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한 것만 기억하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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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한 것만 기억하는 능력
  • 이재표 기자
  • 승인 2014.03.06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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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표 객원기자
   
▲ 이재표 기자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한다. 이 말은 다각적으로 읽힌다. 과학적으로는 기억용량에 한계가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기 위해서 반드시 같은 크기의 오래된 기억을 지워야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간은 컴퓨터와 같은 기계가 아니니까….

그리스 신화에서는 이승과 저승사이에 레테강(-江)이 흐른다고 한다. 망각의 강이다. 죽은 자가 저승으로 가면서 이 강물을 한 모금 마시면 과거의 모든 기억을 잊는다고 한다. ‘나’라는 존재가 완전히 소멸되는 것에 대해서는 공포가 있고 전생이 기억나지 않는 것은 설명할 수 없으니 지어낸 얘기가 아닐까?

기억의 신비와 관련한 용어 중에는 ‘무드셀라 증후군’도 있다. 무드셀라는 성경 속에 나오는 최장수의 인물로 1000세에 가까운 수명을 누렸다. 이 이름 뒤에 증후군이 붙으면 좋은 기억만 남겨두고 나쁜 추억은 강제로 지우려는 본능을 의미한다. 무드셀라 증후군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고통스러운 순간에는 그 기억이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 같지만 세월이 흐르면 그 부분만 하얗게 지워졌음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실 기억과 망각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면 인간은 완벽한 행복을 누릴 수 있으리라. 일단 암기과목이라는 단어가 사라질 것이다. 학습의 과정은 짧아지고 누구나 만국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기본이 될 것이다. 잊고 싶은 것은 바로바로 잊게 되니 스트레스가 쌓일 리 없다. 비현실적이지만 이상적인 능력이다.

그런데 이같은 능력을 완벽에 가깝게 구사하는 현생 인류가 있다. 바로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이다. 무드셀라 증후군이 좋은 기억만 간직하려한다면, 정치인들은 필요한 것만 기억하는 능력을 가졌다. 물론 모든 정치인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개가 그런 능력자들이다. 정치인들은 우선 그때그때 필요한 사람들만 기억하고 효용이 떨어지면 곧 잊는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과오는 속히 지우고 남의 허물은 두고두고 우려먹는다.

민주당과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연합이 제3지대에서 신당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이들은 6?4지방선거에서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을 공천하지 않겠다며 대선공약을 뒤집은 대통령을 궁지로 몰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연대가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126석의 민주당과 2석의 새정치연합이 5대5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볼썽사나운 지분다툼이 일어나지 않을까 염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우려는 현실이 될 조짐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새누리당은 제3지대 신당에 대해 맹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밀실정치, 야합, 거래 등 각종 협잡을 암시하는 단어들이 총동원되고 있다. 실제로 충북이 지역구인 정우택(청주 상당)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봄이 돼서 그런지 선거철이라 그런지 짝짓기와 야합이 성행하고 있다. 기업 M&A식 신당창당선언에 국민은 물론 민주당 내에서도 질타와 우려가 가득하다”고 말했다.

짝짓기라고 했으니 이와 관련해 대한민국에서 떳떳한 정당이 있을까? 그 원조는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던 1990년의 3당 합당이다. 민정당과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만나서 민자당이 됐고 신한국당, 한나라당으로 이어진 것이 지금 새누리당의 계보다. 바로 그 3당 합당 이후에는 여야를 가릴 것 없이 합당과 탈당, 입당, 후보연대 등 합종연횡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자기에게 필요한 것만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잊고 싶은 것을 상기시켜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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