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에는 백수만 응모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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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에는 백수만 응모하세요”
  • 박소영 기자
  • 승인 2013.05.15 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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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도립교향악단 지휘자 재공모, ‘겸직 불허’명시
“충북도 문화행정 코미디 수준” 음악계 비난봇물
충북도립교향악단 지휘자 합격취소 논란을 겪은 충북도가 지휘자 재공모에 나섰다. 그런데 재공모 요강을 보고 음악계 인사들이 발끈했다. 상식을 벗어난 공모라는 지적이다.

먼저 지휘자 선정을 위한 제출서류를 보면 ‘현재 직업을 가진 자는 소속된 직장의 인사권자가 발행한 재직증명서와 계약기간 중 지휘자의 상근 근무조건 충족이 가능하다는 확인서(공고일 이후 발행)또는 본인의 사직확약서’를 받아와야 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그 바로 다음 줄에는 ※표시로 ‘겸직에 의한 상근 근무조건 충족은 도립교향악단 운영 여건상 허용되지 않음’이라고 나온다.

앞줄과 뒷줄의 내용이 다른 것이다. 겸직 허가서를 받아오라고 구체적으로 명시했지만, 도에서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대학교수를 비롯해 직업을 가진 사람은 도립교향악단 지휘자에 응모조차 할 수 없다. 한마디로 백수만이 응모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충북도 관계자는 “지난번 공모를 하면서 합격자가 결국 겸직허가서를 받아오지 못했다. 당초에는 겸직허가서를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합격취소논란을 겪으면서 내부방침이 대학교수는 겸직허가를 받아와도 안 된다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 충북도가 내놓은 도립교향악단 지휘자 재공모안이 도마위에 올랐다. 상식을 벗어난 공모안에 대해 음악계 인사들이 발끈했다. 사진은 충북도립교향악단이 찾아가는 공연을 하고 있는 모습.

시립단원 뽑는 수준의 공모요강

또한 지난 2월에 낸 공고는 도청 홈페이지에서 아예 삭제해버렸다. 도 관계자는 “지나간 내용이라 삭제했다”고 답변했지만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공모요강이 많이 바뀐 데다 내용도 황당하다.

지난번에는 2010년부터 공연한 내용을 자료로 제출하라고 했지만 이번에는 ‘공공 공연장에서 10회 이상 관현악 지휘 경력이 있거나 상당하는 지휘 경력이 있는자’라고 해놓았다. 이에 대해 한 음악계 인사는 “전 생애에서 10번만 지휘를 해도 된다는 것인데 말이 안 된다. 공공공연장은 다 공공공연장이다. 개인 공연장에서 했겠는가. 시립예술단 단원들도 10번은 해봤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시·도립교향악단의 경력이 있는 자나 상임 또는 객원 지휘자 경력이 있는 자를 조건으로 내걸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음악분야 석사학위 이상 소지 또는 석사학위에 상당하는 자격이 있다고 인정되는 자를 놓고도 지휘자 자격을 너무 완화했다는 주장이다. 한마디로 청주시립교향악단 단원이나 수석에 해당되는 내용이라는 것이다. 적어도 지휘자라면 관련학과(지휘과)에서 박사 학위 소지자나 석사 학위 이상이 필요로 하지만 범위를 음악분야라고 넓혀놓은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기타사항으로 적시된 내용도 납득이 안 간다. 최종 합격된 자의 위촉계약 포기 등 계약조건 미 충족사유로 위촉계약이 되지 않을 경우 ‘응모자 중 다른 적격자를 선정해 위촉할 수 있다’로 돼 있다. 1순위 합격자가 취소 될 경우 차순위가 선정되는 게 상식적이지만 충북도는 전체 응모자 가운데서 재량껏 뽑겠다는 것이다.

도 관계자는 이에 대해 “범위를 넓혀놓기 위해서다. 차 순위가 아니라 응모자 가운데서 뽑겠다”고 재차 답했다. 이어 그는 “도립교향악단은 상근자가 필요하다. 인원이 30명밖에 안 되는 챔버오케스트라 수준이기 때문이다. 단원들과 함께 근무할 상근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학교수는 지휘자가 될 수 없다

전국 시·도립교향악단중 대학교수 지휘자는 14곳이나 있다. 충북도는 경북도립교향악단을 벤치마킹해왔다고 해왔다. 경북도립교향악단 지휘자는 현재 국립대 교수다. 겸직허가서를 받지 않았어도 경북도가 유연하게 대처했다. 경북도립교향악단은 지휘자는 비상임, 부지휘자는 상임으로 돼 있다. 청주시립교향악단은 지휘자는 상임이지만 강남대 현직교수다. 청주시의 경우 겸직허가서를 공모 당시부터 받고 있다. 복무규정 또한 상임일 경우 10시부터 3시까지로 돼 있지만 필요에 따라 연습시간이 조정될 수 있다.

도 관계자는 “경북도립교향악단은 부지휘자가 있기 때문에 지휘자가 상임이 아니어도 된다. 청주시도 부지휘자가 있어서 괜찮지만 충북도립교향악단은 상근 조건(10시부터 3시)을 꼭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청주시립교향악단은 현재 부지휘자가 없다. 지휘자는 상임으로 상근조건이 있지만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다. 현직교수가 지휘자를 맡고 있고, 겸직허가서를 공모당시부터 제출했다. 도 담당자는 같은 동네 소식도 파악하지 않고 공모를 낸 것이다. 이를 두고 한 음악인은 “지휘자를 뽑을 때는 스펙과 경력을 따진다. 지휘자가 곧 교향악단의 이름이고 얼굴이다. 충북도는 백수만을 고집하는 이상한 오케스트라”라고 비꼬았다.

특정인 내정 의혹도 불거져

비상식적인 공모요강에 대해 충북도가 특정인을 당선시키기 위해 일부러 바꾼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일고 있다. 익명을 요구하는 A씨는 “오선준 씨는 정우택 전 지사시절 색소폰을 가르치면서 정치권과 연을 맺었다. 당시 도는 오씨를 당선시키기 위해 ‘상근조건’을 내걸었다는 의혹이 있었다. 이번에도 도청합창단과 인연이 있는 사람을 내정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일로 이강희 한국교통대 교수는 운이 없게 됐다. 충북도가 겸직허가서를 공고 당시 요청하지 않았고, 4월 16일 합격발표가 난 뒤 이틀 뒤 허가서를 받아 제출하려고 했지만 4월 19일 장병집 총장이 사퇴하면서 효력을 잃게 됐다. 한국교통대는 현재 교무처장이 총장대행을 하고 있는 터라 책임 질 사람이 없었다. 충북도도 한국교통대에 적극적으로 요청하지 않았다. 결국 이 교수는 합격자로 발표된 뒤 17일 만에 취소되는 해프닝을 겪었다. 이 교수는 충청리뷰와의 통화에서 “마음을 접고 교수로서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공모 시기도 그렇다. 학기 중에 공모발표가 나면서 이 교수의 경우 휴직, 겸직, 안식년 등 모든 일들이 뜻대로 안 된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지금 재공모를 한다고 해도 6월이 지나 발표가 난다. 그 때면 방학기간이 되기 때문에 스케줄 조정이 가능하다는 것이 이교수의 설명이다. 코미디 수준의 공모요강만 봐도 충북도 문화행정의 현주소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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