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선 그리고 또다른 시작
7전8기 채영만, 최연소 장우정, 첫 출마 김서용
2008-04-10 오옥균 기자
7전8기 상당구 출마자 채영만 후보
1975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를 시작으로 국회의원 출마 4회, 청주시장 출마 2회, 도의원 1회, 그리고 이번 18대 총선까지…. ‘7전8기’라는 말에는 오기가 느껴진다. 하지만 채 후보는 8번째라는데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27세 때 정치를 해야겠다고 결심했고, 정치인으로서 길을 걸어온 것뿐이라는 설명이다.
선거를 이틀 앞두고 당선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그는 “유권자들이 내 마음을 헤아린다면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하지만 다음 총선에도 출마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늙었어, 이젠 후배들이나 키워야지”라며 더 이상 출마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채 후보는 스스로 평생 야당후보라고 설명했다. 1971년 국민당 후보로 출마한 후 민주통일당, 평민당, 민주당 후보로 총선에 출마했다. 무소속으로 총선에 출마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채 후보는 “정당정치가 이뤄져야 한다. 정당이 정책을 내고, 정책선거가 이뤄져야 한다. 철새정치인은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18대 총선에서 채 후보는 국회의원 수 1/3 감축, 지방의원 명예직 환원, 노인복지시설 확충, 청주·청원통합 등의 공약을 제시했다. 그는 또 국회의원이 되면 의정비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한 측근은 “평생을 근검절약하며 살아왔다. 최근까지 새벽 거리를 돌며 모은 고물을 팔아 어려운 이웃을 도왔다. 서민을 위한 의정활동을 했을텐데”라며 아쉬워했다.
채 후보는 “상당구 180곳의 경로당을 돌며 지지를 호소했다. 그분들은 나를 지지했을 것으로 믿는다.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어려운 이웃을 대변하는 정치가 이뤄지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거칠 것 없는 용기로 ‘희망을 봤다’
전국 최연소 출마 민주노동당 장우정 후보
경북 포항 출신인 장 후보가 청주와 인연을 맺은 것은 충북대에 입학한 2002년이다. 수업료 1000만원시대를 맞아 시름하는 지금의 대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걱정도 비싼 등록금이었다. 장 후보는 비교적 등록금이 싼 국립대를 찾아 청주로 오게 됐다.
사회학을 전공한 장 후보는 졸업반이던 2005년 독거노인들에게 반찬과 도시락을 전달하는 ‘따뜻한 밥상’대표를 맡으며 본격적인 사회복지사업에 뛰어들었다.
장 후보는 “나름대로는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노인분들에게 큰 도움을 드리지 못했다. 독거노인 등 어려운 이웃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말로 출마의 변을 대신했다. 대개의 젊은이가 그렇듯 정치에 대한 불신으로 장 후보 역시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장 후보는 “민주노동당이라면 함께 힘을 모아 뜻을 펼칠 수 있을 것 같아 동참하게 됐다”고 말했다.
장 후보가 출마를 결심하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20대를 대변하기 위해서다. 그는 등록금 1000만원 시대를 종식시키기 위해 등록금을 연 가계수입의 1/12로 줄이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었다.
비록 첫 출마에서 낙선의 고배를 마시긴 했지만 장 후보는 이제 시작이라고 말한다. 청주를 떠날 것도 아니다. 장 후보는 “다음 총선에서 당이 나를 선택할지 알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도 지금까지 해오던 일들을 계속해나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떤 국회의원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장 후보는 “국민이 어떤 국회의원을 원하는지 생각한다. 서민과 같은 국회의원, 깨끗한 국회의원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이제부터 시작일 뿐 “기죽지 않았다”
민주당 세대교체 선언한 김서용 후보
김 후보는 그러나 “기죽지 않았다.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며 한 번의 낙선을 약으로 삼아 다음 총선에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김 후보가 아쉬워하는 것은 복합선거구이다 보니 결국 소지역대결구도로 선거가 진행됐고, 고향인 옥천의 표심이 결국 이용희 후보에게 쏠렸다는 것이다.
김 후보는 “피부로 느꼈던 지지율과 표로 연결된 지지율 사이에 다소 차이가 있다”며 “선거가 막상 자유선진당 이용희 후보와 한나라당 심규철 후보의 양자대결구도로 진행되다보니 막판에 쏠림현상이 나타나고 말았다”고 주장했다. 김 후보는 “비록 10%대 득표에 머물렀지만 체감득표율은 25~30%에 이르렀다”며 “그래도 세대교체에 대한 희망의 싹을 보았다”고 밝혔다.
김 후보가 그래도 아쉬워하는 것은 민주당 조직을 제대로 가동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비리전력 때문에 개혁공천의 배제대상으로 지목됐던 이용희 후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공천을 지나치게 늦추다 보니 민주당 조직이 결국 이 후보를 따라 자유선진당으로 이동하거나 아예 정지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김 후보는 “다음 선거를 바라보며 지역활동에 주력하겠다. 가장 먼저 이용희 후보의 영향으로 고령화됐던 민주당 조직을 30~50대 중심의 젊은 조직으로 재편하겠다”고 밝혔다.
김서용 후보는 서울대 사회복지학과에서 학·석사 학위를 받고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김홍신 전 의원(보건복지위원회) 보좌관을 시작으로, 보건복지부장관 비서관, 근로복지공단 재정복지 이사 등을 지낸 ‘복지통’이다. 김 후보는 이번 선거 과정에서도 정책선거를 제안하며 각종 지역정책을 개발해 공표함으로써 눈길을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