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개발에 숨 막히는 ‘수암골’ 원주민

2018-11-22     육성준 기자

청주시 대표적 관광지인 수암골에 거주하는 김상윤(42) 씨가 반려견 ‘영광이’와 함께 집 앞 한 길 낭떠러지에 위태롭게 서 있다. 5층 규모의 상가건물 공사현장인데 커피숍과 식당, 원룸이 들어설 예정이다.


마을 주민들이 아기자기하게 가꾼 텃밭과, 청주 시내를 조망하면서 수암골의 상징인 골목길을 바라볼 수 있었던 추억의 공간은 이미 굴착기로 잘려나갔다.

김 씨는 “항상 저녁노을을 감상하며 언니를 배웅하는 곳이었고 동네 어르신들이 모기가 없어질 때까지 삼삼오오 모였던 곳이다. 아침에는 믹스 커피 한 잔을 마을 사람들에게 돌리고 수다를 떨었던 우리만의 또 다른 보금자리였다”고 기억했다.

하지만 그는 한 달 전부터 시작된 공사로 놀란 가슴을 움켜잡았다. “꽝꽝하는 소리에 지진 나는 줄 알았다. 집안이 흔들리고 찬장에 놓인 접시가 깨질 것 같은 진동이었다”고 전했다.

그로 인해 공사현장과 가까운 집 주변은 지반이 내려앉고 벽에 금이 갈 정도였다. 들뜬 곳은 현장 인부들이 시멘트로 메웠지만, 손으로 만져도 부서질 정도로 허술했다.

마을로 가는 한 길 낭떠러지 공사현장 길목에 안전장치라고는 낮은 철근을 꽂아 이은 테이프와 밧줄이 전부다. 자칫 발이라도 헛디디면 추락하기 십상이다.

급기야 얼마 전 내린 비로 토사가 유출되는 위험한 상황까지 벌어져 현재는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김씨는 “이런 급경사면에 허가를 내준 청주시도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다” 며 “이미 카페촌으로 전락한 수암골인데 왜 또 하필 마을 사람들이 사는 바로 앞에 건물을 짓겠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울분을 토했다.

여기는 지난 2015년 12월, 1500여 개의 ‘연탄트리’로 수암골에 온기를 불어넣어 크리스마스를 장식했던 곳이기도 하다. 당시 청주시도 홍보에 앞장섰다.

32년 동안 수암골을 지키며 3년 전 주변의 도움으로 집 한쪽에 ‘하늘다방’이란 작은 카페를 운영하는 김 씨는 자신의 터전이 언제 없어질지 모르겠다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이 곳에 건물을 소유한 한 지인의 말은 김씨의 마음을 또 한번 짓밟는다. “남의 땅에서 수십 년 살다가 공시지가로 내보내도 500만원이면 충분할 사람들이 3000만 원 받았으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 이 깡패 많던 소굴이 얼마나 좋아졌어.” 수암골에서 40년 살았다는 그는 주변에 거대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 3대 피난민 촌이었다가 한때 청주의 대표 관광상품으로 변모했던 수암골, 지금은 마을 본래의 모습과 온기는 점차 사라지고 마지막 추억의 장소도 이렇게, 또 잊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