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그녀 이야기 <제5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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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그녀 이야기 <제53회>
  • 이상훈
  • 승인 2004.1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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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구신화쉰세번째이야기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계속 애기해 보세요.”

벌구는 자못 흥미롭다는 듯이 두 눈을 껌뻑거려가며 여우리의 다음말을 계속 재촉해댔다.

“네, 말씀드리지요. 일단 한숨을 돌리고난 아버님은 세호라는 분께 몇가지 무예 비급을 전수해 주시고, 게다가 기(氣)를 이용하여 그 분 어머니까지 치료해주셨다지요. 그 바람에 항상 통증에 시달리며 괴로워하던 사람이 깨끗이 나아 마을을 쏘다니기도 하였다지요. 아무튼 세호라는 분은 자기 어머니 아픈 병을 낫게해드린 보답으로 남몰래 많은 재물을 아버님께 드렸다지요. 물론 아버님께서는 처음엔 그걸 안 받으시려다가 하도 강력하게 권하는 바람에 할 수없이 받게 되셨고, 그걸 없애기 위해 사람들을 사가지고 저 검은바위성을 짓기 시작했던 거예요.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이 집은 아버님과 세호라는 분, 그리고 그분을 따르는 제자분들이 무술 공부를 할 때 쉬는 시간을 틈타 조금씩 몰래 지으신 거래요."

“아, 그런데 말씀입니다. 저는, 그 여덟명의 무사 얘기가 더 궁금하군요. 못난이 하늘말촌 촌장 따님을 서로 차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거의 사투(死鬪)를 벌였다는....”

벌구가 다시 말했다.

“네. 그럼 그 얘기도 마저 해드릴께요. 아무튼 촌장따님은 그분들끼리 무예 시합을 겨루고나면 반드시 상대한 두 사람에게 각각 찾아갔다지요. 시합에 져서 몸과 얼굴이 엉망으로 되어진 사람에겐 굉장히 미안한 표정을 지어가며 자기 딴엔 위로를 해준답시고, 어머머! 아무리 정정당당하게 겨루는 무예 시합이라고해도 그렇지... 어떻게 사람 얼굴을 이렇게 피떡을 쳐놓을 수가 있어요? 흑흑.... 미안해요! 저 하나 때문에 이 지경으로 되시다니.. 전 요즘 같아서는 그저 죽고만 싶은 심정이라니까요. 하지만 열심히 해보세요. 잘 하면 이길 수 있을 것 같더라구요. 다음 번엔 좀더 좋은 모습으로 찾아뵙길 원해요!' 그러나 촌장 따님은 그 상대방, 그러니까 무예 시합에서 이긴 사람을 찾아가서 하는 말은 이와 영 딴판으로 아주 달랐어요. 자기 딴엔 이긴 사람을 고무해 주고 또 격려를 해준답시고 입가에 살살 웃음까지 띄워가며, "아까 제가 얼핏 보아하니 참 잘 부수시던데... 초장부터 쌍코피를 떠트리셨지요? 너무너무 통쾌하고 시원해 보이더라구요. 그런데... 에이, 기왕에 깨뜨리실 바에야 철저히 두들겨서 아예 끝장을 보셔야지요. 코뼈를 발로 으깨 완전히 짓뭉개 버리세요! 그래야 더이상 엉겨붙지 않지요. 아무튼 참 잘하셨어요. 그걸 보는 동안 어찌나 제 가슴이 시원하고 또 후련해 지는지 막혔던 것들이 죄다 확확 뚫려지는 기분이었어요. 계속 까불거나 또 덤비던가하면 아예 번쩍 집어들었다가 대갈통이 바스라지건 으스러지건말건간에 패대기를 냅다 한번 쳐버리세요. 뒈지건 말건 시합하다 죽는 건 어쩔 수 없잖아요?....’이렇게 여기가서 하는 말 다르고 또 저기가서 하는 말이 영 다르니 세상에 어느 남자가 이런 여자를 좋아하겠어요? 아무튼 여덟명은 불을 뿜듯 며칠간 계속 무예 시합을 벌여나갔고, 못생긴 촌장 따님은 오래만에 볼거리를 만났다는 듯 열심히 쫓아다니며 구경했다지요. 그런데.... 못생긴 촌장 따님도 시간이 조금씩 지날수록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지요. 왜냐하면, 당연히 시합에서 이긴 사람들끼리 올라가서 맞붙거나해서 최후 승자를 가려야만할 터인데, 이상하게 이긴 사람은 놔두고 진사람들끼리만 계속 투덜대가며 겨루고들 있으니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겠지요.결국 이런 사실, 그러니까 여덟사람이 겨루는 무예 시합에서 최종으로 진 사람이 자기를 어쩔 수없이 차지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촌장 따님은 불같이 크게 화를 냈다지요. 그리고 엉엉 울며 통곡을 했다지요. 도저히 자존심이 상해 견딜 수가 없다고요. 그래서 여덟명의 무사들이 성(城) 아래에 모여 담소하고있는 걸 보자 촌장 따님은 바로 위 성벽으로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처음엔 이렇게 큰소리로 외쳤대요. 저 정말이지 창피해서 살고싶지도 않아요! 나 여기서 그냥 뛰어내릴래요!’하면서 진짜로 뛰어내릴 것처럼 몸짓을 해보였대요. 그런데 이상하게 여덟 무사를 비롯하여 그 주위에 있는 어느 누구도 얼른 쫓아와 그녀를 막거나 말리지를 않았대요. 저, 여기서 그냥 뛰어내려 죽어버린다니까요?’ 촌장 따님이 다시 한번더 크게 외쳤지만 사람들은 그저 영문도 모른 채 두 눈만 멀뚱거려가며 멍하니 쳐다보고있었대요. 그때 촌장 따님은 어기간히 독이 오르고 화가 났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입에 게거품을 품어가며 거침없이 독설을 퍼부었다지요. '야! 이놈들아! 그래, 거르고 거른 찌꺼기가 나를 차지하도록 일을 꾸몄냐? 이 햇병아리, 애병아리 같은 새끼들아! 내가 진작에 먼저 태어나서 네놈 에미가 네놈 빼놓으려할 때 어린 대가리를 걷어차서 도로 들이밀어놓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로구나! 나 죽을래! 말리지마! 이 쫄장부 새끼들아!' 그때 촌장 따님은 불과 몇달전 그 근처 성벽 위에서 변심한 자기 남자를 큰소리로 욕하고 꾸짖으며 그대로 뛰어내렸던 처녀가 생각났던 모양이래요. 그때 마침 아래에는 그 남자가 초조하게 기다리고있다가 떨어지는 그 여자에게 얼른 쫓아가 덥썩 안아주는 바람에 무사히 살았다지요. 그래서 촌장 따님은 성벽 위에서 무모하게 뛰어내리려고하면 어느 누가 쫓아와서 일단 말려줄 줄로 알았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자, 혹시 자기가 여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뛰어내리면 최소한 어느 누구라도 쫓아와 안전하게 자기를 잡아줄거라고 착각을 했던 거예요. '나 이렇게 망신당하며 살아갈 바에야 차라리 죽고 말겠어요! 저 여기서 뛰어내릴래요! 뛰어내린다구요!’이렇게 하늘말촌 촌장 따님은 이렇게 고래고래 소리지르다가 마침내 체면상 부득이 성벽 위에서 뛰어내리고 말았던 거예요. 자, 벌구님! 어떻게 되었겠어요?”

여우리가 이렇게 말하며 벌구의 눈치를 살짝 살폈다.

“그 글쎄요. 바로 그 아래에 여덟명의 무사가 모두 모여 있었다면 최소한 어느 누군가가 마지못해 쫓아가서 받아주긴 했겠지요?”

벌구가 대답했다.

“호호... 그랬을 것 같긴한데....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아아니.... 그, 그럴 수가.... 그, 그럼.... 그때 촌장 따님이 공개적으로 자살하는 걸 모두 그냥 지켜보고만 있었단 말이요?”

벌구가 크게 놀란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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