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집’을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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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집’을 그리며
  • 충북인뉴스
  • 승인 2014.11.20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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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송현 전 청주시의회 의원
   
▲ 윤송현 전 청주시의회 의원
예산철을 맞아 정치권이 철지난 복지논쟁을 되풀이하고 있다.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을 선택적으로 비교하며 싸우고, 지방정부와 중앙정부가 무상보육과 기초연금정책을 들었다 놨다 한다. 이런 호들갑을 지켜보면서 우리나라가 복지국가 스웨덴처럼 되기를 바라는 것이 참 터무니없는 바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스웨덴에 관심을 갖는 것은 스웨덴의 복지제도를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가 제일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스웨덴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나라를 만들었을까?”하는 것이다.

스웨덴은 원래부터 부자나라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땅덩어리는 돌덩어리만 많고, 농작물을 심을 수 있는 땅은 얼마 되지도 않는다. 인구래야 겨우 천 만명을 겨우 넘는다. 가난에 멀미를 내며 아메리카 대륙으로 떠나는 이민행렬이 1930년대까지 계속 되었는데, 이민자가 무려 전체 인구의 1/3에 이르렀다. 1920년대까지만 해도 유럽에서는 한참 뒤쳐진 가난한 농업국이었다. 정치적으로도 1907년에 겨우 24세 이상 남성에게 보통선거권이 주어졌고, 1921년에야 남녀 보통선거, 비밀선거가 도입되었다.

그런 나라가 도대체 언제 어떻게 해서 50년도 지나지 않아 세계 제일의 복지국가가 되었는가? 그런 의문에 답을 나는 1928년 스웨덴의 한손총리가 의회에서 했던 연설에서 찾는다.

“훌륭한 가정에서라면 어느 한 사람이 특권을 갖거나 무시되거나 하는 일이 있을 수 없다. 특별히 사랑받는 아이도 또 주워 온 아이마냥 차별받는 아이도 있을 수 없다. 누구도 다른 이를 멸시하지 않으며, 누구도 다른 이를 희생시켜 이득을 취하려 들지 않는다. 힘이 센 사람이 약한 사람을 짓누르거나 벗겨 먹는 일도 없다. 좋은 가정이란 언제나 평동, 배려, 협조, 도움이 가득한 곳이다.”

이런 가정의 규모를 확장한 것이 바로 국가이다. 이 연설에서 한손 수상은 「국민의 집」이라는 구호를 내세웠고, 이 구호는 오늘날 스웨덴 복지정책의 이념적 뿌리를 이루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런 믿음으로 일찍부터 복지정책을 확대했고, 국민들은 그런 정치인과 국가를 신뢰했고, 결국 부강한 복지국가를 만든 것이다.

우리는 열심히 일해서 일단 경제를 키워놓으면 저절로 복지국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도 복지는 좀 미루고 더 자본을 만들어 투자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주류를 이룬다.

이런 논리의 허구는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성장의 과실들은 제대로 나눠지지 않았다. 흘러내려야 할 분수의 물은 넘치지 않고, 장벽은 계속 높아지기만 한다. 많은 나라들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여 대기업에게 그 혜택을 몰아주고 있지만, 그 효과는 대기업의 울타리를 넘지 않고 있다. 결국 경제규모는 32개 OECD국가들중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지만, 복지수준은 모든 부분에서 꼴지를 헤맨다.

안타까운 것은 이제는 아무리 경제성장에 올인을 해도 경제가 예전처럼 성장하지 않는 것이다. 세계화의 여파로 우리 경제는 이제 우리 뜻대로 조절할 수도 없는 지경이다. 그런데 그동안의 관성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은 늘 해왔던 대로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다그칠 뿐이다. 늘어나는 복지에 대한 요구로 탓을 돌리는 것이다. 결국 이대로 가면 복지국가를 향한 국민들의 기대는 ‘떠나가는 배’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 우리에게 스웨덴의 「국민의 집」을 향한 꿈은 정녕 불가능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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