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하청업체 '먹이사슬' 풀려야 공생
청주 자동차 부품업체 9단계 접대 구조
새 정부의 공공부문 구조조정 바람과 공무원 사정한파로 인해 공직사회의 '몸사리기'가 두드러졌다.
관공서에서는 관련 업자들의 사무실 출입을 통제하는가 하면 부서단위의 외부접대는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로인해 IMF속의 기업이 얼마나 부담을 덜고 활동력이 높아졌는지 아직 검증할 단계는 아니지만 외견상 공직사회의 새로운 변화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공직사회 몸사리기 두드러져
새 정부의 공공부문 구조조정 바람과 공무원 사정한파로 인해 공직사회의 ‘몸사리기’가 두드러졌다.
관공서에서는 관련 업자들의 사무실 출입을 통제하는가 하면 부서단위의 외부접대는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로인해 IMF속의 기업이 얼마나 부담을 덜고 활동력이 높아졌는지 아직 검증할 단계는 아니지만 외견상 공직사회의 새로운 변화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하지만 사기업간에 이루어지는 원청-하청업체,발주-납품업체간의 먹이사슬 구조는 여전히 견고하다는 지적이다.
취재과정에서 청주지역의 한 자동차 부품 생산업체 영업담당 직원 A씨를 만났다.
정문부터 경리부까지 손써야
자동차 빅3에 포함되는 K사에 10여년동안 부품을 납품해온 이 회사는 매출의 0.5%가 접대,커미션 비용으로 지출된다고 A씨는 폭로했다.
총 9단계에 걸쳐 손을 써야만 정상적인 납품이 이루어진다는 주장이었다.
1차적으로 자동차 모델을 개발하는 연구소를 장악해야 한다.
모델 개발단계에서 필요한 부품까지 제기되기 때문에 자사 제품을 채택시키기 위해 ‘단위가 큰’ 로비작업을 벌여야 한다.
“연구소 접대는 내 수준을 벗어나 서울 본사 임원선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납품의 성패가 달려있기 때문에 상당한 단위의 로비자금이 쓰여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A씨의 설명이다.
2단계는 정문으로 이때부터 A씨의 역할이 시작된다.
정문근무자가 출입통제에 ‘꼴심’을 부리면 여간 피곤하지 않다.
명절때마다 수십만원은 챙겨줘야만 한다.
다음 차례는 구매부서인데 구매단가를 정하는 팀(3단계)과 구매수량을 조정하는 팀(4단계)에 동시에 약(?)을 써야 한다.
단가결정을 위해 납품회사에서는 원가계산서를 제출하고 담당자의 재량에 따라 값이 매겨지기 때문에 수백 단위의 확실한 접대가 필수적이다.
5단계는 품질관리 부서로 눈밖에 벗어나면 검수과정에서 불량판정을 피할 수가 없다.
6단계는 제품창고로 자사 부품을 때맞춰 적당량 적재하지 못하면 납품업체는 큰 애로를 겪게된다.
한정된 창고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창고지기’에게도 기름칠을 해야 한다.
7단계는 다소 뜻밖으로,생산조립라인의 근무자들도 절대 비위를 건드려서는 안된다.
만약 부품불량을 선언하고 조립라인을 중단시킬 경우 1분당 8만원씩 해당 부품회사에서 배상을 해야만 한다.
만약 1시간을 멈추었다면 배상금 480만원을 물어야 한다는 계산이다.
생산라인까지 ‘꼴심’
“부품 검수과정에서 불량유무를 체크한 것은 소용이 없다. 현장라인에서 시비를 걸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게 납품업체다.내가 영업일선에서 뛴 지가 10년이 됐는데,K사에 가면 이제 막 입사한 20대 초반의 생산 근무자에게도 고개를 숙여야 한다.특히 K사는 직원노조의 결속력이 대단한 회사로 알려졌는데 내부 사정을 알고나서 크게 실망했다.노조가 역기능적으로 강하다보니 회사에서 적절한 통제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A씨의 설명이다.
8단계는 전국에 흩어진 K사 직영 A/S센터다.
제품의무 보증기간내에 입고된 차량에 대해 불량판정을 내릴 경우 해당 부품업체는 신품교환과 함께 공임까지 부담하고 일정기간 납품단가에서 불이익을 받게된다.
"여간해서 제품 자체를 교환할 정도로 불량이 나오는 경우는 없다.하지만 수리를 하지 않고 부품에 대해 불량판정을 내리면 울며겨자 먹기식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그러다보니 부품회사에서 별도로 A/S센터를 관리해야만 한다"
A씨는 마지막 9단계로 경리부를 손꼽았다.
경리담당자와 통하기만 하면 전산입력된 결제 우선순위도 뒤바뀌게 된다.
그나마 4~5개월짜리 어음이지만 IMF자금 사정 때문에 1개월이라도 앞당기기 위해 무진 애를 쓴다.
특히 국방부 납품의 경우 사기업 납푹가의 2배에 육박한다는 충격적인 증언도 잇따랐다.
군용차량의 경우 특수성을 내세워 국방부가 완성차를 구입하지 않고 부품 하나하나를 지정해 제작업체와 단가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이다.
결국 부품업체마다 개별적으로 국방부와 납품단가를 정하는데 K사에 납품되는 동일한 부품이 2배 가격으로 부풀려 계약된다는 것.
이 과정에서 여지없이 접대와 커미션이 오고가지만 전문성없는 구매담당 직원이 기만을 당하기도 한다.
"우리가 원가계산서를 내면 구매담당이 비교견적을 만들기위해 같은 업종의 타 회사에 견적의뢰를 하게 되는데 미리 타 회사 담당자에게 손을 써놓으면 우리 가격 이상의 단가를 불러줄 수밖에 없다.경쟁업체 지만 이러한 협조관계는 충분히 유지된다.아예 구매담당에게 비교견적을 의뢰할 회사를 까놓고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
A씨의 보충설명이다.
국방부 단가는 사기업 2배
청주공단내 대기업 공장인 Q사에 소모품을 납품하는 B씨의 경험담도 귀기울일만하다.
“소모품은 말그대로 쓰고나면 또 새제품이 납품되니까,구매직원들이 일정기간에 소모되지 않고 남는 물건을 폐기하는 경우가 있다.소모품이 많이 남게되면 계획구매를 하지못한 책임을 질 수도 있기 때문에 납품업체 차량을 불러 몰래 실어내는 것이다.
구매담당자는 재고장부상에는 모두 소모한 것처럼 감쪽같이 허위 기재하는 것이다.특히 고가의 부품일 경우에는 납품자와 구매직원이 짜고 밀반출했다가 다시 그대로 납품하는 수법으로 두 사람이 나눠먹기를 하는 것이다"
B씨는 접대관행에 대해 “어찌보면 서로 편하지고 하는 짓이다.우리도 득이고 담당자도 실익이 있고,물론 회사돈은 내돈이 아니다는 사고방식이 문제지만 한두번 거래를 하다보면 익숙함 자체가 편하기 때 문에 담당자가 바뀌지 않는한 거래업체가 바뀔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특히 대기업 납품회사 가운데는 친인척이나 전직 임원도 있기때문에 실무자들이 우월적 지위를 누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Q사의 경우 명예퇴직한 전임 간부가 최근 인쇄업체를 차리고 다른 업자의 거래선을 차지하게 됐는데, 이에 반발한 기존 거래업자가 고위간부에게 진정서를 내는 등 말썽이 빚어졌지만 결국 유야무야로 끝나고 말았다.
전관예우는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커미션 관행에 대해서도 서로간의 먹이사슬 때문에 회사 내부에서 손대기도 부담스러운 입장이다.
원청 · 하청업체간의 구조적인 향응 · 금품수수 이외에 부당한 이권요구도 빼놓을 수 없는 문제점이다.
지난 10월 청주 흥덕구 가경동 S아파트에서는 난방배관을 베란다까지 불법시공한 세대가 12가구에 달해 말썽이 벌어졌다.
특히 이 가운데는 건설업체 직원 소유의 아파트가 상당수 끼어있었고 시공과정에서 하청업체를 통해 불법공사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됐다.
직원이 아닌 경우 배관 하청 업체에 돈을 건네주고 불법시공한 경우도 발견됐다.
결국 건설업체 직원들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하청업체에 부당한 구조변경을 요구한 혐의가 짙다.
복잡다양한 현대사회의 틀 속에서 온갖 권력과 힘이 서로 물고 물리는 역학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자기의 힘과 권력을 남용하거나 오용할 경우,틀림없이 또다른 부당한 힘에 의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세상의 변화는 나로부터의 작은 변화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