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서는 들판에서 움켜쥔 뜨거운 혼(魂)이여
역사학자 단재 만주 돌아보고 대고구려사상 정립
2004년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후 대대적 정비
2009-02-04 이재표 기자
<단재 망명루트를 따라 만주에서 베이징까지③>
1910년 4월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서인 동사강목 한 권을 들고 망명길에 올랐다. 이후 선생은 블라디보스토크와 중국의 상하이, 베이징 등에 머물며 실천적 사상가이자 언론인, 역사학자로 불꽃같은 삶을 살았다.
지난 1월4일~9일까지 단재의 망명루트를 답사한 단재문화제전추진위 답사팀은 5일 오후 뤼순감옥을 돌아본 뒤 6인1실 3등 열차로 밤새 만주 벌판을 달려 통화에 도착해 버스를 타고 지안(集安) 일대의 고구려 유적을 돌아봤다. 지안은 고구려가 424년 동안 두 번째 수도로 삼았던 국내성이 있었던 도시다.
단재는 1914년 대종교 종사 윤세복의 초청으로 봉천성 환인현에 1년 동안 머물며 고구려 유적을 돌아봤는데, “한 번 본 지안이 김부식의 고구려본기를 만 번 읽는 것보다 낫다”고 표현했을 정도이니 그 감격이 어느 정도였을지 미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단재는 이후 베이징으로 돌아가 1920년대 중반까지 연구와 저술을 일단락 한다.
이번 호에서는 중국이 2004년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이후 중국의 국가급 경관지구로 대대적으로 정비작업을 벌이고 있는 지안 일대의 고구려 유적을 사진을 중심으로 정리했다.
잔해만으로도 웅장한 대고구려
절벽에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
산성 안에는 2004년부터 중국이 발굴하기 시작한 궁궐터가 있다. 외침이 있을 경우 국내성을 대신해 수도역할을 했던 곳인데, 342년 선비족이 세운 연나라의 침입으로 불탔다고 한다. 환도산성을 둘러싼 봉우리의 바깥쪽은 절벽이기 때문에 남쪽 성문만 지키면 되는 천혜의 요새였다고 한다. 안내원은 “저 산봉우리 능선을 한 바퀴 도는데 14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밝혔다.
국가급 여유경구로 거듭나다
유적지에서 만난 중국 상인
동북지방은 추위 때문에 겨울에 유적지의 문을 닫거나 거의 관광객이 없다. 환도산성과 귀족 무덤군이 있는 입구에 답사단이 도착하자 어디선가 새콤한 산(山)열매에 설탕옷을 입힌 꼬치를 파는 상인이 나타났다. 장수왕릉 앞에선 산삼을 파는 중국인이 서툰 우리말로 수작을 걸기도 했다. 동북항일연합군을 기리는 ‘양정우 능원’에서 본 항일전사들의 복장과 너무 닮았기에 기념촬영을 했다.
무너져 내린 자존심 국내성
이제는 장군총이 아니라 장수왕릉
지안
조작과 훼손에도 우뚝한 호태왕비
얼지 않는 압록강 그러나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