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를 같이 팔아야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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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같이 팔아야 성공한다
  • 박소영 기자
  • 승인 2009.01.07 0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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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성·정체성 고려없이 향토음식 정책 추진
스토리텔링 없는 청주한정식 경쟁력은 '제로'

전주에는 비빔밥이 있고, 안동에는 헛제사밥이 있다. 그리고 청주에는 청주한정식이 있다. 안타깝게도 전주에 가면 전주비빔밥을 먹어야 하지만 청주에서는 굳이 한정식을 먹을 이유가 없다. 청주한정식은 전주비빔밥과 안동 헛제사밥이 갖고 있는 이야기 자체가 부재하다. 이른바 ‘스토리텔링’이 생략돼 있다. 고작 나올 수 있는 얘기가 남상우 시장이 취임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된 관광활성화 정책 중에 하나라는 것이다.

그래서 왜 청주한정식이냐고 되물으면 할 말이 없어진다. 청주한정식 메뉴는 지역의 대표성 및 정체성을 담아낼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음식을 먹으면서 나눌 수 있는 다양한 얘기꺼리들, 원초적인 유래부터 맛 집에 얽힌 수많은 사적인 사연들이 나올 리 만무하다.

   
조선시대 3대음식으로 꼽혔던 전주비빔밥은 현대인에 맞게끔 개발돼 한국의 대표음식으로 자리매김했다. 전주시는 봄에 열리는 풍남제에서 한지를 이용한 비빔밥 재연 이벤트를 벌인다. (사진) 가을에는 전주천년의 맛잔치를 통해 맛과 멋의 고장임을 내세우고 있다.
   
헛제사밥은 유림의 고장 안동의 지방색과 재미있는 음식문화를 동시에 엿볼 수 있다. 제사에 사용되는 각종 나물과 명태전, 두부전 등과 같은 전 한 접시 그리고 쇠고기를 꼬지에 끼워 익힌 산적 한 접시가 나온다. 헛제사밥은 경상도식 비빔밥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는 유교식 음식을 맛 볼 수 있는 안동 향토음식의 한 단면이다.
전주비빔밥은 평양의 냉면, 개성의 탕반과 함께 조선시대 3대 음식의 하나로 꼽히는데 그중에서도 으뜸이라 할 정도로 유명했다고 한다. 전주시는 비빔밥을 한국의 전통음식으로 만드는 정책을 일찍이 추진해왔고, ‘비빔’에 내포된 ‘어울림’의 문화를 재창조해냈다. 전주비빔밥은 밥을 지을 때 쇠머리를 고운 물로 밥을 지으며, 쇠고기를 육회로 쓰고 있다. 직접 담근 장맛과 질 좋은 콩나물은 전국 최고의 맛을 자랑한다. 또 지역축제마다 ‘비빔밥’재현이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할 정도다.

안동의 헛제사밥은 본래의 제사 음식과 달리 제사를 흉내내 허투루 만들어 먹던 음식인데, 유림의 본고장인 경북 안동 일대에 이러한 음식문화가 남아있다. 쌀이 귀하던 시절, 드러내놓고 쌀밥을 해먹지 못하던 유생들이 밤늦게까지 글공부를 하다가 배가 출출하여 허기를 달래려고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헛제사밥을 먹으면 유생들의 재치도 함께 회자된다. 

정말 향토음식 맞나고 물으면...
2006년 말 청주시는 용역을 통해 향토음식 100가지를 선정하고, 천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설문을 받아 대표음식 리스트를 1위부터 10위까지 뽑았다. 그 가운데 간택된 것이 도토리묵, 버섯, 올갱이, 삼겹살, 시래기다. 물론 부동의 1위는 올갱이였다. 하지만 이 또한 자체평가일뿐, 이를 뒷받침할만한 역사성·대표성을 아직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2007년부터 몇몇 지정 음식점에서 ‘청주한정식’을 맛볼 수 있게 됐다. 시골정식, 대감정식, 수라정식으로 구성됐으며 각각 1,2,3만원이다. 청주한정식은 시골, 대감, 수라라는 메뉴이름부터 음식구성까지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김운주 충북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음식관련정책을 평가할 때 하드웨어가 음식의 맛이라면 소프트웨어는 음식과 관련한 푸드 코디네이션이다. 음식을 담는 그릇부터 공간까지 전체적인 ‘코디’가 이뤄져야 하는데 음식에 대한 개발만 추진한다는 것은 반쪽짜리 사업밖에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올갱이국은 과거 추억의 음식이다. 이를 현대화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청주의 향토음식으로만 남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문화’가 담기지 않은 청주한정식
시가 추진한 청주한정식 사업이 놓친 것은 바로 ‘문화’다. 한마디로 밥상에 문화를 곁들여 팔아야 한다. 새롭게 떠오르는 식문화(食文化)라는 용어는 이를 잘 대변해준다. 광주요는 이러한 식문화를 컨셉으로 연 100억대 매출을 자랑하고 있다. 그릇 안에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 메뉴를 개발하고, 함께 판다.

광주요의 전략은 그릇을 팔기 위해 담을 우리음식이 중요하고, 음식과 곁들일 술도 따로 만들어 파는 것이다. 게다가 광주요는 이 모든 것을 함께 보여주는 공간인 한식당을 운영하기까지 한다. 광주요가 만든 한식당에는 벽지부터 소품 하나까지 모두 ‘광주요’의 것으로만 채워져있다.

이로 인해 광주요는 작은 도자 공방에서 ‘식문화’를 만들어가는 우리나라의 유일무이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결과물로 지난 10월 서울 AT센터에서 열린 한식세계화 선포식에서 현대적인 한식의 모델로 초청받았다.

웰빙과도 거리가 먼 음식들
지역의 한 공예인은 “웰빙이라면 올갱이국을 놋그릇에 담아 팔아야 한다. 또한 음식을 담는 그릇을 특화시켜야 하지만 차별성이 없다. 최소한 그릇에 청주를 알릴 수 있는 직지, 고인쇄박물관, 상당산성을 이미지화해서 새기는 시도가 필요하다. 음식을 파는 공간 자체를 전체적으로 ‘청주’의 것으로 컨설팅해야 하지만 아무런 대안도 대책도 없어 보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청주한정식을 홍보하는 책자도 마땅치 않다. 가령 프랑스 음식은 어떤 와인을 쓰느냐에 따라 음식의 맛이 달라진다. 코스요리에 따른 스토리가 있다. 음식에도 깊이와 내용이 있다는 것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주한정식의 경우 처음에는 그릇을 전통도기로 특화하는 전략을 세웠지만, 일부 음식점에서 식기세척기를 사용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의견이 채택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이 외에도 이름을 밝히기 꺼려하는 향토음식위원회에 소속된 위원들 마저도 “일년에 한번 형식적인 회의가 열릴 뿐이며 의견을 내놓아도 정책화되지 않는다”고 쓴소리를 했다. 향토음식위원회는 청주시가 청주한정식 사업을 위해 만든 민간위원회로, 현재 15명이 위원으로 구성돼 있다.

또한 청주한정식 안내 팸플릿을 보면, 청주한정식을 ‘향토적이면서도 웰빙적인’식단으로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친환경적이면서 웰빙식단으로 보기에는 거슬리는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다. 일명 에코식단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고, 에코레스토랑까지 등장해 전문적인 메뉴를 제공하고 있는 반면 일상화된 음식을 내놓고 웰빙을 주장하는 것이 억지스럽다는 것.

김운주 교수는 “에코 식단이 학계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지만 한정식 자체가 남은 잔반이 많은 음식으로 꼽힌다. 청주한정식이 이 같은 트렌드를 쫓고 있지 못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지역로컬푸드운동을 추진하고 있는 참여연대 송재봉 처장은 “지역음식으로만 재료를 유통해 청주한정식 메뉴를 구성한다면 운동적 차원에서도 의미를 띨 것”이라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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