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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인터뷰
호박잎 쌈 먹으면서
2004. 07. 31 by 충북인뉴스

장마에 호박 크듯 한다더니, 호박 넝쿨이 온 언덕을 뒤덮어버렸다.

“우와! 호박밭, 잘 자라줘서 고마워”하고 인사를 한 다음 검둥개 곰실이를 먼저 무성한 넝쿨 속으로 들어가게 해서 혹시 졸고 있을지도 모를 뱀을 쫓았다.

장마 뒤엔 사방팔방으로 뻗은 넝쿨을 잘 정리해 주어야만 호박이 제대로 열린다.

야들야들한 잎사귀를 보니 군침이 넘어갔다. 저녁에 쪄 먹어야지, 연한 줄기와 잎을 따서 소쿠리에 담아 샘가로 갔다. 잎사귀 뒷면을 맞대고 ‘살 살 살 살’ 문질러야 더욱 부드러운 호박 잎 쌈을 먹을 수 있다. 호박잎을 씻다보니 갑자기 엄마가 끓여주시던 호박대 국 생각이 났다.

우리 엄마는 여름 한 철 장마가 끝나고 나면 제멋대로 뻗은 호박넝쿨을 잘라서 마당에 던져 놓고 연한 잎과 순을 자르고 조막만한 호박을 따서 국을 끓였다.

호박잎 쌈 먹으면서 남편을 힐끗 본다
누런 호박색깔이다
널찍한 돌 확에 들깨와 불린 쌀을 갈고 마당에 화덕을 놓고 불을 지핀 다음 멸치와 다시마를 넣은 국물이 팔팔 끓기 시작하면 건더기를 건져내고 들깨와 쌀 갈은 물을 넣고, 내가 장마 통에 홍수가 나면 고무 통을 타고 갈 때 쓸 수 있겠다 싶어 언제나 눈여겨보던 시렁위의 길고 넓적한 주걱을 꺼내서 날 보고 바닥이 눌지 않게 잘 저으라고 시켰다.

뜨거운 불 옆에서 내가 노 젓기를 하는 동안 엄마는 내 주먹만한 호박을 손으로 부숴서 넣고, 호박 줄기와 잎도 찢어서 넣고 풋고추도 몇 개 툭툭 잘라서 넣고 된장을 살짝 풀어서 넣은 다음 도망갈 궁리만 하며 고개를 뒤로 젖히고 슬슬 젓는 내 주걱을 건네받아 펄펄 끓을 때까지 힘차게 저어 호박대 국 한 솥을 끓였다.

마당에 평상을 놓고 큰 대접에 식구 수대로 한 그릇씩 퍼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먹는 그 맛이란 복날 닭장수가 우리 집 대문간에서 울고 갈 만큼 구수하고 시원했다.

올 봄 언덕배기에 구덩이를 크게 한 자나 파고 우리 집 네 식구 똥과 부엽토를 섞어서 호박 구덩이를 만들었다. 잘 익은 호박이 누런 황금 똥색깔인 게 그래서인지 몰라도 호박거름으로 똥만한 게 없다. 그런데 이 똥을 먹고 자란 호박만큼 잎부터 줄기 열매까지 모두 먹는 것도 드물다. 더구나 호박을 먹으면 똥도 오줌도 잘 나오는데….

먹고 싸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통 사람은 모른다. 아파서 병원에 있어 본 사람은 날마다 간호사들이 묻는 말 가운데 “오줌을 얼마나 쌌어요 똥은 눴나요”라는 말이 가장 많은 걸 알게 될 거다.

하지만 좋아하는 채소를 꼽으라면 “호박이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거다. 너무 흔해서 별로 소중한지 좋은지도 모르는 호박, 날마다 하는 일이라서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던 오줌 싸기 똥 싸기.

뚝배기에 된장을 되직하게 끓여놓고 보리밥에 호박잎 쌈을 먹으면서 늘 옆에 있어서 별로 소중한지도 몰랐던 남편의 얼굴을 힐끗 쳐다본다.

누런 호박색깔이다./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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