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포장해도 결국 밥그릇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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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포장해도 결국 밥그릇 싸움
  • 오옥균 기자
  • 승인 2016.05.11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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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건설협회 반발에도 기계설비 분리발주 조례안 결국 통과
현행법 분리발주 가능하지만 충북도 ‘0건’…제정 후 달라질까

‘빛 좋은 개살구’, 지금 지역 건설경기가 딱 그 모양이다. 최근 주춤해졌지만 수 년 동안 아파트 분양시장에 훈풍이 불면서 덩달아 부동산 시장도 활기가 넘쳤다. 당연히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건설경기도 좋아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흔히 건설경기 지표로 쓰이는 ‘건축 인허가 면적’도 긍정적이다. 국토부가 최근 발표한 1분기 인허가 면적에서 충북은 전년동기대비 전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상승률(464%)을 보였다. 하지만 이는 주거용 건축물 그중에서도 아파트 허가면적이다. 주택전문 대형 건설사의 몫이지, 지역 건설사 몫이 아니다. 반면 관급공사 발주 건은 해마다 감소하고 있고, 이익률도 감소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최근 지역 건설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갈등 배경도 결국 여기에 있다. <편집자 주>

 

▲ 사진설명-지난 4일 충북도의회가 기계설비 분리발주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본회의가 열리기 앞서 대한건설협회 충북도회 회원들이 조례안 통과 저지를 위해 항의하고 있다.

충북도의회가 ‘공공건축물 기계설비 분리발주 조례안’을 가결했다. 조례 제정을 앞두고 이해관계자인 대한건설협회 충북도회(이하 충북건협)가 이례적으로 전방위 압박을 가해, 통과 여부가 불투명했지만 결국 통과됐다. 업계에서는 조례 제정이 실질적인 분리발주로 이어질 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충북도교육청이나 청주시는 때에 따라 분리발주를 해왔지만, 충북도는 단 한 차례도 분리발주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충북건협 관계자들은 충북도의회 347회 임시회 2차 본회의가 열리던 4일까지도 조례 통과를 막기 위해 총력을 다 했다. 도의회를 찾은 이들은 분리발주 조례 철회를 요구하며 도의회를 비난했다. 도의회가 이해관계자인 건설협회 의견수렴과정을 거치지 않았고, 해당 조례가 상위법인 국가계약법과 지방계약법에 있는 내용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 조례 제정 철회를 요구하는 공식적인 이유다.

본회의도 순탄치 않았다. 여야 할 것 없이 상임위 소속 의원 전원 찬성으로 본회의에 부쳐진 조례안임에도 김인수 도의원이 조례안 통과 보류를 요구했다. 투표까지 가려던 조례안은 논의 끝에 결국 행정문화위 수정안대로 가결됐다.

조례안이 본회의를 통과한 직후에도 충북건협은 “기계설비 분리발주 조례가 민생 현안을 해결하는 조례처럼 허울만 포장돼 의견 수렴 없이 일사천리로 통과됐다”고 비난하며 “조례가 실효성 있게 시행되는지를 현장에서 확인할 것이다. 혈세가 낭비하지 않는 게 무엇인지 잘 헤아려 법이 정당하게 집행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시민들은 심각성을 체감하지 못하지만 분리발주가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 기존 방식대로 통합발주를 하게 되면 종합건설사가 원청이 되고 각 공정에서 필요한 전문건설업체에 하도급을 주는 형태로 공사가 진행된다. 이와 달리 분리발주를 하면 공사를 원활하게 추진하기 어렵고, 하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충북건협의 주장이다.

반면 대한기계설비협회 충북도회(이하 충북기협)는 통합발주가 오히려 부실 시공과 품질 저하를 초래하고, 하자 책임도 불분명해진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도 갑론을박이 있지만 대체로 공정에 따라 평가를 달리 한다. 다시 말해 공정을 명확히 구분 지을 수 있는 공사에 대해서는 충북기협의 주장이, 구분이 어려운 공정은 충북건협의 주장이 힘을 얻는다. 충북기협은 기계설비공정이 하자책임이 용이하고 공정관리에 지장이 없는 공정이라는 점에서 분리발주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분리발주, 박근혜 정부 공약

전문건설업계의 분리발주 요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원청으로 공사를 진행하는 것과 하도급업체로 공사에 참여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한 전문건설업체 관계자는 “전문건설업계가 어려움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원청인 종합건설사가 초저가로 하도급을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대금을 미지급하거나 지급을 지연해, 이로 인해 도산하는 업체도 부지기수”라고 설명했다.

분리발주 요구가 거세진 것은 2013년이다. 18대 대선에서 전문건설 분리발주를 공약으로 내세운 박근혜 후보가 당선된 것이다. 새로운 정부는 분리발주 실행을 위해 국가계약법에 분리발주 원칙을 신설하고, 분할계약 금지 원칙이 담긴 국가계약법 시행령 68조를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전문건설업계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건설업의 특성상 모든 전문건설업을 분리발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충북건협이 앞서 주장한대로 공정을 분리할 수 없는 전문건설업을 분리할 경우 하자책임이 불분명하고, 시공의 비효율성에 의한 품질저하 등이 우려된다. 이는 곧 국가예산 낭비라는 지적때문에 결국 국가계약법 시행령 68조 폐지는 불발됐다. 대신 개정을 통해 예외조항을 둬 ‘하자책임 구분이 용이하고 공정관리에 지장이 없는’ 공사나 ‘분할 시공이 효율적인’ 공사에 대해서는 분리발주 할 수 있도록 했다.

국가계약법 시행령 68조나 지방계약법 시행령 77조는 원칙적으로 동일 구조물공사 및 단일공사를 분리발주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법이기도 하지만 2013년 개정으로 분리발주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전문건설 분리발주 확산 ‘기우’

충북건협 주장대로 도의회에서 제정된 조례는 국가계약법이나 지방계약법의 내용을 넘어서지 못한다. 이미 관련법에 의해 구분 가능한 공정은 분리발주가 가능하다. 충북기협의 주장대로 기계설비업이 구분 가능한 공정이라면 현행법만으로도 분리발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충북건협은 왜 반대할까. 충북건협은 도의회 결정에 대해 “앞으로 기타 27개의 전문업종도 같은 논리로 분리발주 조례를 요청하면 다 만들어 줄 수 있는지 묻고 싶다”고 반문했다. 조례제정이 확산되는 것을 우려한다는 뜻이다. 기존 체계에서 원청인 종합건설 입장에서 분리발주는 달가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더 결정적 이유는 건설경기가 최악이라는 점이다.

한 종합건설사 대표는 “일이 많이 줄었다. 이익률도 줄었다. 국가기반시설도 대부분 갖춰졌고, 예산편성에서도 다른 분야에 밀리면서 공공공사가 늘어날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수년째 바닥이라고 하지만 해마다 상황이 더 안 좋다”고 설명했다.

한 기계설비업체 대표도 “기계설비업계가 분리 발주를 요구하는 것이나 종합건설업계가 분리발주를 막으려는 것이나 결국 목적은 하나”라고 설명하면서 “청주시는 지난달 상당구청사 건립공사 입찰 공고를 내면서 기계설비 31억 3000만원을 분리발주했다. 충북도교육청도 분리발주를 해오고 있다. 충북도에서만 분리 발주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국가계약법이나 지방계약법 예외조항에 근거해 분리발주가 가능하지만 유독 충북도만 분리발주가 전무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전문건설업계는 충북건협이 여러 방법을 통해 통합발주를 유도했다고 주장한다. 이젠 조례까지 제정된 이상 발주부서에서도 지금까지의 관행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기계설비업계가 품는 기대다. 양 협회는 공식입장을 통해 밥그릇 싸움으로 비쳐지는 것을 경계했지만 실상은 밥그릇 싸움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충북건협이 우려했던 분리발주 조례 확산도 기우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대한전문건설협회 충북도회는 “기계설비는 전문건설업이지만 단일공정으로 분리해 나간 업종이다. 반면 전문건설협회에는 18개 업종의 1906개 업체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특정 한두 업종만 분리발주 조례를 요구할 수는 없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충북건협이 지적한 절차상 문제도 논란거리다. 도의회는 조례 제정 필요성에 대해 “사회적 병폐인 하도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충북건협이 지적한 의견 수렴 과정의 형식성이나 서둘러 처리한 점 등은 여전히 의문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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