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산은 이제 알았고, 포르핀·아르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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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산은 이제 알았고, 포르핀·아르신은?
  • 김남균 노동전문 기자
  • 승인 2012.10.18 15: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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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도, 2010년 도내에서도 불산가스 29톤 배출 확인
반도체사업장, 나치가 유대인 학살했던 포르핀도 사용


#1. SK하이닉스로부터 반도체 장비의 ‘세정업무’를 도급받아 운영하는 에이스세미콘에 지난 5월부터 약 한 달간 근무했던 박 모씨. 조광복 청주노동인권센터 노무사에 따르면 박씨는 평소에 건강했던 자신이 회사에서 근무한 지 한 달 만에 온몸에 붉은 발진이 일어나는 피부병이 발생해 더 큰 병이 생길까 두려워 일을 그만두었다.

입사한지 1주일 후부터 속이 메스껍고 구토와 어지럼증이 시작되었다. 그 다음 주에는 온 몸이 가렵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가려운 면적이 커졌고 온 몸에 발진이 퍼지기 시작했다. 진료를 받은 결과 ‘중독성 피부발진’이란 진단을 받았다.

#2. 지난 8월 23일, LG화학 청주공장에 있는 OLED 공장에서 폭발음이 울렸다. 살려달라는 아우성과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27살 이 모씨가 그 자리에서 숨지고, 15명의 노동자가 병원으로 후송됐다. 지금까지 총 8명이 사망했고, 현재 3명이 치료중이다. 그렇다면 폭발음과 함께 피어오른 희뿌연 연기의 정체는 무엇일까.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폭발한 용기는 ‘폐(廢) 다이옥산’ 저장용기였다. 다이옥산은 대표적인 맹독성 유해물질이다. 사고 당일, 이 맹독성 유해물질에 대해 어떤 처리과정을 거쳤는지 우리는 모른다.

#3. 2003년 구조조정문제로 파업이 진행되고 있는 한국네슬레 청주공장에 군인과 청주시 관계자들이 방문했다. 노동자들이 방문이유를 묻자, 군관계자는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인해, 공장 시설물에 대한 안전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위험시설에 대한 긴급점검을 하기 위해서다. 공장이 폭발하면 공단 인근 주택지까지 막대한 위험에 처해질 수 있다” 답변했다. 그러나 이것은 엄포용에 불과했다. 당시 현장을 목격한 네슬레 노동자들은 “형식상 건물 외변만 둘러보기만 했을 뿐 실제 어떤 점검도 하지 않았다, 파업에 대해 위압감을 조성하기 위한 쇼”였다고 회상한다.

위험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지난달 구미에서 있었던 불산 유출사고 이후, 청주공단 내 반도체 사업장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유는 반도체 사업장이 대표적인 불산 사용 사업장이기 때문이다. 충청북도에 따르면 2010년 한해 도내에서 29톤의 불산가스가 배출됐다. 이중 1만여kg이 청주산업단지에서 대기 중으로 배출됐다.

도는 “현행 환경법에서 정하는 불산 배출 허용기준은 5ppm이하이며, 이를 초과한 사업장은 없다”고 밝혔다. 또 “현재 연간 배출기준은 없지만 불산 배출에 대한 도민들의 불안감이 큰 만큼 ‘연간 배출총량제’를 환경부에 건의할 것”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불산에 대한 관심과 대책은 있지만 청주산업단지에서 사용되는 각종 유해물질에 대한 대책은 없다”는 지적이다. 왜냐하면 반도체사업장의 제조공정에는 불산보다 더 치명적인 유해성분인 포르핀, 아르신, 보론과 같은 물질이 대량으로 사용되고 공기 중으로 배출된다. 이중 포르핀은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할 때 사용했던 독가스로 알려져 있다. 이 뿐만이 아니라 반도체제조공정에는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되지 않는 수백 가지의 화학물질이 사용된다.

반도체 제조공장만이 아니다. 청주산업단지는 화학 업종 관련 기업들이 몰려있는 공단이다. 얼마나 많은 위해한 물질들이 사용되는지 파악된 자료조차 없다. 무해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유해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야 말로 안전의 기본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 물질이 우리 주변에서 사용되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것이 현재의 수준이다. 과연 청주공단으로부터 청주시민은 안전할까. 불산으로부터 안전하다면, 그것으로 ‘안전보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제 시민스스로 답을 찾을 때다.

공단근처 초등학교 아토피 유병률 높은데… 우연일까?
노동환경연구원 “무해함 입증 못하면 위험한 것 간주해야

“‘현재 청주산단에서 배출되는 불산 10톤은 그 자체로서 위험하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그리고 배출 기준을 초과하지 않은 수치일거고요. 그러나 위험은 꼭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닙니다. 아마 통계자료가 있을지 모르겠는데, 아이들의 아토피 유병률을 찾아보세요. 유해물질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간접적으로 추정해 볼 수 있을 거예요.”


서울 원진녹색병원 부설 ‘노동환경연구소’의 김신범 연구원의 말이다.
그러나 청주시 지역별 아토피 유병률 통계를 찾을 수는 없었다. 다만 2012년 6월과 7월 사이에 청주시 흥덕구 보건소가 실시한 “청주시 아토피 안심학교 대상 3개교에 대한 아토피 통계조사”를 확인했다. 대상이 3개교로 제한적이어서 의미 있는 수치는 아니지만, 우연하게도 청주산업단지와 1.5㎞에 있는 P초등학교의 아토피 유병률이 높게 나왔다.

또, 연세대 의대 신동천 교수가 2007년 발표한 “지역별 알레르기성 질환 유병률”만 보더라도 공단지역의 유병률이 확연히 높게 드러난다.

노동환경연구소의 김신범 연구원은 “유해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안전한 것이 아니라, 무해한 것이 입증되지 않는 한 모든 것은 위험할 수가 있다”고 말한다.

청주산업단지 인근에는 대규모 공동주택이 밀집된 지역이다. 불산이 대기 중으로 배출되는 하이닉스 공장 코앞에는 수십층의 주상복합아파트가 우뚝 서있다. 이런 것들이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기초적인 것부터 차근차근 살펴볼 필요가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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