’라는 명령어가 인상 깊은 이 노래는 닥치고 내 말을 들으라고 윽박지른다. 사랑을 하면 사랑을 받느냐고, 돈이 많으면 성공하는 거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조리 있게 다가오지 않는다. 다만 노래의 결론이라 할 수 있는 말미는 “우리는 달려야 해, 거짓과 싸워야 해”로 마무리 된다. 아무래도 갑오년에는 많은 사람들이 거짓과 싸우기 위해 거리를 내달려야할 것 같다. “닥쳐! 닥치고 내 말을 들어. 말 달리자!”

※2012년 신년호부터 2년 동안 실어왔던 시사필치 연재를 마칩니다. 좋은 글씨로 지면을 빛내준 이희영, 김재천 작가에게 감사드립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