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전문직 전성시대>
변호사 권위 옛말, 세일즈 나서야 살아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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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전문직 전성시대>
변호사 권위 옛말, 세일즈 나서야 살아남아
  • 김진오 기자
  • 승인 2010.02.03 0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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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내 변호사 10년 새 두 배 급증, 사건 수임난에 급여체납도
로펌 등 해법 골몰 불구 로스쿨 영향 경쟁 더욱 치열해질 것

   
▲ 변호사 수는 급증한 반면 수요는 제자리에 그치면서 업계의 불황이 깊어가고 있다. 로펌 등 집단화 등 해법에 골몰하고 있지만 묘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경력 10년이 넘은 A씨는 한때 잘 나가는 충북지역 변호사 중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A변호사는 3년 전 6명이었던 직원을 3명으로 줄였고 최근에도 한 명을 내보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지난달 수임한 사건은 사기사건 피의자 변호 1건 뿐이었다. 사무장을 비롯한 3명의 직원과 사무실 운영비, 본인의 기본적인 품위 유지를 위해서는 최소 월 1000만원이 필요하지만 지난달 수입은 종결된 민사사건과 새로운 사건을 합쳐 600만원을 겨우 넘겼다.

지금까지 직원 급여는 제 날짜에 밀리지 않고 지급해 왔지만 이런 상태가 한 두 달 만 더 이어진다면 연체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한달에 서너 번 즐기던 골프 라운드도 언제부터인가 시간 핑계를 대며 한두 번으로 줄였고 각종 모임에 나가도 신용카드 잔여한도 걱정을 해야 할 판이다.

A씨는 “그렇다고 사정을 털어 놓고 양해를 구하기도 힘들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면 변호사로서의 무능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만 두겠다는 직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도내 변호사 80명 10년 새 두 배 증가

현재 도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변호사는 청주 55명, 충주, 13명, 제천 9명, 영동 3명 등 모두 80명이다. 1990년대 후반 40명에 미치지 못했던 것을 감안하면 10년 사이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이에 비해 청주지방법원이 처리한 사건은 크게 늘지 않았다. 1998년 옛 수곡동 청사시절 뒤편 별관을 증축해 제3부를 설치했고 2008년에는 대전고법 청주원외재판부가 문을 열었지만 시국사건의 급감으로 2004년 공안과가 폐지됐다.

변호사 수 급증은 수요 증가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분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법조계에서는  사법시험 합격자 수가 크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실제 정부는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매년 사법시험 합격자를 300명씩 배출했지만 2000년대 들어 500명으로 늘린데 이어 현재는 1000명씩 쏟아내고 있다.
이미 지난해 사법연수원 수료생 40%가 제 때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등 법조인의 취업난이 빚어지고 있는 현상도 변호사 개업 러시를 부채질 하고 있다.

A변호사는 “사법시험 합격자의 신규 판검사 임용은 사법연수원 성적순으로 정해진다. 하지만 전체 연수생 80% 이상은 법복을 입지 못하고 변호사 개업하거나 취업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2008년 신규 임용 판사는 96명, 검사는 77명에 불과했다. 사법연수생 1000명중 173명 만이 판검사가 됐을 뿐이다. 때문에 사법연수생들을 대상으로 중매쟁이들이 줄을 선다는 것은 이미 옛 말이 돼 버렸다는 것이다.

심지어 안정적인 변호사 개업도 쉽지 않다는 게 현직 변호사들의 전언이다.
변호사 B씨는 “높은 연봉이 보장되는 서울의 대형 로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판검사 임용에 필적할 만한 실력을 입증해야 한다. 무턱대고 변호사 개업에 나섰다가는 몇 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기 안성마춤”이라고 말했다.

집단화…세일즈…국선전담 등 해법 골몰

변호사업계에서는 사건 수임난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이 시도되고 있지만 근본 해결책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수요는 한정돼 있는 반면 변호사 수는 증가하고  더욱이 2012년부터 최대 3000명의 로스쿨 졸업생도 배출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변호사들은 당장 무한경쟁에 돌입해야 한다며 크게 시름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2008년 도내 대학들이 로스쿨 유치를 위해 교수로 초빙한 변호사들이 부러움을 받았던 점도 이런 현실을 대변해 주고 있는 것이다.

변호사업계의 불황이 깊어지면서 나타난 가장 큰 특징은 변호사들의 집단화다. 도내 두 세 곳에 불과했던 법무법인이 최근 7개 까지 급증하고 있으며 유명 대형 로펌의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경쟁력 갖추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한 로펌 참여 변호사 관계자는 “로펌에 대한 신뢰도가 개인변호사에 비해 훨씬 높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변호사 개인의 일정에 따라 재판 기일을 변경해야 하는 불편 없이 재판을 진행할 수 있어 의뢰인들의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특히 집단화 함으로써 인건비와 경비를 줄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또한 변호사들이 직접 명함을 돌리며 세일즈에 나서는 경우도 흔해지고 있으며 일부는 번거롭다며 기피하던 외부 기관이나 단체의 자문역할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변호사 C씨는 “특히 판검사 출신 변호사들에게는 권위의식이 남아 있는 모습이 많았지만 최근들어 사회활동의 폭을 늘리고 있다. 심지어 10여개의 모임에 가입하거나 이름을 알릴 수 있는 행사를 챙기는 등 적극적인 세일즈에 나서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초·중·고 교사가 부러운 건축사·회계사 
무한 출혈경쟁 이미 시작, 불황업고 더욱 악화

변호사·의사와 함께 대표적인 전문직인 건축사나 회계사 등도 이미 10여년 전부터 무한경쟁에 돌입했다며 시름을 토해내고 있다.

도내에 264명이 활동하는 건축사의 경우 출혈경쟁과 건축경기 침체로 몇 년 째 한겨울 같은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건축사 불황의 가장 큰 원인도 변호사·의사들과 마찬가지로 인원이 늘었기 때문이며 이로 인한 업체간 덤핑경쟁, 여기에 경기침체 까지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건축설계 비용은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표준품셈으로 고시됐지만 공정거래법 위반 시비로 페지되면서 출혈경쟁이 더욱 가속화 되고 있다.

한 건축사는 “표준품셈이 3.3㎡에 11만여원으로 설계비를 정했을 때에도 6~7만원 까지 덤핑 수주하는 경우가 많았다. 건축사회 등을 중심으로 덤핑 금지 캠페인이 벌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문제가 더욱 심각해 5만원 이하로 인하해 영업에 나서는 일도 있다. 건축설계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종합예술이라는 말이 무색해 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회계사 또한 마찬가지다. 세무사와의 영역이 모호해지면서 더욱 불황이 깊어가고 있다. 회계사는 세무사와 달리 기업의 외부감사와 인수합병, 평가 등을 수행할 수 있지만 수요가 적어 차별성이 불분명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공인중개사들도 부동산 경기 침체로 경영난이 심화되고 있지만 정부가 자격증을 실업해소 대책으로 남발하고 있다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전문직들은 이런 상황을 빗대 ‘초·중·고 교사들이 부럽다’는 푸념까지 토해내고 있다.
한 회계사 관계자는 “어렵게 공부해 자격을 취득한 전문직이라고 하지만 항상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안정적인 직장에 자기개발 기회도 주어지는 교사나 공무원들이 부러울 정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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