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그녀 이야기 <제5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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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그녀 이야기 <제51회>
  • 이상훈
  • 승인 2004.1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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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구신화쉰한번째이야기
여우리는 벌구를 향해 마구 짖어대는 개에게 뭔가 손짓을 살짝 해보였다.
그러자 미친듯이 짖어대는 그 개는 벌구가 자기집을 찾아와준 손님이라는 걸 알아들었음인지 더이상 짖지를 않고 벌구를 향해 갑자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하아! 요놈 참 신통하다!"

벌구는 씨익 미소 지으며 잠시 허리를 굽힌 채 개의 머리와 몸통을 살살 쓰다듬어주었다. 개는 이제 친해지고 싶은지 벌구에게로 안기資?덥썩 파고들어왔다.
개를 끌어안고 기분이 몹시 좋아진 벌구는 슬쩍 고개를 쳐들어 여우리를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지금 이 개 암놈이요 수놈이요?”

“호호... 그렇게 바짝 몸을 갖다대고도 모르겠어요?”

여우리는 이렇게 말하며 자기 얼굴에 덮어씌웠던 진흙덩이들을 하나하나씩 떼어내기 시작했다.

“하하... 내가 지금 이 놈의 두 다리를 쫙 벌려서 보면 당장에 알아낼 수 있겠지만, 개에게도 체면이 있는지라...”

“호호호... 그럼 알려드릴께요. 암놈이에요.”

여우리가 이렇게 대답할 때에는 그녀의 얼굴을 가리고있었던 진흙들이 모두 떨어져나가서 그녀는 또다시 환한 미녀로 탈바꿈되어있었다.

“어허! 암놈이라구요? 휴우~ 난 또 저놈이 수놈인줄 알고....”

벌구는 여우리의 말을 듣자 무척 다행이라는 듯 한숨을 길게 몰아내쉬었다.

“네에? 어머머! 벌구님! 설마하니 아주 이상하고 끔찍한 상상을 하시면서 그걸 제게 물어보시는 건 아니겠지요?”

여우리가 방안으로 들어가려다말고 갑자기 벌구를 무섭게 노려보며 화난 듯이 따져물었다.

“아, 그만! 우리 쓸데없는 걸로 자꾸 시간을 낭비할 게아니라 중요한 것부터 빨리 들어보기로 합시다. 그래서... 여덟명의 고수가 우리 아버님께 어떻게 했었다는 건가요?”

벌구가 여우리에게 다가가며 다시 말했다.

“호호... 어떻게 되었을가요? 벌구님이 한번 추측해 보실래요?”

방안에 천천히 발을 들여놓은 여우리가 생글생글 웃는 낯으로 벌구에게 다시 물었다.

“글쎄요. 어쨌든간에 아버님께서 그냥 호락호락하게 당하시진 않으셨을텐데...”

벌구가 안고있던 개를 놔주고는 그녀를 뒤따라 천천히 방안으로 들어서며 이렇게 말했다.

“맞았어요. 여덟명의 고수가 새벽에 급습을 하긴 했는데 별안간 잠에서 깨어난 아버님께서는 완전히 발가벗은 몸으로 용감히 맞서서....”

“아, 잠, 잠깐! 왜 그런 말을.... 아버님께서 용감히 맞아 싸우셨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지 아버님께서 굳이 옷을 입으시고 안 입으시고따위가 중요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여우리를 뒤따라 비밀스러운 방 안으로 막 들어간 벌구가 몹시 당황하고 언짢은 표정으로 언성을 크게 높히며 따져물었다.

“하지만 저는 그저 들었던 바대로 한푼도 더하거나 덜함이 없이 벌구님께 말을 전해드리는 입장이에요. 그러니 제발 저를 이해하시면서 들어주세요. 아버님께선 그때 완전히 홀랑 옷을 벗고있는 상태로 8명의 고수들을 맞아 싸우시면서도 벗어놓았던 옷가지를 하나하나씩 챙겨서 입으셨답니다. 상대방은 살상용 무기를 들고 미친듯이 덤벼드는데 아버님께서는 완전히 알몸으로 맞아 싸우시면서도.... 마침내 아버님께서 옷을 죄다 입으셨을 때에는 8명의 고수들이 갑자기 공격을 딱 멈추고는 바닥 위에 두 무릎을 꿇으며 항복하더래요. 아버님께서 옷을 다 챙겨입은 이상 그 다음에 본격적으로 벌어지게될 상황이 무엇인지 뻔히 짐작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그때 뒷방에 숨은 채 오돌오돌 떨고계시던 벌구님의 작은 어머님께서는 아버님의 말씀을 듣고 이들 8명의 고수들에게 먹일 차(茶)를 가지고 들어오셔서 한사람에 한잔씩 따라드렸대요. 처음엔 아무도 그 차를 마시려고하지 않다가 아버님께서 먼저 드시자 모두들 안심하고 마셨대요. 그랬더니 그분들이 '아 차(茶) 맛 기가막히게 좋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차맛은...' 그러자 아버님께서는, '보성벌이라는 곳에 가서 특별히 구해온 차라서 맛이 좋소이다!'하시며 흐믓해 하시더랍니다. 그래서... 모두 한잔씩들 더 마시기도 했는데..."

“아, 잠깐! 여우리! 불필요한 얘기들은 일단 쏙 빼놓고 중요한 얘기들만 골라서 들려주실 수는 없을까요? 그렇게 차(茶)맛 얘기 따위 같은 시시콜콜한 것까지도 죄다 꺼내서 얘기를 하시다가는 나중에 우리 아버님과 작은 어머님의 잠자리 얘기까지도 튀어나오고 말겠소.”

“어머머! 벌구님! 그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제가 바로 그 애기를, 아버님의 잠자리 얘기를 이제부터 막 꺼내보려고 하던 참이었는데.... 호호호... 보기보다 신통력이 좀 있으신가봐...”

여우리가 자기딴엔 놀랍고 신기하다는 듯 예쁜 두 눈을 깜빡거리며 벌구를 빤히 쳐다보았다.

“저에게는 시간과 여유가 없으니 중요한 것들만 탁탁 추려가지고 얘기해주세요. 여우리 당신이 들려주는 얘기를 그냥 그대로 모두 들으려다간 정말로 세월 다가고 말겠어요.”

마침내 벌구가 언성을 크게 높히며 말했다.

“알았어요. 그럼 빨리 얘기해 드리겠어요. 그 여덟명의 고수들 가운데에는 비교적 잘생긴 사람도 있고 못생긴 사람도 있었으며, 키가 크거나 애들같이 아주 작은 사람도 있었대요. 얼굴이 수세미처럼 박박 얽은 사람도 있었다는데, 어쨌든 마음을 탁 터놓고 서로 얘기를 나누다보니 사람들이 그렇게 모두 좋을 수가 없더라나요?”

여우리는 이제 아예 벌구를 놀려줄 참인지 아까보다 더 느릿느릿하면서도 별볼일 없는 얘기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 아무래도 안되겠네요. 아무래도 내가 주도권을 잡아가지고 얘기를 진행시켜나가야지, 이러다가는 세월 다 가겠어요. 그래, 그 여덟명의 고수들이 우리 아버님과 결국 친구가 되었다는 겁니까?”

참다 못한 벌구가 이렇게 물어왔다.

‘친구가 아니라, 세호라는 분처럼 아버님을 사부님으로 모시고 무예를 배워 보겠다고 했대요.“

“하지만, 그때 그 여덟명의 고수들은 하늘말촌 촌장 딸에게 이미 받은 돈이 있을 터인데....”

“네, 그래서 아버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대요. 내가 이곳에서 멀리 떠나고 싶어도 약속된 사람이 나를 찾아와줄 것이니 무작정 이곳에서 버티고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하늘말촌 촌장딸은 스스로 고집을 꺾거나 포기를 하지 않을 것이니, 머잖아 곧 당신들 같은 사람들을 내게 또 보낼 것이다. 그러니 이를 어쩌면 좋으냐... 그러니 우리 이렇게 한번 해보는 것이 어떨까..... 아버님께선 이렇게 말씀하시며 여덟명의 고수들에게 비밀스러운 얘기를 해볼 것이 있으니 좀더 가까이 다가와 앉으라고 하셨대요. 바로 이곳에서 아버님과 그분들 간에 아주 비밀스럽게 의논된 것이 있었으니...”

여우리는 이렇게 말을 하고나서, 잠시 숨을 돌리려는지 가만히 앉은 상태에서 심호흡을 길게 한번 몰아내 쉬었다.

“어허! 여우리! 지금 그 심호흡법, 누구한테 배우셨소?”

벌구가 무척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여우리에게 물었다.

“어머님, 그러니까 벌구님의 작은 어머님되시는 분께 제가 직접 배웠지요.”

여우리가 대답했다.

“어허! 그러고보니 여우리! 당신은 우리 작은 어머님과 어떤 관계가 되는 거요? 나로선 너무 궁금하니 우리 그거부터 미리 알아두고 나머지 얘기를 들어보기로 합시다!”

“어머머! 벌구님! 뭘 그렇게 바빠요? 제가 하는 얘기 듣다가 보면 저절로 다 아시게 되는 것을....”

“하지만, 내가 그 얘기를 들을 때에는 머리털이 죄다 빠지고 난 다음이겠소. 굼벵이처럼 이렇게 더디게 얘기를 해나가는데 대체 어느 세월에..."

벌구가 툴툴거리며 말했다.

“호호... 기다리세요. 지금까지 기다리셨으면서 그 정도도 더 못기다리세요? 얘기도 제법 무르익어야만 제때에 맞춰서 나오듯이, 제아무리 바쁘다고 하더라도 뱃속에 든 아이를 석달 만에 빼낼 수는 없는 일 아니에요?”

여우리가 예쁜 미소를 입가에 가득 띄우며 뭔가 유혹이라도 하려는듯 벌구를 살짝 쳐다보더니, 탁자 위에 있는 주전자를 집어들었다.

"그게 뭐요?"

벌구가 물었다.

"차(茶)예요. 그때 작은 어머님께서 여덟명의 고수분들께 드렸던 그 유명한 보성벌에서 따가지고 온 차(茶)잎을 말리고 볶아서 만들었지요. 식었지만 그래도 마실만 할거예요."

여우리가 이렇게 대답하며 아주 익숙하고 예의바른 자세로 주전자를 잡아 벌구앞에 차 한잔을 따라놓았다.

“흠흠흠.... 차(茶) 따르는 솜씨를 보아하니 우리 작은 어머님께 배운 것 같고, 작은 어머님께서는 그래도 교양을 갖추신 분 같군요."

"그야 당연하지요. 적어도 촌장 따님 곁에 붙어서 내내 시중을 들었던 분이셨으니..."

여우리가 살짝 눈을 흘겨보며 말했다.

"으흠흠.... 그, 그래... 그때 우리 아버님께서는 찾아온 여덟명의 고수들과 머리를 맞대가며 대체 뭘 비밀스럽게 의논하셨답니까?”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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