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그녀 이야기 <제4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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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그녀 이야기 <제43회>
  • 이상훈
  • 승인 2004.1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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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구신화마흔세번째이야기
“으흠흠...”

벌구는 어색한 이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바꾸어보려는 듯 가볍게 기침을 몇 번 하고난 다음 여우리에게 천천히 다시 물었다.

“자, 아까 내가 듣던 얘기나 계속해서 들어봅시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지요?”

“저어, 내가 어디까지 얘기를 해드렸지요?”

“아마, 세호라는 사람이 우리 아버님과 작은 어머님을 위해 대신 싸워주었다는 데까지 얘기해 주신 것 같네요.”

“아 그랬군요. 아무튼 못난이 촌장딸은 절대로 포기하거나 물러나지 않았어요. 자기 두 눈을 버젓이 뜨고있는 한, 코로 숨을 쉬고있는한 끈질기게 두분을 괴롭혀서 죽여버리겠노라며 단단히 작정을 하였던 거지요. 그래서 어느 무당의 지시에 따라 재수가 없으라며 죽은 고양이 머리를 톱으로 썰어다가 두 분이 사는 집 앞에 던져놓는가하면, 생쥐를 사로 잡아가지고 그 대가리만 남긴채 그 아래 껍질을 홀랑 벗겨가지고 발발 떠는 걸 막대기에 묶어가지고 집 주위에 빙빙 돌아가면서 꽂아놓기도 하였지요."

"아니, 살아있는 생쥐를 산채로 그랬단 말이요?"

"네."

“아, 아... 저, 저런! 아무리 미물이라지만 그때 쥐들이 얼마나 아팠을까...”

벌구는 그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몸서리를 치며 혀를 끌끌 차댔다.

“하지만 이것 뿐만이 아니었어요. 무당들을 동원하여 굿판을 벌이고 또다시 무술 고수들을 구해서... 어머머! 그 그런데....”

여우리는 갑자기 하던 말을 딱 멈췄다.

“아니, 왜요?”

“저어, 방금 못 들으셨어요? 잘 한번 들어보세요.”

여우리가 자기 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벌구도 그제서야 청신경을 곤두세워가지고 가만히 들어보니 정말로 저 먼 곳에서 세차게 북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둥둥둥 두두두둥..
둥둥둥 두두두둥...

특이한 장단을 맞춰가며 들려오는 북소리는 뭔가 의미심장함을 담고있는 듯 싶었다.

“어머! 저 가봐야만해요. 지금 당장....”

여우리는 이렇게 말하며 서둘러 밖으로 나가려했다.

“여우리! 지금 뭐하자는 겁니까? 내게 얘기를 해주다가 말고 또 갑자기....”

“안돼요! 지금 빨리 가봐야해요. 저 북소리는 우리 마을사람들에게 듣는 즉시 모이라고 하는 명령이예요.”

“어허! 지금 누가 그런 명령을 내린다는 거요?”

“촌장님이요.”

“촌장? 이곳 촌장?”

“네. 가만 들어보니 지금 이 북소리는 단지 동네 사람들끼리 모여보자는 것이 아니라 이 인근 일대 보랑말 전체를 다스리는 촌장님이 마을 사람 전체가 모두 모여보라고 내리는 명령이예요. 벌구님께서 오셨을 때에도 저런 북소리가 들렸기에 저는 얼른 뛰어나갔던 거예요. 그래서 다행히 벌구님을 제가 만나게 되었구.”

“하지만, 이제 나를 만났으니 저런건 가볍게 생략을 하거나 무시를 해버리더라도....”

“어머머...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당신 작은 어머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두 손으로 제 손을 꼬옥 잡으시며 제게 신신당부를 하셨는데.... 모이라는 북소리가 들리거든 만사 모두다 젖혀놓고 얼른 가서 모이라고.... 혹시 벌구 아버님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될는지도 모른다고...”

“아, 알았어요. 알았어! 그럼 가 보시라구요. 곰곰히 다시 생각해 보니 그래야만 지금 나와의 관계가 의심받지 않겠네요.”

벌구는 인상을 살짝 찌푸려가며 말했다.

“어머머! 내 정신좀 봐! 화장도 안하고 나가려했다니...”

여우리는 서둘러 밖으로 뛰쳐나가려다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얼른 다시 되돌아와가지고 벽틈속에 끼워넣은 마른 진흙덩이를 끄집어내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물로 잘 개어가지고 또다시 얼굴 위에 덕지덕지 쳐바르기 시작했다.

“참내... 다른 여자들은 자기 피부가 더욱더 고와지게 하느라고 하루에도 기십번씩 거울을 봐가며 안달복달을 하는 판인데, 엉뚱하게 여우리 그대는 더욱 추하게 보이고자 진흙을 바르고 있는 판이니...”

벌구는 한숨을 가볍게 내뱉으며 급히 여우리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제가 또 업어드릴까요?”

벌구가 크게 인심쓰는 척 말하자 여우리는, ‘호호호... 그러면 제가 이제 그만두세요. 남들의 눈에 뜨이면 좀 곤란하잖아요?’라고 대답할 줄로 아셨나요? 그건 오산이에요. 자, 저어기 남들 눈에 잘 뜨이지 않는 곳까지만 저를 업고 달려가 주세요.’ 하면서 대답했다.
물론 처녀의 엉덩이를 여유있게 두 손으로 받쳐든 채 업고 달리는 걸 총각인 벌구가 귀찮게 생각할 리 없었다.
적당한 곳까지 두사람 한몸이 되어 달려간 이 두 남녀는 자연스럽게 분리되어졌고 마을 공터 앞까지는 각자 걸어갔다.
그런데,
지금 마을 공터에서는 큰 솥 두개를 걸어놓고 뭔가를 한참 끓이고 있었는데 구수한 냄새가 진동을 하고있었다.
아, 그러고보니 지금 주위에 모여있는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돼지고기 한줌씩 받아가지고 맛있게들 먹고있는 중이었다.
모두들 희희낙락한 표정.

“저어, 어인일로 동네 잔치를 다 여는지요?”

여우리가 아직 뜨거운 김이 남아있는 돼지고기 한점을 입안에 막 집어넣고있는 어느 동네 할머니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물어보았다.

“아, 글세 범삭이랑 뚝쇠가 말이지, 아까 저 산에 들어갔다가 그만 집채만한 산돼지 두마리를 만났다지 뭐야... 죽을 고생해가며 간신히 싸워 잡았다는데 신통하게도 둘다 암컷이라지 뭔가. 그래서 그런지 이렇게 고기가 연하고 맛이 참 좋구만..."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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