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 대한매일신보 지사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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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대한매일신보 지사장이었다
  • 민경명 기자
  • 승인 2004.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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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규교수 처음 밝혀, 황해도 장연서
백범 김구(1876-1949)선생이 대한매일신보의 지사장으로 민족신문 보급활동을 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한남대 사회학부 박정규교수는 7일 '대한매일신보의 참여인물과 언론활동'이라는 논문을 통해 김구 선생이 1905년 11월부터 1907년 2월까지 약14개월 동앉 황해도 장련(長連)에서 항일언론의 선봉에 섰던 대한매일신보의 지사장으로 활동했다고 밝혔다.

박교수는 그 증거로 이 기간 중 대한매일신보의 광고란에 매일 실린 사고(社告) 내용을 제시했다. '본사특고'란 제목의 1905년 11월 28일자 사고는 평양-선천-장련 등 3곳의 지사 개설 사실을 알리며, 장련의 경우 독자들은 김구(金龜)에게 구독 신청하고 대금도 그에게 납부하도록 광고하고 있다.

백범일지에 따르면 백범은 초기 이름이 참암(昌巖), 창수(昌洙)였다가 1900년 구(龜)로 개명했으며 1912년 다시 구(九)로 바꾸기 전까지 이 이름을 사용했다. 백범은 또 이 시기 장련에서 살며 학교를 세우고 애국계몽과 교육에 힘을 쏟은 것으로 되어 있어 거주 지역도 일치한다.

1905년 진남포에서 을사늑약 소식을 들은 백범은 서울에 올라가 전덕기 이준 이동녕 최재학 등과 함께 상소를 올리고 종로에서 가두 연설에 나서는 등 구국대열의 선봉에 섰으며, 12월 신교육에 투신하기로 하여 장련으로 돌아와 교육과 함께 대한매일신보 보급도 함께 했다고 박교수는 설명했다.

박교수는 또 "1907년 4월 초 대한매일신보의 설립자인 양기탁이 안창호와 함께 비밀결사로서 신민회를 창립했고, 백범은 신민회 황해도 총감으로서 양기탁 주도의 비밀 전국간부회의 개최 사실을 백범일지에 기록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대한매일신보의 지사원들은 민족신문의 보급 뿐만 아니라 신민회와 같은 국권회복 운동 단체에 참여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신용하(한양대 석좌교수)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부설 백범학술원 원장은 "백범 선생이 대한매일신보 장련지사를 설치해서 민족신문 보급활동을 했다는 것은 종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사실"이라며 "백범연구는 물론, 구한말 애국운동과 애국언론운동에 새로운 연구자료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 했다.

박교수의 이 연구 논문은 7일 오전 10시부터 서울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리는 서울신문 한국언론학회 공동주최 "대한매일신보 창간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에서 발표된다.
서울신문 신연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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