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들, 일과 생활의 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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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 일과 생활의 균형
  • 이기인 기자
  • 승인 2024.04.25 13: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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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일하는 사람들’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저서 『행복의 건축』에서 “우리는 어떤 공간과 희망이 일치할 때 그것을 집”이라고 했다. 나아가 집을 ‘기억과 이성의 저장소’로 표현했다. 그런 의미에서 집에 ‘산다’는 것은 개인사의 기록으로 과거, 현재, 미래를 포함한 안주(安住)의 기능을 갖는다.

집은 ‘산다’라는 동사와 함께 쓰인다. 이는 집에 거주하는 삶 그 자체를 의미한다. 사람들은 집에서 하루하루 쌓이는 삶을 지속해서 이어간다. 두꺼운 책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듯 집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는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즉 집이라는 말에는 건물, 가정, 구성원, 공간의 의미가 숨겨져 있고, ‘산다’라는 말에는 ‘생활, 생존, 살림’과 같은 의미가 뒤엉켜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우리의 일상은 큰 변화를 겪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마스크 착용, 비대면 교류가 일으킨 변화는 생활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환경에도 영향을 미쳤다. 오프라인 중심이 온라인 비즈니스로 돌변했고 고객들의 니즈도 온라인의 편의성으로 옮겨갔다. 뉴노멀시대의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가운데 기존 관행을 깨뜨리는 일이 집과 일터에서도 일어나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인해서 ‘고립감’이라는 섬에 갇혔던 이들은 이제 집의 의미를 다시 헤아렸다. 그 누군가와 ‘마주보다’와 ‘함께’라는 의미가 얼마나 다행하고 행복한 일이 되었는지? 이전에 알 수 없었던 집의 의미를 파악하는 일이 그 무엇보다 소중해졌다.

‘집과 일’
커다란 숙제

집에서 일하거나, 일하기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책이 있다. 독립출판사 문화다방에서 출간한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이 책은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을 인터뷰한 책으로 작업실 대신 집에서 일하기를 선택한 이들의 일상을 세밀히 들여다본다.

보여주기 위한 아름다운 집 대신 나를 닮은 소중한 집에서 나만의 생활 방식으로 행복을 찾는 이들의 이야기다. 코로나19로 팬데믹을 경험한 이들은 다시 집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한 집 건너 한 집이 인테리어 공사를 했고, 평수를 넓혀 이사하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아침이면 탈출하듯 서둘러 집을 떠났다가 겨우 잠자리에서 만났던 가족의 일상에도 변화가 생겼다. 전쟁보다 바이러스가 더 많은 사람을 해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지금은 먹는 것, 노는 것, 운동, 공부, 일, 휴식까지 모든 걸 집에서 해결해야 할 상황이 다시 올 수도 있다는 걸, 코로나는 앞서서 현대인에게 알려주었다.

그동안 집이 이렇듯 많은 역할을 수행했는가. 현대인에게 집이 이토록 중요한 공간이었던가. 사람들은 자산이나 재테크로서의 집이 아닌, 터전으로서의 집을 다시 살피기 시작했다. 조금 더 편안한 보금자리이자 일터, 휴식처로서의 집을 많은 이들이 원했다.

이 책의 저자는 ‘집’과 ‘일’이라는 두 가지 커다란 숙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를 아홉 팀의 인터뷰를 통해 감지한다. 인터뷰어로 나선 문희정 작가는 문득 다양한 직업군의 재택근무자들의 내밀한 생활의 냄새가 궁금했다고 한다.

왜 이들은 작업실이 아닌 집에서 일할까.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일과 집을 어떻게 사이좋게 유지할까. 잘 정돈된 모습 뒤에 그들도 살림과 일, 육아와 기분까지 엉망이 되는 순간들이 있는지를 궁금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과 집의 균형을 어떻게 잘 이끌고 있는지 그 방법론에 대해 지속적으로 탐문한다.

저자는 다른 사람의 집을 찾아, 그 살림을 엿보고 질문을 던지며, 결국 집을 통해 삶의 방향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다. 인터뷰이 그들의 성공적인 삶을 묻기보다는 그들의 집에 직접 들어가 보는 게 더 정확했다고 진술한다.

집과
‘화해하다’

필자가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일상과 일의 균형을, 고유한 공간의 질서를, 집이라는 통로를 통해 확인하고 싶었던 인터뷰어는 모두 9팀이다. 미티테이즈, 루시, 복태한군, 상상헌, 스튜디오, 오디너리 작업실, 두근두근 공방, 어린이 영어문화원, 좋은여름 등이다. 책에는 밑줄을 긋고 싶을 정도로 인상적인 구절이 많다.

자수를 놓고 모빌을 만드는 윤선미 작가의 제주도 '두근공방'. 작가는 ‘토끼풀 민박’을 운영하는 ‘재택근무’ 예술가다.
자수를 놓고 모빌을 만드는 윤선미 작가의 제주도 '두근공방'. 작가는 ‘토끼풀 민박’을 운영하는 ‘재택근무’ 예술가다.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공통 질문처럼 자주 묻게 되는 게 일과 일상의 분리 혹은 그 둘의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이었는데 루시 님에게는 그 질문이 필요하지 않아 보였다. 요리를 하고, 집을 가꾸는 사소하고 지루할 수 있는 시간들이 일을 방해하는 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영감의 조각처럼 보였으니까. 루시 님은 평범한 일상을 잘 살아갈수록 더 좋은 작업을 하는 사람이었다(53쪽_필자)”

“살다 보면 어떤 사람이라 해도 인생에 굴곡이 있어요. 만약에 운명이라는 게 있다 해도 마음의 선택 자체는 내가 할 수 있잖아요. 저는 그 선택을 밝은 데 두고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제 인생과 모든 활동에는 약간 마법적인 측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눈으로 보이는 공든 탑은 무너질 수도 있다는 걸 경험을 통해서 알기 때문에 당장 보면 탑이 무너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이면을 생각해요. 무너진 게 아닐 수도 있거든요.(97쪽_상상헌, 안나)”

필자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것인지에 대한 그만의 해답은 아직 미정이라고 밝힌다. 하지만 그들에게 집이 삶의 방식이었듯, 더 이상 집이 나의 짐이 아니라는 분명한 변화가 찾아왔다고 고백한다. 주거와 생활, 나아가 나만의 일을 찾는 이들은 이 책을 통해 각자에게 어울리는 삶의 방향으로 다가갈 수 있길 희망한다.

그가 만난 사람들의 집은 “뽐내기 위해 치장할 필요 없는, 말갛게 씻고 나온 수수한 얼굴” 같았다. “살아온 날들이 고스란히 새겨진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고 오던 날에는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내 집과 화해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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