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가 쓴 보도연맹사건 기사… 다음 ‘많이 본 뉴스’ 1위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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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가 쓴 보도연맹사건 기사… 다음 ‘많이 본 뉴스’ 1위 링크
  • 김남균 기자
  • 승인 2016.07.21 09: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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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가란 신호였는데...’ 충북역사문화연대 박만순 대표
 

그의 집요함이 통했을까. 7월 9일 인터넷 포탈사이트인 ‘다음’ 뉴스 게시판 ‘많이 본 뉴스’ 제일 상단에는 ‘도망가란 신호였는데... 남자는 결국 학살됐다(부제 : 충북 보도연맹원 사건 희생자 이웅찬의 66년 전 그날)’가 자리 잡았다.

전업기자도 아닌 시민기자가 쓴 뉴스가 뉴스포털 최 상위를 차지한 이변을 연출한 것이다. 뉴스를 작성한 이는 충북역사문화연대 대표 박만순.

그는 12년간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비롯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에 매달리고 있다. 국민보도연맹사건.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국군과 헌병, 반공 극우단체 등이 국민보도연맹원 등 민간인 20만 명 남짓을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학살 사건이다.

박 대표는 이날도 국민보도연맹원 이웅찬에 대한 주변인들의 기억을 구술 청취한 것을 바탕으로 뉴스를 작성했다.

잠시 그의 기사를 살펴보자 『그해 7월 7일, 이웅찬은 수동 육군병원 뒤편에 있던 자취방에서 앰프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방송에서는 “보도연맹원들은 청주상과대학으로 모이라”는 목소리가 반복되었다. 점심을 먹은 후 청주상과대학 운동장으로 간 그는 잠시 후 청주경찰서 무덕전으로 이송되었다. 무덕전은 경찰들의 체력 단련장으로, 주로 유도를 배우던 곳이다. 무덕전에는 수 백 명의 보도연맹원들이 있었고, 이웅찬이 아는 얼굴도 더러 있었다.

평소 그를 알고 있던 경찰이 형사들과 수군거렸다. 좌익활동과는 무관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웅찬이 자네, 담배 좀 사 갖고 오게!”라며 담배 값을 주었다. 사복형사와 이야기를 나눈 경찰은 상업학교 축구부 출신인 이웅찬을 알아보고 그를 살려 줄 셈으로 담배 심부름을 시킨 것이다. '내놓고 도망가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알아서 도망가겠지'라는 마음으로. 하지만 눈치를 채지 못한 그는 담배를 사 들고 다시 무덕전을 찾았다. 자신이 특별히 지은 죄도 없고, 죽으러 끌려 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박 대표의 기록은 1950년 과거를 현재로 끌어와 보여주는 것처럼 생생했다. 이런 생생함이 가능한 것은 박 대표의 집요함이다. 청주, 청원, 보은군 내북면 아곡리, 낭성면 호정리 도장골, 남일면 두산리 지경골, 오창초등학교 곳곳에 민간인 유해들이 묻혀 있는 곳에 박 대표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역사의 진실과 화해를 위한 박 대표의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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