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첨민주주의까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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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첨민주주의까지 생각한다
  • 이재표 기자
  • 승인 2014.02.05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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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표 객원기자
   
선거의 해가 돌아왔다. 유권자들의 관심이 대통령선거만은 못하겠지만, 가장 많은 당선자를 내는 지방선거의 해다. 충북에서만도 도지사와 도교육감, 12명의 시장군수를 뽑는다. 또 지방의회의 경우 충북도의회 의원 31명, 시·군의회 의원 131명을 선출한다. 모두 176명이다. 그만큼 우리의 삶과 밀접한 선거다.

선거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가장 현실적인 수단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선거가 최선인가, 혹은 선거만이 유일한 대안인가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선거에 드는 막대한 비용에 비해서 대의민주주의 실현이라는 목적을 제대로 구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가 들기 때문이다.

사실 선거는 그들만의 잔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잔치의 초대권을 쟁취하기 위한 혈투다. 잔치의 주빈은 당선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초대권을 받기까지 유권자들에게 굽실거리지만 당선자가 되면 대개 고개에 힘이 들어간다.

이 싸움에는 학연, 지연, 혈연 등 모든 인맥이 동원된다. 또 선거가 정당을 근간으로 이뤄지기에 패싸움 양상마저 보인다. 입으로는 투표율을 높이자고 외치지만 기득권층의 속내는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을 바란다. 그것이 소수집단의 권력독점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양대 정당은 치고받고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협업관계다. 최소한 2등은 보장받기 때문이다.

‘서민의 편에 서겠다’며 기득권층이 보기에 급진적(?)이기까지 한 공약을 내세우는 진보정당은 서민층이 외면한다. 소수자의 권익을 요구하는 정당은 그 소수의 지지만이라도 필요하지만 아예 발붙일 곳이 없다. 그리고 압도적 다수의 지지를 받고 권력을 분할한 양대 정당은 압도적 다수의 이해와 요구를 저버린다. 당선자 중에 상식 있는 사람이 왜 없겠는가? 사상적으로 진보와 보수를 떠나 합리적 사고를 하는 사람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그 패당에 섞이고 보면 행동대원이 되기 일쑤다.

그래서 얘긴데 추첨민주주의를 제안해 본다. 장난 같이 들릴 수도 있지만 학계 일각에서도 제기하고 있는 대안이다. 역사적으로도 사례가 있고 현실에서도 실험한 바가 있다. 고대 아테네에서는 추첨을 통해 ‘보울레’라는 대의제도를 운영한 역사가 있다. 캐나다 일부 주에서는 추첨을 통해 구성한 시민총회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기도 했다.

비록 정당 내에서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추첨민주주의를 실시한 사례가 있다. 녹색당이 지난해 3월 100% 추첨을 통해 선출한 대의원으로 전국대의원대회를 구성한 것이다. 시·도별로 지역·연령·성별을 고려해서 30명당 한 명씩 모두 134명을 뽑고 소수자 부문에서 청소년과 장애인을 각 3명씩 뽑았다.

추첨으로 뽑힌 사람이 열의를 가지고 참여할 것인가, 또 전문성이 부족하지 않을까라는 염려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보완하면 된다. 선거민주주의 또한 끝없이 보완하고 보완해도 완벽하지 않은 것을 고려하면 오히려 추첨이 완벽한 대의민주주의로 가는 지름길일 수도 있다.

예컨대 추첨으로 뽑힌 사람에게 수락 여부를 물을 수도 있다. 아니면 참여의사가 있는 사람들을 먼저 모집한 뒤에 그 중에서 추첨을 하는 방식도 가능할 것이다. 물론 부분적 추첨민주주의 병행할 수도 있다. 국가대사인 지방선거를 5개월여 앞두고 뜬금없이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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