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수의 메아리] 손흥민이 흥분시키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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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수의 메아리] 손흥민이 흥분시키는 이유
  • 김천수 기자
  • 승인 2022.06.08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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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국장
김천수 취재국장

역사적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라운드에서 직접 그의 경기를 본 것은 아니지만 실황 중계를 놓치지 않고 시청한 것만으로도 설레는 가슴을 안정시킬 수 없었다.

6일 밤 8시, 손흥민 축구 국가대표 선수가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칠레와의 A매치 평가전을 치렀다. 그의 100번째 국가대표 A매치 경기였고, 그림 같은 프리킥 자축포를 작렬시켰다. 철벽 수비벽을 피하면서 우측 골망을 흔든, 골키퍼가 날아오는 볼을 보고 몸을 날리면서도 막지 못하는 코스로 향한 완벽한 골인.

이 장면이 흥분의 다는 아니다. 90분 경기 동안 22명의 선수 중 손흥민의 빠른 움직임과 발놀림, 패스웍과 슈팅은 특출났다. 2일 밤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브라질과의 친선 경기에서도 흥민은 역시 달랐다. 골을 기록하지 못하고 1대 5로 패했지만 그의 공간을 활용한 움직임은 다른 국내 선수들과는 격의 차이를 보여줬다.

흥민의 경기를 보면서 나를 흥분 시키는 것은 그 만이 아니다. 축구는 22명이 하는 경기다. 1명의 특출난 선수가 있다고 해도 소위 ‘발이 맞아야’ 패스웍이 살아서 슈팅으로 이어져 골이 나올 수 있다. 수비수를 달고 달리면 공간으로 볼이 공급돼야 한다.

하지만 이번 두 경기를 지켜본 결과, 한국 선수들은 패스가 이루어져야 할 타이밍에도 동료에게 볼을 주지 못하고 멈칫 하고 백패스를 하는 장면을 번번이 연출했다. 내달리던 흥민은 수차례 헛힘만 쓰기 일쑤였다. 해외에서 뛰던 선수들조차 공간이 아닌 사람을 향한 패스를 남발했다.

브라질전과 비교해 칠레전은 나아졌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동의할 수 없다. 후반 7분 칠레 선수 한 명이 퇴장 당했다. 10명과 싸우면서도 11명과 그럴 때처럼 백패스가 남발됐다. 1대 0으로 앞선 상황에서 다득점이 나와야 하는 데도 그렇지 못했다. 칠레가 우리 보다 강팀이라고 하지만 2진에 가까운 선수들로 나왔다. 서서하는 축구, 습관적인 백패스로는 월드컵 16강의 벽을 넘을 수는 없다. 칠레전은 졸전이나 다름없었다. 추가 시간에 나온 흥민의 골이 없었다면 어떤 평가가 나왔을까.

관중들의 눈은 흥민의 수준에 도달해 있다.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놓치지 않고 시청하는 축구 팬들은 이런 졸전에 만족할리 없다. 아무리 눈을 아래로 내려놓고 본다고 해도 백패스를 남발하고 공간 패스를 하지 못하는 수준의 경기에는 박수를 보내지 못한다. 나는 칠레전 후반 동안 자연스럽게 칠레를 응원하고 있었다. 차라리 역전패를 당해서 깨달음이라도 줘야한다는 마음의 발로였다.

흥민이 나를 가장 흥분 시킨 날은 지난달 23일 새벽이었다. 그는 프리미어리그 올해 마지막 경기에서 22, 23호 골을 연거푸 터뜨리며 공동 득점왕에 올랐다. 이 장면을 실시간으로 목격했으니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적 행운이다.

흥민이 이런 흥분을 일으키는 것은 그의 축구화에서 짙게 묻어 나오는 인간미 때문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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