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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인터뷰
10년의 약속, 반갑습니다
2002. 08. 23 by 충청리뷰
옥천중 조만희교사, ‘10년 뒤 광복절에 만나자’ 8명 제자 상봉

만남이 귀한 세상이다. 이해관계로 스치는 인연은 부지기수지만, 정으로 만나는 인연은 갈수록 희귀하다. 어쩌면 스승과 제자의 인연도 흔한 연분일 수 있다. 하지만 10년의 세월을 거쳐 금강석처럼 빛나는 만남으로 재현된 곳이 있다. 지난 15일 옥천군 옥천읍 관성회관에서 조만희교사(46·옥천중)와 8명의 제자간에 유쾌한 상봉이 이뤄졌다.
이날 만남은 10년전인 92년, 옥천중학교에서 사회과목을 담당했던 조교사가 3학년 학생들과 약속한 것이었다. 전교조 탄압이 극심했던 당시 조합원인 조교사는 담임배정에서 제외당하는 ‘설움’을 겪어야 했다. “그때가 교사임용된 지 3년째였는데, 느닷없이 담임에서 배제됐다.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고 싶었는데, 너무 아쉬웠다. 그렇다고 중학교 학생들에게 교육현실의 문제를 설명하기도 곤란했다. 한 10년쯤 지나면 막힘없이 설명하고 대화도 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서 졸업을 앞둔 3학년생들에게 ‘우리 10년뒤에 만나보자’고 제의했던 것이다”
약속한 그날이 광복절이었고 10년 뒤 그 약속은 ‘빛’을 보게됐다. 지난 15일 약속장소인 관성회관에 모습을 나타낸 제자는 모두 8명. 제자 김연준씨(26)는 “조선생님은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사회적인 얘기를 해주시면서 우리들에게 생각할 꺼리를 많이 제공해 주셨다. 1학년때는 담임 선생님이셨는데, 자율학습을 반대하셔서 종례가 끝나고 교실을 나서면 교문에서 교감선생님이 ‘다시 교실로 돌아가라’고 막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 선생님이 10년뒤에 하시고자 했던 말씀이 무엇일까, 무척 궁금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선생님이 처했던 그때 상황과 참았던 말씀이 무엇인지 이해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만남을 위해 제자들은 인접한 야외공연장 벽면에 ‘10년의 약속, 반갑습니다(92∼2002.8.15)’라는 문구의 플래카드를 내걸기도 했다. 이날 만남은 조교사의 집으로 장소를 옮겨 추억의 사진첩을 돌려보며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어느덧 20대 중반이 돼버린 제자들과 술한잔이 빠질 수는 없었고, 아직은 정정한(?) 선생님이 기꺼이 술값을 쐈다는 후문. 초임발령 이후 아예 옥천에 터를 잡은 조교사는 전교조지회장, 민예총문학분과위원장을 맡는등 지역문화의 파수꾼이 됐다. 제자들과 10년만의 상봉을 앞둔 직전에도 청마 장승깎기 축제의 기획진행을 맡아 2박3일간 땀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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