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읽기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2019-08-07     충청리뷰

2019년 8월9일, 오늘은 소설가 이청준의 여든 생일입니다. 그러나 그는 2008년 7월31일 예순여덟의 나이로 영면에 들어 지금 이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문학계에서의 그의 부재는 너무나 큰 슬픔이며 아픔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청준의 소설을 읽을 때 저는 늘 반듯한 자세로 고쳐 앉고 두 팔을 곧게 뻗어서 책을 받들 듯 쥐고 예를 한껏 갖추어 읽습니다. 그러면 읽는 내내 잔뜩 긴장하게 되고 다음 쪽을 잡고 있는 손은 연신 쥐고 있는 종이 끝자락을 엄지손톱으로 긁어 문지르게 만들어내고야 맙니다. 이청준의 글을 읽을 때마다 나는 무척 진지합니다. 그 진지의 발원이 몇 월 며칠이었는지는 적확하게 알 수 없으나, 1979년도쯤인 건 거반 확실합니다.


열일곱 살 청춘일 적부터 책읽기의 진중함이 시작됐던 마당이니, 지내온 지난했던 내 인생 그동안의 행간 또한 진지와 진중과 과묵의 일상다반사였음은 다시 이를 말이 아니라 하겠습니다. 이청준의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스스로를 다그치며 설득하게 되는데 그건, ‘부디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일을 포기하지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그의 소설 읽기에 몰입하기 시작하면 긴 호흡의 문장을 따라 읽는 일에 숨이 턱턱 막혀 오르게 됩니다. 그때마다 책장을 ‘탁’ 덮어버리고 길게 한숨을 고르고 싶다가도, 그 나중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에 대한 ‘궁금’의 꼬리를 물고 몰아가는 그의 문체에 종국엔 다시 이끌리고 말게 됩니다. 그리고 이내 손가락 끝에 침을 발라 다음 책장을 잡아 넘기고 말게 하니, 그의 타고난 글재주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미쳐야 미친다’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전작주의자’란 그런 것입니다. 한 작가의 모든 작품들을 모아서 읽고 그 의미를 해석하여 내 것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그럼으로 해서 작가의 작품세계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과 다짐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깊이 읽기’라는 말과 서로 통하는 일입니다.


나는 이청준 전작주의자
1981년은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일 적이었습니다. 문예반에서 3년 동안 활동을 했고, 그 해에는 문예부장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시절에는 모 대학교에서 주관하는 <교지 콘테스트>가 해마다 있었습니다. 격년제로 교지를 출간하던 모교는 교지출품을 할 때마다 늘 최고상을 타는 전통이 있던 터라, 교지를 만드는 일은 까망 교복 까까머리 고등학생일 뿐이었더라도, 일생 절체절명의 막중한 사명감에 가위눌리며 지내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그 해 교지의 논단 지면에 나는 <이청준의 작품세계>라는 제목으로 평론을 발표했습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서 퀘퀘묵은 책 먼지 내려앉은 그 시절의 교지를 다시 꺼내어 펼쳐 읽어 보았습니다. 까까머리에 챙 달린 까만 겨울 모자를 눌러쓴 검은 교복을 입은 남루한 제 모습이 기억 속에서 오롯이 되살아 소환되어 걸어 나오고 있습니다.


소설가 이청준과는 막역한 사이였던 평론가 김현의 말을 옮깁니다. ‘가난은 극복되어야 한다. 그것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가난을 내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인 것이다.’


그렇듯이 ‘그에게 가장 가증스러워 보이는 자들은 문학이 뭐 별건가라고 말하는 문학인들이다. 문학이 뭐 별건가라고 말하는 문학인들의 의식 속에는 그가 보기에는 글이란 모름지기 나와 같이 써야 한다, 나의 방법만이 옳다, 나처럼 쓰지 않는 사람은 문학을 별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라는 편견과 오만이 숨겨져 있다. 그들은 문학이 별것이 아니라고 말함으로써 문학을 별것으로 이용하고 있다. 그것은 간특하고 음흉스런 화법이다.’


그러므로 ‘그가 생각하는 문학은 다음과 같은 문학이다. 문학은 언제나 자유롭고 새로운 시선으로 우리의 삶과 세계를 편견과 아집에 사로잡힘이 없이 총체적인 넓이로 바라보고 경험하게 함으로써 모든 사람의 삶을 그 삶의 본래의 모습으로 자유롭게 되돌아가 살게 하여야 한다.’


이청준 소설 『당신들의 천국』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에도 결국 이러한 궁극의 내밀함이 녹아있다 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섬 안에서 조백헌 원장은 신뢰와 자유와 사랑이 있는 공동체운명을 함께 이야기합니다. 섬 원생들이 자신의 권력을 스스로 쟁취할 수 있도록 합니다. 진정한 자유와 사랑, 그리고 성취와 창조를 이룰 수 있다고 믿게 합니다.


이청준의 소설 속에서 이 과정은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는 치유의 길입니다. 이청준의 소설 읽기는 인내와 기다림이 그토록 필요한 길고 긴 여정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스스로를 진지하게 설득하게 되는데 그건, ‘부디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일을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한 까닭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