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자원학회 수해 보고서 문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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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자원학회 수해 보고서 문제 있다”
  • 오옥균 기자
  • 승인 2005.03.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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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리 수해농민 이종태 씨, 보고서와 씨름
“수해 8년 후 만들어진 보고서 당시상황 왜곡”

오송리 이종태(50)씨는 봄을 맞아 분주하다. 밭에 감자도 심고 배추씨도 뿌려야 하는 등 농사를 시작하는 3월이 농민들에게는 가장 바쁜 시기 인데다 이 씨는 농사일 말고도 바쁜 시간을 쪼개가며 열심히 하는 일이 또 하나 있기 때문이다. 1995년 수해에 대해 농업기반공사가 제기한 항소심에서 농민들의 패소에 결정적 역할을 한 한국수자원학회의 연구보고서를 검토하는 일이다.

2003년 대전고법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서평리 일대 수해 농민들은 1심판결을 뒤엎는 고등법원의 판결에 아연실색 할 말을 잃었다. 1심에서는 농업기반공사의 70% 과실이 인정되며 승소했지만 항소심에서는 10%안쪽의 피해만이 인정되는 등 패소하고 말았다. 하지만 농민들은 한 참 시간이 흐른 뒤에도 무엇 때문에 패소를 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대책위원회 김홍식 씨는 “농사일에 바쁜 농민들이 막상 재판에는 신경 쓰지 못한 것이 화근이다. 항소심에서 판사가 당시 상황을 증명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를 제출하라고 했다는 데 우리는 전해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결국 한 쪽에서만 제출한 보고서가 항소심의 중요한 근거가 됐던 것이다. 대전고법은 항소심에서 농업기반공사가 용역 의뢰해 한국수자원학회가 작성한 ‘서평지구 수해건의 감정을 위한 연구보고서’를 기초로 인재가 인정되는 일부에 대해서만 보상판결을 내렸다. 보상을 받은 농민은 고소인 87명 가운데 10명에 불과했으며 보상액 또한 9000여만원에 그쳤다.

“자연배수량 산정 잘못됐다”
피해 농민들은 지난 2월에서야 한국수자원학회의 보고서를 받아 볼 수 있었다. 이종태 씨는 “재판에서 우리가 패소하게 된 결정적인 자료를 더 이상 법에 호소할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받아보게 됐다”며 실소했다.

이 씨는 억울한 마음에 지난 달부터 300쪽이 넘는 연구서를 매일매일 들여 다 봤다. 이 씨는 “보고서에서 말하는 각종 공식이나 계산법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수해를 입은 지 8년이 지나서 만들어진 보고서에는 수해 당시 내가 보았던 광경과 피해사항이 왜곡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첫째로 당시 자연배수로 농지에서 미호천으로 유입된 물의 양에 대한 계산이 틀리다고 지적했다. “보고서 부록 편, 배제량을 고려한 침수량 산정을 위한 계산결과라는 란의 내용은 현실과 동떨어진다. 1995년 수해를 입은 후에도 해마다 장마철이면 같은 일이 반복된다.

배수장을 통해 농지의 물이 미호천으로 자연배수가 되고 2~3회 씩은 배수펌프가 작동한다. 미호천의 수위가 높아지면 먼저 하류쪽에 위치한 배수장(1호배수장)이 자연배수를 중단하고 펌핑을 시작한다. 그 후에야 상류쪽에 있는 배수장(2호배수장)이 수문을 닫는다. 상류보다는 하류 쪽이 물이 쉽게 불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고서에는 2호배수장이 먼저 문을 닫은 것으로 적혀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착오로 인해 침수량이 잘못 계산됐다는 것이 이 씨의 주장이다.

이 씨는 또한 미호천에서 역류한 물에 의한 피해지역 기준이 잘못됐다고 말했다. 한국수자원학회 보고서 내용의 골자는 배수장 시설이 정상적이어도 당시 내린 비로 인해 해발 24.07m까지 침수됐다는 것이다. 보고서에는 ‘배수장 공사로 인해 역류된 물의 양은 695,474㎥로 서평리 침수지역의 총 침수량 8,207,604㎥의 8.4%이며, 양수장에서 역류한 물의 양을 합쳐도 총 침수량의 11.4%’라고 명시돼 있다.

“농작물 특수성 고려하지 않았다”
대전고법은 보고서의 계산에 따라 해발 24.07m까지는 자연재해로 판단하고, 해발 24.07m부터 최고 침수량인 해발 24.25m까지 보상하도록 판결했다. 하지만 이 씨의 주장은 달랐다. “법원 판결은 수치만을 계산한 판결이다. 농사를 짓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을 간과했다”고 그는 말했다.

법원의 판결대로라면 해발 24.24m인 논에 벼농사를 짓는 경우는 보상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벼가 1m이상 자란 상태인 8월 말 논에 물이 1cm 찼다고 해서 벼가 죽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배추, 파와 같은 채소류는 조금만 물이 차도 죽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벼농사를 짓던 해발 24.17m인 농지와 24.08인 농지에 대해서는 보상이 이뤄졌다.

이 씨는 “24.17m라면 한국수자원학회가 말하는 침수위인 24.25m에 불과 7cm 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논과 논 사이에 있는 논두렁조차 계산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논두렁의 높이만 해도 30cm이상인데 7cm가 물이 차오른다고 해서 물이 논두렁을 넘어설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이 씨를 괴롭게 한 것은 보고서로 인해 자신이 거짓말쟁이가 돼버렸다는 사실이다. “한국수자원학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서평리 일대의 침수는 해발 24.25m까지 된 것으로 결론 내려졌다. 나는 수해로 인해 파 농사를 망쳤는데 판결대로라면 침수도 되지 않은 곳을 내가 억지를 쓰는 꼴이 됐다”고 말했다.

수해 당시 이 씨의 파밭은 5cm이상 물이 찼다. 하지만 이 씨의 밭은 한국수자원학회의 측정결과 해발 24.32m로 나타나 보상에서 제외됐다. 보고서의 내용을 따르자면 이 씨의 밭에는 물이 고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씨는 “보고서의 수위계산이 잘못됐다고 밖에 달리 생각할 수가 없다. 뻔히 내가 본 것을 아니라고 하니 답답한 노릇이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지금도 틈만 나면 보고서에 매달린다. 이제 와서 잘잘못을 가려봐야 누구 하나 봐주는 사람도 없겠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속이 후련할 것 같아서다. 바쁜 일이 끝나면 개인 돈을 들여서 해발고도 측정도 새로 할 계획이다. “비용이 많이 들어 다 해볼 수는 없지만 몇 군데만이라도 해 볼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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