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평화 탁발하는 ‘실상사 3인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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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평화 탁발하는 ‘실상사 3인방’
  • 이재표 기자
  • 승인 2007.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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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양민학살 청주 위령제에서 한자리
탁발은 곧 수행이었다. 현실적으로 생산이나 상업활동에 종사할 수 없는 수행자는 걸식을 통해 교만한 마음을 잠재우고, 반대로 음식을 나눠주는 사람은 보시를 통해 좋은 업을 쌓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곳간에 쌓아둘 수 있는 곡식이 아니라 조리된 음식을 기탁받았기에 혹여라도 남는 것이 있으면 다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눔으로써 수행자는 늘 청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국의 불교를 대표하는 종단이라 할 수 있는 조계종은 ‘현대사회에서 성직자의 품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1964년부터 종헌종법으로 탁발을 금지하고 있다. 탁발을 금지한 것은 시대적 판단이라지만 ‘탁발정신’의 실종은 현대 불교의 위기와 맞닿아 있다.

   
▲ 한국전쟁 당시 보도연맹원 등 민간인 1000여명이 집단학살된 청원군 남일면 고은리 분터골에서 3월29일 보도연맹 유족회와 충북생명평화탁발순례 추진위가 주최한 제1회 청주·청원 민간인희생자 합동위령제가 열렸다.
/ 사진=육성준 기자
그런데 3년 전부터 공개적으로 탁발 운수행각에 나선 스님이 있다. 전북 남원시 산내면 지리산 기슭에 있는 천년고찰 실상사 주지자리를 내놓고 신부, 목사 등 타 종교인들과 함께 ‘생명평화’를 탁발하러 나선 도법스님(인드라망생명공동체 대표)이 그 사람이다.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은 2004년 3월1일 지리산 노고단을 출발해 지리산 주변을 시작으로 제주도, 부산과 울산, 경남 전역을 순례했다. 또 2005년에는 전남과 광주, 경북과 대구를, 지난해엔 전북과 대전, 충남 땅을 걸었다. 이들이 지금까지 걸어온 거리는 약 1만9000여리. 순례의 길에서 만난 사람만 5만4000여명에 이른다.

노근리, 분터골에서 위령행사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의 2007년 일정은 충북에서 시작됐다. 3월6일 영동군을 시작으로 5월27일 단양군까지 석 달간의 충북 순례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3월10일 6.25 당시 미군에 의해 양민 300여명이 학살당한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쌍굴다리에서 위령제를 지냈고, 3월29일에는 충북지역 최대의 민간인 학살지역으로 추정되는 청원군 남일면 고은리 분터골에서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청주·청원 민간인 희생자 합동위령제를 올렸다.

분터골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청주·청원 지역 보도연맹원 1000여명이 끌려와 집단학살된 장소로, 도내 최대 규모의 피해 현장이다.
이날 민간인희생자 합동위령제는 추도사, 유족 증언, 유족 편지, 헌시 낭독에 이어 진혼무 공연으로 이어졌다. 또 원불교, 천주교, 개신교, 불교의 순으로 종교의례를 올려 민간인 희생자들의 넋을 달랬다.

청주·청원합동위령제에는 도법스님 외에도 새만금 간척사업에 반대하며 65일 동안 300km를 ‘3보1배’로 행진한 수경스님(화계사 주지·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과 불교개혁, 환경운동을 함께해온 절친한 도반이자 동지인 연관스님(전 실상사 화엄학림 학장) 등 ‘실상사 3인방’이 자리를 함께해 눈길을 끌었다. 연관스님은 불교계의 ‘황우석 교수 감싸기’를 비판한 도법스님에 대해 지난해 7월 “도법 스님은 침묵하라”며 신랄한 반론을 펼쳐 세상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길에서 깨달음 찾는… 도법스님
“이념 상처 달래야 영원한 평화의 땅”


   
▲ 도법스님은 이념갈등으로 발생한 민족의 상처를 치유하고, 각종 개발로 인해 멍들어가고 있는 현장에서 환경과 인간의 공존해야함을 전하기 위해 4년째 탁발순례를 이어오고 있다.
/ 사진=육성준 기자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을 이끄는 도법스님은 1998년말 조계종이 기존 총무원과 정화개혁회의로 나뉘어 다툴 때 총무원장 권한대행으로 분규를 수습하고 미련없이 실상사로 내려간 스님이다. 1990년대 초반엔 청정불교운동을 이끈 개혁승가 결사체 선우도량을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도법스님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생명운동이었다. 1998년 실상사 땅 3만평을 희사해 귀농전문학교를 만들고 인드라망생명공동체를 창립하면서 생활협동조합, 대안교육, 환경운동으로 활동영역을 넓혔다.

2004년부터 시작한 생명평화탁발순례는 이념갈등으로 발생한 민족의 상처를 치유하고, 각종 개발로 인해 멍들어가고 있는 현장에서 환경과 인간의 공존해야함을 전하기 위한 것이다.

도법스님은 “갈등과 분열, 모순을 극대화시키는 현재의 삶의 방식을 극복해내지 않으면 진정한 평화가 올 수 없다”며 “새로운 삶의 행태, 평화, 생명사랑을 실현할 수 있는 토대가 될 때까지 탁발순례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도법스님과 순례단은 특히 지역사회와 결합해 6.25 전쟁 당시 이념대립으로 인한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는 위령제를 올리고 있다. 지리산 자락에서는 누구도 돌보지 않던 빨치산 무덤을 벌초한 뒤 푯말을 세웠고, 제주도에서는 4.3항쟁 당시 희생된 아이들의 집단 매장지를 참배했다.

도법스님은 “일제강점기와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어온 우리나라는 민족의 상처를 치유해야만 영원히 평화의 땅을 만들 수 있다”며 “지역에서는 생명평화를 탁발하는 우리를 핑계로 그동안 금기시해 왔던 영역에도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법스님은 또 “3년간의 탁발 과정에서 도지사, 시장·군수들도 위령제 현장으로 불러냈다”며 “거제포로수용소 행사에는 재향군인회까지 참석했다”고 말했다.
도법스님의 탁발순례는 이 시대의 화두를 ‘생명과 평화’로 설정했을 뿐 따뜻한 밥과 잠자리를 박차고 나온 것은 석가모니의 구도와 다를 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순례를 따르는 무리에 스님 등 불교인은 드물다.
도법스님은 이에 대해 “제사는 불교가 잘하는데 이런 일에는 나서지 않는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3보 1배 생명의 구도행…수경스님
“지역·민족에 도움 안되는 종교는 도태”


   
▲ 수경스님은 불교계의 소극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아픔이 있는 현장을 외면하는 것은 물론이고, 불교계에 직접적인 피해가 미치는 것에 대해서도 불감증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청주·청원 위령제 현장에 나타난 수경스님은 지팡이에 의지하고도 불편한 걸음걸이가 눈에 확연하게 들어왔다. 지난 2003년 3월부터 65일동안 문규현 신부, 김경일 원불교 교무, 이희운 목사 등 종교지도자를 비롯해 30여명으로 꾸려진 공식 수행단과 함께 새만금 간척사업의 중단을 요구하며 전북 부안 해창갯벌에서 서울까지 300여㎞를 ‘3보1배’로 행진한데 따른 후유증이다.

수경스님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도 위령제에 참석한 것은 도법스님에 대한 동지의식 때문이다. 수경스님은 2004년 3월 생명평화 탁발순례 출발지인 노고단 행사에서 참석해서도 “3보1배는 자연과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에 대한 나와 사회 구성원들의 참회를 위한 것이었다”며 “3보1배의 후유증으로 무릎 부위를 다시 수술해야 하지만 휠체어를 타고라도 따라가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수경스님은 새만금사업이 결국 강행되고 만 것에 대해 “유구무언이다”라고 짧게 밝힌 뒤 “대선주자들이 탐욕을 부추기는 각종 개발공약을 남발하는 현 상황이 심히 우려스럽다고 강조했다.

수경스님은 “박근혜 전 대표의 장항산업단지 건설 공약이나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경부운하 건설 공약은 누구를 탓할 것도 없이 상생이 아닌 살생의 공약이 될 수밖에 없다”며 “국민의식이 깨어나기 전에는 대안도 없다”고 말했다. 대선이라는 블랙홀이 모든 사회적 의제들을 집어삼키고 있으며 일부 대선 주자들은 마치 대권을 잡기라도 한 것처럼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경스님은 특히 불교계의 소극적인 현실인식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위령제와 같이 아픔이 있는 현장을 외면하는 것은 물론이고, 불교계에 직접적인 피해가 미치는 것에 대해서도 불감증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수경스님은 “경부운하를 파면 산과 물가에 땅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사찰의 피해가 가장 심각할 텐데 불교계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고 꼬집었다.

수경스님은 또 “이 시대의 불교는 현안 문제를 외면해 지탄받고 있다”며 “지역과 민족에 도움이 되지 않는 종교는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자기 일을 풀지 못하면 현실을 제대로 진단할 수 없고 진단이 정확하지 않으면 대안을 낼 수 없다는 것이다.

황우석 논쟁은 휴전… 연관스님
두 스님과 함께 ‘풀꽃상’ 받은 영원한 도반


   
▲ 연관스님
청주·청원 위령제에서 눈길을 끈 것은 연관스님의 조용한 등장이었다. 연관스님은 도법스님이 실상사 주지를 지낼 때 실상사 화엄학림 학장을 맡았고, 지리산댐 건설을 반대한 공로로 도법, 수경스님과 함께 환경인들이 주는 풀꽃상(2000년)을 공동수상하기도 했다. 또 2001년에는 불교계 폭력근절을 위한 21일 공동단식에 들어가는 등 도법, 연관스님은 수경스님과 함께 ‘실상사 삼총사’로 불리며 깊은 인연을 쌓아왔다.

그러던 중 지난해 초 ‘황우석 문제’를 둘러싸고 도법스님과 연관스님 사이에 일대 논쟁이 벌어졌다. 도법스님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불교계의 황우석 감싸기는 불교적 생명윤리관을 고려치 않았을 뿐 아니라, 조선시대 불교탄압과 해방 후 기독교의 급성장에 대해 피해의식과 위기의식에 젖은 한국 불교계가 황우석을 통해 자부심을 느끼고 싶어하는 것으로, 미망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질타하자 평소 언론노출을 꺼려왔던 연관스님이 불교신문 기고를 통해 대반격에 나섰던 것.

연관스님은 기고문에서 “(도법스님도) 생명평화를 전도한다는 미명 아래 얼마나 많은 미물을 밟아 죽였느냐”면서 “황 교수도 우선 작은 생명인 난자를 버려 큰 생명(난치병 치료)을 얻는다면 도법 스님이 하고자 하는 일과 무엇이 다른갚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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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스님의 논쟁은 불교계 내부에 황우석 논란을 불 지폈고 최근에는 ‘황우석팀 연구후원을 위한 범불교연대(상임대표 법타스님)가 출범하기도 했다. 그러나 도법, 연관스님은 이날 위령제 현장에 나란히 앉아 도반으로서 말없이 ‘염화미소’의 대화만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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