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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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누구인가?
  • 이재표 기자
  • 승인 2014.02.20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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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표 객원기자
   
▲ 이재표 기자
“내게 선(善)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분명히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악(惡)이 무엇이냐 물으면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다. 박정희 정권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죄 없는 사람들에게 행한 그 짓이 바로 악이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허구를 세계에 알린 시노트 신부의 말이다.

피고 13명 중 11명에게 무죄가 선고된 1965년의 1차 인혁당 사건은 한일협정 체결에 반대하는 학생시위가 거세지자 그 배후에 북한이 있는 것처럼 뒤집어씌우기 위해 조작됐다. 도예종 등 13명을 구속기소했으나 11명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인혁당은 9년 뒤 중앙정보부의 상상력으로 재건(?)됐다. 1972년 유신이 선포된 뒤 학생들의 시위가 불붙자 다시 인혁당을 끄집어낸 것이다. 당명도 그대로였고, 피고들도 대개가 1차 사건 관련자였다. 그래서 이 사건을 2차 인혁당 또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라고 부른다.

달라진 것은 비상보통군법회의가 수사와 재판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1974년 9월 도예종 등 8명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1975년 4월8일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했고, 이로부터 불과 17시간 뒤에 사형을 집행했다.

2007년 8월21일 서울중앙지법은 인혁당 재건위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모두 245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는 없다. 절차를 무시한 체포와 구금, 가혹행위, 증거조작, 무리한 사형확정은 8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의 고통이 시작됐다.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등 이른바 RO사건 피고들에 대해서 1심 재판부가 2월17일 징역 12년에서 4년까지 중형을 선고했다. 국가보안법이 엄존하는 상황이니 그들의 생각과 발언이 죄가 된다면 할 말이 없다. ‘장난감총을 개조해 무기를 만들자’고 했단다. 설사 장난감총을 개조했다고 한들 국가의 평온을 해칠 폭동이 가당키나 하다는 말인가. 형법 87조의 내란죄는 ‘국토의 참절 또는 국헌 문란을 목적으로 하여 폭동하는 죄’다.

이제 갇히지 않은 자의 고통이 시작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먼저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을 주장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통합진보당과 선긋기를 하는 이들은 알아야한다. 2010년 수사를 시작한 국정원이 지난해 7월까지도 국가보안법 사건으로 감청영장을 받아오다 갑자기 내란음모의 올가미를 씌웠다는 사실을….

나치에 저항하다가 7년을 옥살이한 ‘마르틴 나묄러’ 목사의 시가 떠오르는 시절이다. 시의 제목은 ‘그들이 처음 왔을 때’ 혹은 ‘다음은 우리다’로 통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군인들이 총포와 탱크로 일으킨 내란이 두 차례나 성공했고 그들이 만든 정당은 해산되지 않았다. 그들은 다시 왔고, 다음은 누구인가?

그들이 먼저 공산주의자들에게 갔을 때 /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에 침묵했다. / 그 다음에 그들이 유대인들을 잡으러 갔을 때 / 나는 유대인이 아니므로 침묵했다. / 그 다음에 그들이 노조원들을 잡으러 갔을 때 / 나는 노조원이 아니었기에 침묵했다. / 그 다음에 그들이 가톨릭을 잡으러 갔을 때 / 나는 개신교도이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에 그들이 나를 잡으러 왔을 때 / 그때는 나서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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