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터전 잃은 곳곳에서 ‘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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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터전 잃은 곳곳에서 ‘원성’
  • 오옥균 기자
  • 승인 2013.03.21 16: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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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금강7공구…단무지 무밭이 수변공원으로 변해
보은 궁저수지 … 6대째 살던 마을 떠나는 강환수 씨

충주시 중앙을 남북으로 흐르는 남한강은 충주의 오랜 자랑이었다. 깊은 물길을 따라 전국의 물자가 충주로 모여들었고, 이를 바탕으로 상업이 발달됐던 곳이다. 4대강 사업 한강7공구사업이 진행된 가금면 가흥리는 조선시대 조창(漕倉)이 설치돼 경상도와 충청도의 세곡을 받아 260리에 이르는 남한강 수로를 통해 서울의 용산창으로 운송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인지 이명박 전 대통령이 후보시절 내놓은 한반도 대운하에 장밋빛 기대를 품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충주 시민 상당수는 4대강 사업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충주지역은 충북에서 가장 많은 5180억원의 4대강 사업비가 투입된 곳이다. 한강8공구, 한강7공구, 충주선도지구 등 3개 본류사업이 진행됐다. 지난 15일 599번 지방도를 달려 도착한 한강7공구는 이러한 기대 때문인지 아쉬움과 원망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이 일대 가흥리는 이 전 대통령 당선 직후 땅값이 3배 이상 올랐다. 이 전 대통령이 후보 시절 한반도 대운하 공약을 설명하면서 이곳에 물류유통기지를 세우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 지난해 6월 공사를 끝낸 금강7공구에서 야생 쑥부쟁이를 볼 수 있는 날은 그리 길지 않을 전망이다(사진 위). 궁저수지 둑높임 사업은 13m를 추가로 높이는 사업으로 전국에서도 사례를 찾아볼 수 없다.(사진 아래).
삶의 터전, 휴식공간으로 대체

한강7공구가 완공된 지금은 개발에 대한 기대를 가졌던 주민도, 4대강 사업을 반대했던 주민도 실망하기는 마찬가지다. 마을 어귀에서 만난 한 주민은 “강을 정비한다고 해서 기대가 컸다. 하지만 공사가 끝난 지난해에도 폭우에 수변지역이 모두 침수됐다. 기왕 할 거면 침수나 되지 않게 했으면 좋으련만….”

집 앞 텃밭을 일구던 한 노인은 취재진을 만나자마자 딱한 사연을 풀어놓았다. 그는 “평생을 강가 땅을 부치고 살았는데 나라가 얼마간 보상금을 주며 내놓으라고 하니 별 수 있나. 그 돈으로 그럴듯한 땅을 살 수도 없고, 이 나이에 남의 땅을 부치고 산다”고 말했다. 70대 중반쯤 돼 보이는 이 노인은 행여나 불이익을 당할까 끝내 이름도 밝히지 않았다.

한강7공구 수변구역의 상당부분은 사유지였다. 이곳 농민들은 인근 단무지 제조공장에 납품할 단무지 무를 재배했고, 무는 농가의 적지 않은 수입원이었다. 4대강 사업이 확정되자 정부는 이들 사유지를 모두 매입했고, 그렇게 그들은 저항도 못하고 마을을 떠나야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수변공원과 잘 닦여진 자전거도로가 들어섰다. 농민들의 삶의 터전을 도시인들의 휴식·레저공간으로 내어준 것이다.

다음날 보은군 내북면 상궁리에 위치한 궁저수지로 향했다. 주민들의 반대로 사업이 지연됐던 궁저수지는 때늦은 공사가 한창이다. 둑의 높이를 두고 주민과 농어촌공사 간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던 이곳은 결국 농어촌공사의 급히 변경한 13m 증고로 공사를 진행 중이다. 당초 궁저수지는 기존 둑에서 4.6m만 높이는 것으로 설계됐지만 어찌된 일인지 한달 만에 13m로 변경됐다. 이로 인해 추가 저수량은 원안과 비교해 474만㎥나 늘었다. 도내는 물론 전국에서도 가장 높게 둑을 높이는 공사현장은 한눈에 봐도 대단한 규모였다. 수몰될 높이까지 벌목한 인근 산은 흙을 드러내고 있었다.

국내 최대 규모 둑 높이기 논란

이번 공사로 인해 내북면의 마을 2개가 사라졌다. 6대째 살던 마을을 떠나 아랫마을인 상궁리로 이사한 강환수(85) 씨의 착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진주 강씨 집성촌인 신궁리에서 사당을 지키고 살던 강 씨는 “조상님 묘도 수몰지역이 아닌 곳으로 이장했다. 6대째 지키며 살았던 마을이 사라지는데, 뭐라 표현할 수 없다”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강 씨는 둑높임 사업을 반대하다가 오랜 이웃들에게 위협을 당하는 험한 꼴도 당했다.

몇 채 안 되는 신궁리 집들은 이젠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가 됐다. 하지만 한 곳만은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 집의 주인 역시 진주 강씨로 올해 여든 살이 됐다. 이 노인은 “이 집이 스물네 평이다. 작은 댁 땅에 집을 짓고 살았는데 3600만원 보상금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이러고 있다”고 말했다.

4대강 사업이 앞으로 급변하는 기후변화 속에 어떤 역할을 할지 누구도 장담할 수는 없지만 고향을 잃는 사람들의 모습은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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