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끝나지 않은 흰고래와의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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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끝나지 않은 흰고래와의 싸움
  • 이재표 기자
  • 승인 2011.06.15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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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표 편집국장

평생을 공직에 몸담아 머리 위에 관(官)을 얹는다. 사무관, 서기관, 이사관 등 벼슬이 올라갈수록 그 권위와 위엄이 수탉의 벼슬과도 같다. 30년 안팎의 세월을 공직자로 살다가 물러난 그들의 삶은 충분히 명예롭고, 공무원연금제도가 노후를 보장하기마련이다.

다만 평균수명이 늘어난 게 문제일까? 퇴임 후 시간만 낚으며 살 수 없는지라 새 일거리를 찾는다. 이른바 이모작 인생이 시작된다. 어떤 전관들의 이모작을 보면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다.

그러나 지나친 욕심은 화를 부른다. 충북에서도 전관들의 무덤이 되고만 골프장이 있다. 지역출신으로 국세청 국장을 지낸 H씨가 있었다. H씨는 노후에 축산업을 하기 위해 사두었던 청원군의 임야에 골프장을 짓겠다는 꿈을 꾸었다. 친구이자 동업자인 P씨가 있었으나 2007년 9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골프장 조성에 필요한 땅을 더 확보하기 위해 지역의 건설업계 큰손이자 골프장 전문가인 J씨를 끌어들였다. J씨는 훗날 국내 굴지의 스포츠신문 대주주(회장)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J씨는 2007년 4월 이사직에서 물러난다. 1년 뒤에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철창신세까지 진다. 횡령과 조세포탈 혐의였다. 이로써 골프장 지분은 사실상 H씨 1인 소유가 된다.

H씨는 인허가 과정의 막바지인 2006년 말 국장 자리를 던지고 직접 골프장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때 감사원 국장 출신의 I씨를 대표이사로 영입했다. 2007년 5월28일 모든 인허가 절차가 마무리됐다. 하지만 그로부터 열흘 뒤에 I씨가 해임됐다. 이 과정에서 I씨를 비롯해 동업자 P씨의 유족 등이 산림청과 청원군, 청원군의회 등을 대상으로 ‘전방위 금품로비가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충청리뷰는 2년여에 걸쳐 이를 파헤치는 보도를 이어갔다.

금품이 오가는 과정에서 함께 비자금을 조성하거나 실무적으로 돈을 전달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혐의를 시인했다. 산림청과 청원군 하위직 공무원들도 돈을 받을 뻔했다가 돌려준 사실을 인정했다. 골프장 회원권 승인을 담당하는 충북도 공무원은 접대골프 등 향응을 받은 것이 드러났다.

그리고 2009년 4월13일 H씨가 구속됐다. 그러나 국세청 재직시절 뇌물수수와 관련해서였다. H씨는 형기를 다 채우지 않고 보석으로 풀려났다. H씨는 지난 5월20일 또 다시 구속됐다. 이번에는 ‘상속세와 관련한 국세청의 고발을 무마해주겠다’며 돈만 받아 챙긴 배임수재혐의였다. 인허가 비리의 한 축으로 지목됐던 K 전 청원군수 역시 2009년 12월, 임기를 6개월여 남기고 옷을 벗었으나 이 역시 별건의 제보에 따른 선거법 위반 사건의 취재결과였다.

2010년 4월 골프장은 우여곡절 끝에 문을 열었다. 정부 부처 차관보급 출신으로 현역 연구기관장인 C씨가 한때 대표이사를 맡았다. C씨는 H씨와 사돈관계다. 서울 모 지검 형사부장 출신 S변호사, H씨의 이웃사촌인 은행 지점장 등은 감사를 거쳐 갔다.

정·관계 로비에 능해 유력 주간지에 ‘여의도 꽃뱀’으로 소개되기도 했던 큰손 K회장(여)은 이사를 맡아 회원권 분양에 관여했으나 해임됐다. 현재 골프장은 2010년 4월 대표이사로 취임한 H씨의 고교 후배 L씨 외에 아들과 노모가 이사, 며느리가 감사를 맡고 있다.

수많은 유력인사들이 골프장을 거치며 모종의 역할을 한 뒤 스스로 물러나거나 해임됐으며, 자신이 ‘팽(烹)’ 당했다고 느끼는 인사들은 H씨와 지금도 전쟁을 치르고 있다. 전관들은 재임 시의 권력을 골프장에서 부로 승계하려했으나 결론적으로는 대부분 꿈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작 영화 ‘모비딕’처럼 기자로서 실체를 밝히지 못한 자괴감은 남는다. “정말 그것이 흰고래임을 알고 싸웠던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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