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물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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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물을 던진다
  • 충북인뉴스
  • 승인 2012.10.11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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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케일리 엮음, <이반 일리치와 나눈 대화>와 <이반 일리히의 유언>

‘아우슈비츠 이후, 시를 쓴다는 것은 비인간적인 것’이라는 아도르노(1903~1969)의 말은 파울 첼란(1920~1970)에 의해 부정되었다. 파울 첼란은 1942년, 가스실로 갈 유대인으로 분류되었으나 밖으로 나갈 유대인 쪽으로 피신하였다. 그를 대신해서 다른 사람이 가스실로 끌려갔다.

첼란은 1947년 5월, 루마니아에서 발행된 문예지 <아고라>에 처음으로 시를 발표하였다. 본명인 ‘안첼(Ancel)’을 뒤집어 ‘첼란(Celan)’을 필명으로 삼았다. 첼란의 시들은 아우슈비츠 문제와 정면으로 대결하며 쓰여졌다. 1966년, 아도르노는 <부정 변증법>에서 자신의 말을 정정하였다. “해를 거듭하는 고통은 고문당하는 사람이 울부짖듯이 표현의 권리를 갖는다. 때문에 ‘아우슈비츠 이후에는 어떠한 시도 쓰일 수 없다’는 말은 잘못이었다.”

크로아티아 사람인 아버지와 유대계 독일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이반 일리치(1926~2002)는, 첼란이 가스실 앞에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던 1942년에,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일리치는 학교를 마치자마자 나치에 대항하는 이탈리아의 저항운동에 동참하였다. 전쟁이 끝나고, 이반 일리치는 로마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자신의 첫 미사는 카타콤에서 열었다.

1950년대 초 미국 유학 도중 푸에르토리코 이주민들을 알게 되어 함께 생활하다가 1956년, 푸에르토리코의 가톨릭 대학교 부총장으로 임명되었다. 같은 해, 뉴욕의 스펠만 추기경으로부터 ‘몬시뇰’ 칭호를 받았다. 관구에서 가장 젊은 나이였다. 이후, 1961년에는 멕시코의 쿠에르나바카 시에 ‘국제문화형성센터’를 열었다.
1959년, <사라져가는 성직자>라는 글에서 이반 일리치는 이렇게 주장했다. “교회는 거대한 관조직이 되었고, 성직자들은 ‘세속적 꼭두각시’가 되었다.” 1962년에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도중 일리치는 퇴장하였다. “인습을 고수하면서 실질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다”는 이유였다. 퇴장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대학살을 저지를 수 있는 ‘핵무장 국가’들을 비판하지 않는 교회의 태도 때문이었다.

1968년, ‘가톨릭 교리를 위한 집회’에 소환된 일리치는 바티칸의 지하실에서 있었던 ‘심문’에 관한 비밀 서약을 거절하였다. 1969년 1월, ‘종교재판소’는 진보적인 자유대학으로 명성이 높았던 ‘국제문화자료센터’(문화형성센터의 후신)를 공식적으로 통제하였다. 마침내 이반 일리치는 테렌스 쿡 추기경에게 사제직을 포기하는 편지를 보냈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저는 교회의 암담한 현실을 보았습니다. 기독교도로 살아가고자 했던 나의 선택과 성직자, 교육자로서의 역할을 더 이상 계속할 수 없어 보입니다. 지금 이 순간 저는 교회를 떠나고자 합니다. 신부로서 제가 해왔던 역할과 모든 지위, 사무실, 특혜와 특권, 모든 것들을 공식적으로 포기하겠습니다.” 그렇지만 로마의 교황청은 그의 사제직을 공식적으로 박탈하지 않았다.

그가 별세하기 전까지 ‘몬시뇰’ 지위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렇지만 그는 성직자로서의 공식 임무를 맡지 않게 되었고, 교회 조직의 관심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이반 일리치는 “최선이 타락하면 최악이 된다.”는 신념을 평생 고수했다. 일리치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94>를 자신의 글에 자주 인용했다. “가장 달콤한 것도 그 행위에 따라 가장 신 것이 되나니,/ 썩은 백합에서 잡초보다 더한 악취가 풍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반 일리치의 저서는, 사제직을 자진해서 포기한 이후에 출간된 책들이다. 패배감만을 양성하는 학교 시스템에 대한 비판인 <학교 없는 사회 Deschooling Society> (1970), 일정 규모와 단계를 넘어선 제도들이 오히려 새로운 문제를 만든다고 주장한 <성장을 멈춰라 Tools for Conviviality>(1973), 가속 페달만을 밟고 있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대안을 모색한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Energy and Equity>(1974), 의료체계의 정교한 구축이 오히려 건강을 훼손하고 있다는 놀라운 주장을 담은 <병원이 병을 만든다 Limits to medicine, Medical Nemesis>(1976)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위의 책들은 오늘날 생태·환경운동의 이념적 기반을 제공하는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녹색평론>을 중심으로 ‘이반 일리치 읽기 모임’이 지역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이렇듯 그의 1970년대의 저작들이 ‘시스템’에 대한 비판에 놓여 있다면, 1980년 이후의 저작들은 ‘토착성’ 또는 ‘고유성’(veraculum)을 규명하고 가치부여하는 데 주력한다. 이를테면, 비판 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인 셈이다.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의 저작을 연구한 이반 일리치는 ‘경제’가 ‘사회’를 잠식한 오늘의 생존 환경에 대하여 깊이 고심하였다.

그 고심의 결과물이 바로 <그림자 노동>(1981), <젠더>(1982) 등의 저서이며. 아직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은 <H2O 그리고 망각의 물>(1985), <ABC, 서구 정신의 알파벳화>(1988), <텍스트의 포도밭>(1992) 등 또한 같은 맥락에 있다.

이반 일리치는 자립·자존·공생의 삶을 꿈꾸고 실천한 사상가였다. 그는 인간을 타락시키는 ‘제도’의 가공할 위력을 늘 경계하였다. 그는 파울 첼란의 시를 늘 아껴 읽었다. “미래를 향해 북편으로 흐르는 강에/ 나는 그물을 던진다, 당신이/ 머뭇거리며 얽은,/ 돌에 새긴/ 어둠을”(파울 첼란, <강에서>) ‘나’와 ‘당신’이 함께 엮어간 이 어둠의 그늘이 미래를 향해 흘러가는 시간이라는 강물에 드리워져 있고, 이를 끊임없이 그물질하고 속죄하면서 강을 정화해야만 한다는 다짐이 이반 일리치의 마음에 늘 굳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야만 후손들이 맑은 물을 마실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신간소개

착각을 부르는 미술관
셀린 들라보/시그마북스/2만5000원

우리의 시각을 시험하는 놀랍고도 재미있는 작품들 <착각을 부르는 미술관>. 착시와 환상은 더없이 평범한 현실에도 신비감을 부여한다. 또한 착시와 환상은 미술이 현실을 뛰어넘게 해주고,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며, 또 다른 세계를 창조하게 해준다.

미래의 물리학
미치오 카쿠/ 김영사/ 2만5000원

현대 물리학의 혁명적 패러다임을 개척한 글로벌 베스트셀러 <평행우주>, <불가능은 없다>의 저자 미치오 카쿠가 전하는 미래 물리학의 모든 것<미래의 물리학>. 평행우주론의 창시자, 이론물리학계의 세계적 석학인 저자가 첨단기술을 연구하는 300여 명의 과학자들과 가진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현재 실험 중인 과학기술에 초점을 맞추어 미래 세계를 지배할 과학의 거대학고 경이로운 도전을 물리학적 추론과 압도적 지식, 번뜩이는 논증으로 완벽하게 조망하는 책이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대런 에쓰모글루, 제임스A. 로빈슨 시공사/ 2만5000원

신국부론, 국가 실패의 답을 찾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MIT 경제학과 교수로 활동 중인 저자 대런 애쓰모글루가 15년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로마제국, 마야 도시국가, 중세 베네치아, 구소련, 라틴아메리카, 잉글랜드, 유럽, 미국, 아프리카 등 전 세계 역사에서 주목할 만한 증거를 토대로 실패한 국가와 성공한 국가를 가르는 결정적 차이가 무엇인지 밝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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