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애환 숨쉬는 육거리 순대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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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애환 숨쉬는 육거리 순대골목
  • 이재표 기자
  • 승인 2006.09.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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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 봄날’을 기다리는 사람들
주차문제 해결 없인 활성화 어려워
충청리뷰가 2005년에 이어 2006년에도 지역신문발전기금 우선지원대상으로 선정되면서 저술 분야에 대해서도 지원이 결정됐다. 이에 따라 2005년 12월 지역탐구 시리즈의 첫 번째 책으로 ‘시간을 잃어버린 마을 수동’을 출간한데 이어, 2006년 11월에도 ‘청주를 파는 육거리시장’이라는 제목으로 청주 최대의 재래시장으로 유통구조의 변화 속에서도 자생의 길을 열어가는 육거리시장에 대한 탐구서를 출간할 예정이다. 원고 가운데 일부를 ‘육거리시장 사람들’이라는 제하에 나누어 싣는다. / 편집자

꽃다리 남단 육거리시장 입구에 이르면 옹벽을 따라 내려가는 계단 머리에 순대골목이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옹벽보다도 키가 작은 낡은 가게들이 게딱지처럼 처마와 처마를 기댄 채 20년 전의 정취를 그대로 전하고 있는 청주 육거리시장 순대골목이다.

육거리 순대골목의 역사는 약 25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원군 초정사람이 나와서 지금증평순대를 개업한 뒤 한집, 한집 문을 열기 시작해 지금처럼 7개가 됐다. 주변에 청과물을 파는 이른바 ‘깡시장’이 열리던 시절, 구수한 순댓국과 걸쭉한 막걸리로 장꾼들의 발길을 잡기 시작한 것이 순대골목의 시초라는 것이다.

그동안 주인이 바뀐 곳도 있지만 대부분 경력이 20년 남짓에 이르는데, 손님은 줄었어도 순대하면 육거리 순대골목을 떠올리는 건 바로 이 깊은 손맛 때문이다.

   
▲ 들마루에 순대를 널어 말리는 모습은 육거리 순대골목의 진풍경이다.
이제는 추억을 먹으러 온다

사실 육거리 순대골목은 이제 그 명성만큼 화려하지 않다. 거제도에서 청주로 시집와 20년 전부터 석곡순대를 운영해 온 이인선씨(58)는 “이제 이 골목은 끝났다”며 “그만둘 수 있을 때 그만두는 것이 목표”라고 연신 푸념을 쏟아 놓는다.

육거리시장 주변의 주차난이 심각하다 보니 큰 길에 접한 순대골목을 찾는 손님들이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특히 순대골목 입구에 교통섬이 생기면서 차량이 잠시 정차하는 것도 힘들어졌다는 것이 20년 터줏대감들의 한결같은 하소연이다. 이러다 보니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은 아예 작정하고 나선 사람들이다.

그래서 인근 대전이나 조치원 등은 물론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출향인들이 안부를 묻듯이 찾아와 소줏잔을 기울이며 추억을 곱씹는 일이 많다고 한다. 순대골목의 영화가 시들해진 또 하나의 이유는 대학생 손님이 뚝 끊겼기 때문이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대학생 단체손님이 줄을 이어 빛바랜 벽지는 대자보를 방불케 했다고 한다.

지금은 대학가 주변에 번듯한 상가들이 늘었고 신세대의 입맛도 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순대골목 상인들의 분석이지만, 시대 앞에 부대끼고 고뇌하며 살던 ‘치열한 스무살’이 사라졌기 때문은 아닐까?

   
하루 5시간 자고 온몸에는 파스자국

손님이 줄었다고 해서 정성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한달에 한번 정도 쉬던 공동휴무일도 없앴고 새벽 5시면 나와 순대를 만들기 시작해 손님이 있을 때까지 문을 연다.

   
▲ 장원순대 한정덕 대표
순대를 만드는 작업은 ‘중노동도 상중노동’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고되기 그지없다.
남편과 함께 민화를 그리다 10여년 전부터 순대집을 운영하고 있다는 장원순대 대표 한정덕(55)씨는 온 몸에 파스를 붙이고 산다며 팔뚝을 걷어 확인시켜 준다.

이처럼 일이 고된 것은 무거운 것을 드는 일도 많지만 배추, 파, 마늘, 청양고추 등 각종 야채와 당면, 선지를 섞어 돼지 작은창자에 밀어 넣는 과정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손은 많이 가지만 야채가 많이 들어간 것이 육거리 순대의 특징인데, 특히 청양고추의 톡 쏘는 맛은 순대의 느끼함을 덜하게 한다. 이렇게 어렵사리 만든 순대는 가게 앞 들마루에 널어 식히게 되는데 들마루에 나란히 널린 순대는 육거리 순대골목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잠잘 때만 빼고 함께 지내는 이웃
다닥다닥 붙은 가게도 그렇지만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문을 열다보니 상인 7명은 잠자는 시간만 빼놓고는 함께 지내는 가족이다. 손님의 발길이 뜸한 날은 한 가게에 모여 이야기보따리를 풀며 시름을 잊기도 한다는데, 공영주차장이 시장 깊숙한 곳에 설치된 것에 대한 불만이 자주 도마 위에 오른다.

어차피 만든 주차장이야 할 수 없지만 육거리시장의 초입인 순대골목 주변에 주차장이 하나 더 생겼으면 하는 것이 상인들의 한결같은 바람이다.

육거리 순대골목의 대목은 ‘꽃피는 춘삼월’이라고 한다. 무심천을 따라 개나리, 벚꽃이 흐드러지면 꽃구경을 나왔던 사람들이 몰려들기 때문이다. 꽃이 만발하는 시점이 주말과 겹치면 그야말로 대박이 터진다는데, 그나마도 날이 맑아야 대목 덕을 볼 수가 있다.

어느 도시에나 대학가나 저잣거리에 순대골목이 있다.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은 서울의 신림동 순대골목이나 인근 충남 병천의 순대거리가 대표적인 예다.

신림동 순대골목은 ‘민속순대타운’ 건물을 지으면서 재래시장에 흩어져있던 가게들을 한데 모았고 새로운 명소로 자리매김 했다. 병천의 순대거리는 교통의 요충지에 너른 부대시설로 전국의 식도락가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육거리시장 상인들의 시름깊은 얼굴에도 봄날은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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