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음식엔 삶이 담겨있다

어머니의 족발은 양념 안된 순수한 맛 그대로

2018-03-30     충청리뷰

예전에 부모님께서 정육식당을 하셨다. 시골동네에서 이웃주민들을 상대로 정육점과 간장삼겹살을 주 요리로 하는 식당을 겸했다. 언제나 그렇지만 당시에 고기장사라는 건 한 마리를 통째로 도축을 해오던 방식이었는데 부위마다 호불호가 달라서 언제나 돼지부속물들이 판매되지 않고 오래도록 냉장고를 차지하였다.


그 중에서 전혀 팔리지 않았던 게 족발이었고 그 덕분에 우리 집에서는 언제나 족발이 떨어진 적이 거의 없었다. 당시 내가 살던 시골동네에서는 시중에서 판매되는 족발은 구경할 수 없었기에 사람들도 거의 찾지 않았다. 결국 장사하고 남는 건 언제나 우리 식구 몫이었다.


어머니의 족발 요리법은 오직 한 가지였는데 나는 세상의 족발요리란 다 그런거라고 생각했다. 그냥 삶아서 먹는 거랄까? 마늘, 생강 대파를 넣은 물에 족발을 삶은 후 채반에 건져서 물기를 제거한 후 그 꾸둑꾸둑한 상태로 족발을 내 오셨는데, 이 족발은 소금이나 새우젓을 찍어 먹으면 그 나름대로 독특한 맛이 있다. 한마디로 양념이 전혀 안된 순수족발이다.


아마도 예전에는 거의 이런 방식이었을텐데, 어느 순간 현재 우리가 먹는 간장베이스의 족발로 바뀐게 아닌가 싶다. 아버지는 여전히 시중에 판매되는 족발보다는 예전 어머니식의 순수한 족발을 더 좋아 하신다.


여하튼 이런 방식의 족발은 나름 유용하기도 하다. 뭔가 식상하면 뼈를 발라낸 후 고기 부분을 부추 등의 야채들을 넣어서 무쳐먹기도 하고, 고추장 양념에 볶아 먹기도 하였으니까 나름 좋은 식재료 역할을 하기도 한다. 물론 나는 육거리 시장의 미니족발을 좋아하지만 말이다.


족발 삶는 과정 어려워


보통 우리가 자주 접하는 것은 간장베이스 족발이다. 집에서 족발을 삶을 때 가장 어려운 건 의외로 레시피가 아니라 그 과정의 작업이다. 대개의 레시피는 양조간장을 베이스로 청주, 계피가루, 통후추, 월계수 잎, 대파뿌리, 마늘, 양파, 물엿 정도로 대동소이하다.


여기에 무엇을 넣느냐에 따라 맛이 더해진다. 보통 알려진 건 고추씨와 오가피 등의 한약재를 넣어서 매운맛과 한방향을 넣어 준다는 것과 독특한 색을 유발하기 위해 흑설탕이나 카라멜소스를 넣는다는 정도. 집에서 요리할 때는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맛있다.


하지만 의외로 간단해 보이는 요리법에 비해 도전할 엄두가 안나는 건 아마도 삶는 과정의 어려움 때문인 것 같다. 보통 정육점에서 족발을 사오면 깨끗해 보여도 초벌로 30분쯤 삶으면 보이지 않던 돼지털들이 송송 올라온다. 이 털들을 면도기로 정성껏 밀어주는 과정을 거쳐야 혐오스럽지 않은 족발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이 털을 제거하는 일을 해보면 대개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궁중족발 싸움 현장


여하튼 내가 족발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족발이라는 하나의 요리에 우리 부모님의 삶과 나의 어린시절뿐만 아니라 현재 함께 활동하는 공룡들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공룡들은 몇 개월전부터 서울의 궁중족발이라는 투쟁현장에 함께하고 있다. 공룡의 재환 선생님은 노래로, 다른 공룡들은 영상카메라로 연대를 해오고 있다. 이 곳은 젠트리피케이션에 맞서서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싸움 현장이다. 어찌보면 이젠 너무나 익숙한 싸움이지만 궁중족발은 매우 특이하기도 하다.


김우식, 윤경자 부부의 삶의 터전이기도 한 궁중족발은 단순히 그 동네의 땅값이 오르면서 겪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의 전형적인 피해자와는 좀 다르다. 건물주는 금융권 대출을 통해 건물을 매입한 후 법의 사각지대를 이용해 건물세입자들을 쫓아내고 리모델링을 해서 되파는 형식의 투기꾼이다. 이는 금융자본과 부동산판매업자의 담합에 의한 투기현상이다.


부동산 투기업자를 위해 금융권과 공권력들이 동원되어 그의 이익실현을 도모해주고 있다고 할까? 이 와중에 지역 맛집으로 알려진 족발집도, 그 족발집에서 삶을 영위해 가던 사람들도, 그들의 단골도, 이 싸움에 연대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도 모두 부차적인 것들로 밀려나 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무차별적인 용역과 공권력의 남용에 맞서 싸우는 이유는 적어도 이렇게까지 노골적인 부동산투기가 가능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적어도 자기 돈 한 푼도 들이지 않고도 투기에 의한 폭리를 실현하는 게 정당한 투자이자 영리활동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되도록 할 수는 없지 않을까 ?


나는 모든 요리에는 저마다의 사연과 저마다의 삶이 들어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족발을 요리하거나 배달시켜 먹을 때에도 언제나 나의 추억들이 소환된다. 하물며 오랜 시간 족발이라는 요리를 통해 삶을 영위해온 김우식 사장님에게는 이미 요리가 곧 삶일 수도 있다고 믿는다. 그런 각자의 삶과 기억들을 지켜내는 것이 곧 우리들이 가진 공동체의식이 아닐까 ? 그 만큼 오직 돈만이 경배받는 세상이 아니라 각각의 요리가 사랑받듯, 각각의 삶들이 존중되고 그 요리에 숨은 노동들이 인정받는 세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