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버린 ‘가난한 황혼’ 누가 돌보나
상태바
국가가 버린 ‘가난한 황혼’ 누가 돌보나
  • 윤상훈 기자
  • 승인 2010.11.24 17: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빈곤 노인 2명 중 1명은 국민기초생활보장 사각지대 방치

소득 없이 어렵게 살아가는 빈곤 노인이 주민등록 상 부양 의무자가 있거나 재산 기준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해 개선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제천시 청전동에 거주하는 A 할머니(76)는 지병인 고혈압과 각종 노인성 질환으로 거동조차 불편하다. 몇 해 전 이혼한 아들이 두 손자까지 내맡기고 타지로 떠나 할머니는 기약 없는 가장 역할에 하루하루 버틸 힘조차 없다며 눈시울을 붉힌다. 일정한 수입 없이 건강까지 잃은 할머니 가족은 이웃의 도움이 없으면 한 끼 식사도 해결할 수 없을 만큼 생활이 어렵다.

▲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도입된 지 11년이 지났지만, 법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빈곤노인에 대한 지원대책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 충청리뷰DB
하지만, 할머니가 국가로부터 받는 혜택은 전무하다. 주민등록 상에 아들이 부양자로 등재돼 국민기초생활수급 대상 자격조차 없기 때문이다.

일정한 직업 없이 기초생활 지원금으로 생활해온 B 할아버지(65) 역시 3년 전 지인이 타고 다니던 낡은 트럭을 물려받은 것이 화근이 돼 수급 대상에서 탈락하는 뜻밖의 낭패를 겪었다. 실소득이 거의 없이 이웃의 도움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할아버지의 처지는 전혀 변한 게 없지만, 차량이 한 대 더 생겨 재산평가 기준을 초과한 것이 문제였다.

이들처럼 생활이 궁핍해 국가 지원이 절실함에도 기초생활 수급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빈곤층이 해마다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빈곤층으로 분류되는 국민 중 기초생활 수급 대상 제외자는 2006년 329만 명에서 2007년 368만 명, 2008년 401만 명으로 매년 급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제도적 허점으로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하는 빈곤 노인을 위해 부양 의무자 조항을 폐지하는 등 실질적인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수급대상 제외자 해마다 급증

제천시의회 자치행정위원장 이정임의원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도입된 지 11년이 지났음에도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빈곤 노인들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며 “부양 의무자가 없거나, 있더라도 실제로 부양을 받지 못하고, 소득 인정액이 최저생계비 이하여야 한다는 현행 법적 요건을 보다 현실화해 복지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노인이 양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통계에 따르면 빈곤계층 가운데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는 절반가량에 불과하다”며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제도 개선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이낙연 의원(민주당)은 최근 기초생활수급자 선정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개정안은 기초생활수급자 선정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인 부양 의무자 기준을 없애고 소득 기준으로만 대상을 선정하도록 했다. 부정수급을 방지하기 위해 수급권자가 실제로 자녀 등의 부양을 받을 경우에는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예외를 뒀다.

그러나 법안의 실제 통과 가능성은 미지수다. 그동안 각계로부터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고 과거에도 여러 차례 법 개정 시도가 있었지만, 번번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법 조문에 부양 의무자 기준을 삭제할 경우 기초생활수급 대상 선정에서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렵고, 국가 재정에도 부담이 될 수 있어 국회에서도 쉽게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며 “현재 정부 차원에서도 기초생활수급 제도의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다각적으로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도 법의 맹점을 악용해 기초생활 수급을 받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대상자 선정의 공정성을 이유로 법 개정을 꺼리는 것은 문제라는 여론이 비등하다. 복지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노인 가정이 한 세대라도 있는 한 ‘보편적 복지’라는 정부의 기본 원칙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정부와 국회가 법 개정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되는 이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