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죽이는 ‘비정규직 보호법’ 개정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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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죽이는 ‘비정규직 보호법’ 개정 절실
  • 윤상훈 기자
  • 승인 2013.01.31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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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중소기업 비정규직 업무 아예 외부 용역업체 위탁하기도

▲ 비정규직보호법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유도’라는 당초 목적과 달리 비정규직을 되려 직장 밖으로 내쫓도록 부추기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한화그룹이 그룹 내 비정규직의 약 40%인 2043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키로 한 가운데 비정규직의 고용 안정이나 정규직 전환을 가로막는 제도적 맹점의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이른바 ‘비정규직보호법’으로 불리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노동위원회법’ 등에 따르면 기간제 근로자의 경우 한 사업장에서 2년 넘게 근무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물론 2년을 경과하면 정규직으로 자동 전환된다.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정규직 동일 근무자와 모든 면에서 동등한 대우를 받게 되며, 정년과 퇴직금도 보장받는다.
그러나 이 같은 조항은 되레 비정규직의 고용 안정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장애 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제천지역 모 기업에서 1년 9개월째 사무직 비정규 사원으로 일하고 있는 A씨(여·28)는 사 측으로부터 해직통고를 받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에 잠조차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11년 가을, 대학 졸업 후 여러 해 동안 직장을 구하지 못하던 A씨는 비록 비정규직이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좋은 조건에 전공을 살릴 수 있는 회사에 취업을 할 수 있었다. 그동안 회사 적응도 잘 마치고 업무 능력까지 키워 직장 상사를 비롯한 동료들도 A씨를 가족처럼 살갑게 대하고 있다.

하지만 A씨의 직장 생활은 5월까지가 끝이다. 동료들은 모두 A씨가 비정규직법에 따라 2년이 경과하는 5월부터 정규직으로 전환되기를 바라지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허용하지 않는 본사 방침상 A씨에게만 예외를 인정하기는 곤란하다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A씨처럼 비정규직보호법 조항 때문에 오히려 직장에서 쫓겨나는 기간제 근로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1997년 7월 처음 법이 제정됐을 때만 해도 비정규직은 한 직장에서 2년이 경과하면 정규직으로 자동 전환하도록 규정해 비교적 비정규직 고용의 경직성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2009년 7월부터 비정규직은 한 직장에서 2년까지만 근무할 수 있도록 제한하자 기업이나 공공기관들은 아예 비정규직의 근무기한을 2년 미만으로 한정해 고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A씨와 같이 비정규직 근무시한을 채운 사람은 한 번 기간제 계약이 해지되면 두 번 다시 해당 직장에 채용될 수 없는 이중고를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A씨는 “기간제와 단시간 근로자의 정규직화를 유도하겠다는 취지에는 전적으로 공감하지만, 2009년 법 개정 이후 비정규직들은 모두 2년 살이 시한부 직장인으로 전락했다”며 “이럴 바에는 차라리 비정규직 2년 제한 규정만이라도 법 개정 이전 단계로 회복해 비정규직 상태로라도 장기간 근무했으면 좋겠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물론 비정규직 중에서도 법이 정한 몇 가지 직종 종사자들은 일반 기간제 종사자보다 2배 가량 더 근무할 수 있다. 그러나 고용의 안정성을 전혀 기대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별반 다를 게 없다는 분석이다.
한편 비정규직의 근속연한 제한을 완화하고 궁극적으로 정규직화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공공기관, 특히 지자체가 이에 앞장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노총 제천단양지역본부 관계자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에는 추가 비용이 따르기 때문에 비정규직 근로자를 해고하거나 2년 미만으로 계약하는 사례가 보편화하고 있다”며 “특히 2008년 비정규직보호법이 중소 사업장에 적용됨에 따라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비정규직 업무를 모두 외부 용역업체에 위탁하거나 아예 비정규직 채용을 안 하겠는 경우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뿐만 아니라 노동시장에서 공공분야의 비중이 큰 제천단양 등 지방 중소도시와 농촌지역은 기간제 공무원의 정규직화가 지역 경제에도 매우 큰 긍정효과를 줄 수 있다”며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는 정 반대로 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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