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득 안 가는 송전선로 입지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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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득 안 가는 송전선로 입지 선정
  • 오옥균 기자
  • 승인 2015.12.10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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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7명 비청주 5명으로 구성된 협의체, 선택은 ‘세종’ 아닌 ‘청주’
세종시 경유 5가구, 청주시 경유 120가구 영향…거리도 세종이 짧아

고리원전에서 생산되는 전기를 소비자에게 보내기 위해 한전이 고리원전부터 북경남변전소까지 90.5km 구간에 송전로를 건설하려던 사업이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혔지만 한전은 공익을 내세워 밀어붙였고 이 과정에서 마을 주민 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벌어졌다. 일명 밀양 송전탑 사건이다. 이 사건은 온 국민에게 송전탑이 어떤 시설인지 알렸고, 송전탑 설치 과정이 얼마나 비민주적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밀양 송전탑 사건은 공익을 내세워 사익을 침해한 대표적인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밀양 송전탑 사건은 송전탑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제고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밀양 송전탑 사건 이후 전국 곳곳에서는 송전탑과 관련된 크고 작은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충북에서도 최근 송전선로 건설과 관련해 주민들이 크게 반발하며 송전선로 건설을 반대하는 일이 벌여졌다. 해당 송전선로 건설 진행과정의 문제점을 파헤쳤다.

▲ 한전으로부터 위탁받은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가 최근 오송 제2생명과학단지에 전기를 공급할 송전선로 입지로 옥산면 경유안을 채택했다. 이 소식이 주민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옥산면 경유안보다 전동면 경유안이 피해주민수, 건설비용 등에서 합리적이라는 주장이다. 사진은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가 8월 작성한 후보 경과지 그림.

청주시가 지역 주민들의 피해를 외면했다. 오송 제2생명과학단지의 원할한 전기공급을 위해 한국전력에 송전선로 건설을 요청한 청주시가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지역(경과지)을 정하기 위한 회의(입지선정협의체)에 참여했으면서도 지역주민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해당 지역으로 지나가는 것에 동의했다는 주장마저 제기되고 있다.

(사)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는 한전으로부터 해당 사업을 위탁받아 지난 4월 송전선로 경과지 선정을 위한 협의체를 구성하고 첫 회의를 진행했다. 이후 7월과 8월, 9월까지 4차례의 회의를 걸친 후 11월 초부터 경과지 후보에 오른 마을 6곳을 돌며 주민간담회를 진행했다. 간담회에서는 사업 취지와 편입토지 보상에 대한 사항, 마을 지원사업 등 경과지로 최종 결정된 후 마을에 일어나는 변화에 대한 설명이 진행됐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마을 사람 대부분은 자신의 동네 앞에 송전탑이 들어설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배짱부린 세종 VS 책임 인정한 청주

그러던 11월 19일, 협의체는 마지막 회의를 진행했고, 최적 경과지를 선정해 송전탑을 건설하는 한전 중부건설처에 전달했다. 그렇게 협의체가 결정한 경과지는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장동리에서 시작해 동림산 서쪽 동림리를 거쳐 오송읍 정중리 변전소까지 이어지는 9km였다(그림 참조).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동림리 주민들은 분개했다. 지난 4월에 협의체가 구성돼 활동하고, 사업은 이미 지난해에 결정됐는데 이해당사자인 주민들은 11월에서야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더욱이 경과지 선정에 앞서 2개 안을 놓고 회의가 진행됐는데 왜 옥산면 경유안이 채택됐느냐고 따졌다.

동림리 주민 곽노호(74)씨는 “전동면 경유안으로 했을 경우 피해주민은 사실상 굿당과 철물제작소 두 집뿐이다. 반면 이쪽은 100가구도 넘는다. 거리도 이쪽이 짧다. 당연히 공사비도 덜 들 테고 누가 보더라도 세종시로 가는 게 맞다”고 말했다.

확인 결과 실제로 전동면 경유안이 700m가량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송전선로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송전설비 주변지역 거주 가구 수도 협의체가 파악한 결과 전동면 경유안은 5가구인 반면 옥산면 경유안은 120가구인 것으로 집계됐다. 주민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는 이유다.

협의체 구성을 살펴보더라도 옥산면 경유안이 채택된 사실을 의아해 할 수밖에 없다. 당초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는 두개 안에 포함되는 지역 주민대표(이장)와 지자체 공무원 한전 관계자 등 16명으로 협의체를 구성했지만 세종시 공무원과 전동면 두개 리 이장, 협의회장 등 4명은 단 한 차례만 참석하고 회의에 불참한 반면 청주지역에서는 오송읍,이장과 협의회장, 옥산면 이장과 협의회장, 청주시 공무원 등 7명이 참가했다.

세종시 지역 위원들이 회의를 거부한 이후로는 12명이 회의를 진행했고, 그 가운데 7명이 청주 쪽 위원들이었던 것이다. 청주시가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고 청주 쪽 위원들을 하나로 결집시켰다면 수적 우세를 앞세워 전동면 경유안이 채택됐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청주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협의체 위원으로 참여한 한 관계자는 “청주시 공무원은 빠짐없이 협의체 회의에 참석했다”고 말한 뒤 “청주시가 필요해 전력 공급을 요청한 만큼 청주시는 자신들이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입장을 회의에서도 개진했다”고 설명했다. 청주 쪽 위원이 다수 참가한 상황에서도 옥산면 경유안으로 분위기가 기운 이유다.

이에 대해 협의체 회의에 참가한 공무원은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했다. 해당 공무원은 “청주시의 입장은 항상 같았다. 주민들 갈등이 심하니까 협의체 회의를 통해서는 시작 지점과 끝 지점만 확정하고, 경과지에 대해서는 추후 주민들의 의견을 들어 정하자는 입장이었다”고 다른 주장을 펼쳤다. 회의 주최 측 관계자는 사실관계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취재 결과 청주시는 전동면 경유안을 채택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아직 최종 결정된 것이 아니다”라는 원론적인 답변만 반복하며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한 것이다. 한 관계자는 “협의체는 경과지를 선정하기 위해 조직된 회의체인데 경과지는 추후에 논의하자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반문하며 “청주시가 적극적이지 못했다. 전기가 필요한 건 청주시니까”라고 말했다.

오송 기업유치와 맞바꾼 주민 삶

청주시와 달리 세종시는 완강했다. 첫 회의에 참석한 자리에서 세종시 위원들은 “오송2생명과학단지에 필요한 전력이고, 세수입도 청주시 몫인데 왜 우리가 피해를 봐야 하느냐. 더 이상 회의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힌 뒤 수차례 참석 요청에도 끝내 거절한 것으로 나타났다.

협의체가 마지막으로 회의를 진행한 11월 19일에도 결론은 나지 않았다. 오송읍에서 진행된 회의에는 이전 회의와 마찬가지로 세종시 측 4명을 제외한 12명만이 모여 최적 경과지 선정을 위한 회의를 진행했다. 참가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회의는 세종시가 거부의 뜻을 밝힌 가운데 결국 옥산면 경유안 밖에 없지 않느냐는 분위기로 흐르자 장동리와 동림리 이장 등은 자리를 박차고 나갔고, 결론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는 한전 측에 협의체 회의 진행 결과 최종적으로 옥산면 경유안을 최적안으로 선정했다고 알렸다.

조정자로 참여한 이강원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 소장은 “그간 한전의 경과지 선정 과정은 투표로 진행했다. 3명이 반대하더라도 7명이 찬성하면 밀어붙이는 구도였다. 일종의 알리바이만 만들면 된다는 식이었다. 위탁을 받은 우리는 표결에 의한 처리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했고, 합의 중심의 회의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세종시가 회의장에 나오는 것을 거절한 상황에서 그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현실적 방법이 없는 데다, 그들의 주장도 분명히 일리가 있다. 청주시가 요청한 사업이고, 대부분을 청주시가 사용한다는 점에서 지금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이 소장은 투표가 바람직하지 않아 합의에 의한 결론을 내리려고 했다고 했지만 협의체 구성원들 중 어느 정도가 옥산면 경유안에 대해 같은 입장을 밝혔는지는 계량화 하지 못했다.

결국 누구도 명확히 결과 도출 과정을 설명하지 못한 채 한전은 협의체의 결론이라는 점을 내세워 옥산면 경유안에 대한 측량과 실제 건설을 위한 다음 절차를 진행하게 된다. 청주시와 한전 등 사업 관계자들이 협의체 결과에 대해 나 몰라라 하는 사이 주민들 속만 타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한편 세종시의 주장에 대해 한 전문가는 “충북에는 발전소가 없다. 발전소가 없으면 그 지역은 전기를 쓰면 안되냐”고 반문하며 “서울 수요자를 위해 경남·전남 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기가 충남이나 경북에 건설된 송전선로를 통해 이동한다. 해당 지자체의 이해관계보다 전기공급이라는 국가사업 가치가 우선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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