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사는 무조건 크게 써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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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사는 무조건 크게 써줘요”
  • 이재표 기자
  • 승인 2014.03.20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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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표 객원기자
   
악수를 많이 하는 정치인일수록 사람을 기억하지 못한다. 입증할 수 있는 과학적인 증거자료는 없다. 다만 기자생활의 경험 속에서 확신을 갖게 됐다. 말과 의식보다 감촉을 앞세우는 정치가 갖는 한계다. 그런 류의 정치인들은 최대한 많은 사람과 만나 손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목표다. 그러니 사람을 세심하게 기억하는 능력이 퇴보한 것일까?

심지어는 불러주지 않아도 가위와 흰 장갑을 챙겨 행사장을 찾아다니는 이가 있었다. 또 어떤 이는 기자실에 들렀을 때 수행하러 나온 공무원을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을 소개하며 악수를 청할 정도였다.

기자가 되어 처음 출입한 기관의 단체장이 그랬다. 인터뷰를 여러 차례 했음에도 ‘저 이가 과연 나를 알고는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궁금증이 풀리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느 행사장에 그 단체장이 악수를 하러나왔다. 그는 웃으면서 내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나 혼자만 어색한 순간은 그 뒤에도 여러 차례 되풀이됐다. 그는 이제 나를 알고 있을까?

그 단체장은 기자들과 간담회를 하는 자리에서 종종 “내 기사는 좋은 거든 나쁜 거든 크게만 써 달라”고 당부했다. 비판적인 기사를 쓰고 뭔가 반향이 있기를 기다리는 처지에서는 맥 빠지는 일이다. 그러나 그가 이겼다. 그의 정치성적표는 꽤나 준수했다. 상식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몸 정치’, ‘그 사람 정치’가 통하는 것이 우리 정치판이다. 어떤 사람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는가, 모르는가가 결과를 좌우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정치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고 성향과 소신이 분명한 유권자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런 유권자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선거에 무관심한 유권자에게 있어서 ‘어떤 사람’의 기준은 도덕성과 전문성, 능력 등이 아니다. 자신의 손을 잡아준 정치인에 대해서는 ‘친절하다’거나 ‘부지런하다’는 인상을 갖게 된다. 반면 임기 내내 코빼기도 비추지 않은 정치인에 대해서는 반대 이미지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어찌 됐든 아무리 부지런을 떤들 몇 명이나 손을 잡겠는가. 다음 단계가 어떻게든 인지도를 높이는 전략이다. 노력에 대비해 기대이상의 효과를 낼 수도 있고 전파속도도 빠르다. 이 전략은 투표의 의무에만 충실한 유권자들에게 먹힌다. 정치신인보다 전·현직이 경쟁력을 갖는 이유다. 결국 ‘자신과 관련한 기사는 무조건 크게 써 달라’고 노래를 불렀던 것은 고도의 전략이었던 셈이다. 어수룩한 기자는 거기에 말려들었던 것이고….

이쯤 되면 선거라는 방식을 통한 대의민주주의에 대해서 회의를 갖게 된다. 대의민주주의란 직접민주주의가 너무 거추장스러워 전체 유권자를 대신할 소수를 행정부나 의회로 보내는 것이다. 그런데 손을 많이 잡아준 사람, 유명한 사람만 당선된다면 샘플의 대표성에 문제가 있다. 찌개는 한 숟가락만 떠먹어도 그 맛을 알 수 있는데 선거제도를 통해 떠낸 한 술은 전체 국물 맛과는 거리가 멀다.

일단 행사하는 투표권의 종류라도 정확히 알아야 사람이 보이지 않을까? 충북의 유권자는 6월4일 7장의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는다. 도지사, 교육감, 도의회, 도의회 비례, 시장·군수, 시·군의회, 시·군의회 비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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