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선 도색에 걸린 법주사의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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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선 도색에 걸린 법주사의 자존심
  • 한덕현 기자
  • 승인 2004.06.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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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해지는 사찰 진입로 황색선 교체의 내막
“실리보다 명분”에 상가 주민들만 ‘속앓이’

충북의 최대 사찰인 법주사가 요즘 이래저래 속세인들의 관심을 끈다.
연초 주지스님을 문중 스님들의 직접선거로 뽑아 색다른 이미지를 안기더니 최근엔 사찰 입구 도로의 도색 문제로 이곳 법주사 사람들 사이에 말이 많다.
법주사 주지의 직선은 이번이 두 번째로, 선거는 지난 2월 28일 있었으나 한참이 지난 지금까지도 당시 선거와 관련된 민감한 얘기들이 지역 불교계의 담론(?)에 끊임없이 출몰함으로써 관계자들을 긴장시킨다.
사찰입구의 도로문제 역시 아직 공식적으로 밖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당사자들은 이른바 ‘머리가 아플’ 정도로 심각하게 받아 들인다. 충청리뷰가 최근 법주사와 관련된 얘기들을 집중 취재했다.

   
▲ 법주사 입구도로는 인근상가 뿐만 아니라 노점상들의 삶 터이다. 때문에 주·정차가 금지되면 서민들의 타격은 클 수밖에 없다. 사진은 입구 전경. / 육성준 기자

보은경찰서는 조만간 교통과장이 위원장으로 있는 교통심의규제위원회를 열어 법주사 진입로(약 1㎞)의 양쪽 끝에 황색실선을 그을지 여부를 결정한다.

현재의 흰선을 황색선으로 교체할 경우 도로 옆 상가들은 당장 불편해진다. 도로교통법상 주·정차가 원칙적으로 금지되기 때문이다.
상가의 입장에선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약 경찰이 이곳에 상주하며 불법 주정차 단속이라도 하게 되면 인근 상가의 타격은 불을 보듯 뻔하다. 손님들이 원거리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대고 가게를 찾을 리가 만무하다.

그런데도 이곳 상가를 대표하는 10여명의 주민들이 보은경찰서에 되레 황색선을 그어 줄 것을 집단민원으로 제기했다.
이곳 상가 주민들은 속리산관광협의회를 구성, 자신들의 권익보호에 나서고 있는데 엉뚱하게 정반대의 요구를 한 것이다.

이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이 우선 헷갈렸다.
한 주민은 “경찰에 황색선으로 바꿀 것을 진정했지만 속 마음은 그게 아니다. 우리 입장에선 워낙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말하긴 곤란하지만 말못할 사정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보은경찰서에 황색선을 칠해 달라고 요구했더니 사정을 모르는 일부 상가주민들이 오해를 했다. 어느 땐 법주사로부터 뭘 받았다느니 하는 심한 모욕까지 들었는데 사실이 아니다”며 자신들의 억울함을 풀어 줄 것을 오히려 기자에게 당부했다.

법주사측은 지난 5월 12일 황색선으로의 교체여부가 보은경찰서 심의에서 부결되자 발끈하며 재심의를 요청, 현재 관련 안건이 2차 심의에 계류중이다.

보은경찰서는 “사찰측과 주민들이 요구하기 때문에 우리로선 해 줄 수 밖에 없다. 조만간 재심을 통해 가부를 결정할 것이다”는 입장이다. 인근 주민들은 이번 일을 법주사와 보은경찰서간의 자존심 대결로도 해석하려는 눈치다.

“만만해 보이면 안된다?”
법주사 입구엔 사찰소유의 대형및 소형 주차장이 조성돼 있다. 만약 도로의 주정차가 금지되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어쩔 수 없이 이들 주차장을 이용할 수 밖에 없다.

외견상으론 법주사가 운영하는 주차장 수입이 올라가게 되고, 법주사로선 도로의 황색선 도색은 결국 ‘수입’이 목적이라는 눈총을 받을 게 뻔하다. 그러나 주민들이 말하는 ‘말못할 사정’이 문제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법주사 입구 도로 양쪽 끝의 경계선은 이곳이 현재의 흰색으로 되기까지는 과거 30여년동안 주정차가 금지되는 황색이었다.

그러다가 전임 주지인 지명스님이 재직하던 3년여전 어느날 사찰측에 통고도 없이 새벽시간대를 이용해 흰색으로 칠해진 것이다. 문제의 도로는 인근 상가와 함께 모두 법주사 소유로, 결국 법주사로선 자신의 재산이 주인도 모르는 사이에 훼손(?)된 꼴이 된 것이다.

단순한 일로 치부될 수 있지만 법주사측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당장 문중 내에서 “법주사가 얼마나 만만하게 보였으면.....”라는 냉소가 번졌고, 때문에 법주사로선 사안의 현실보다 명분으로 인식할 수 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 자존심 문제로 접근하게 된 것이다.

전임 주지가 후임에게 과업 인계
이런 이유로 그동안 법주사측은 여러 차례 경찰에 황색으로의 원상복구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도로의 색칠 문제가 사찰의 자존심과 관련됐다는 것은 법주사는 물론 상가 주민과 경찰이 모두 인정한다.

법주사 관계자는 “ 법주사 요구는 원래대로 해 달라는 것이다. 이미 상가 주민들과도 협의된 사항이다. 절차상의 문제를 따지는 것이지 다른 의도는 없다. 솔직하게 말하면 일종의 감정다툼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주사 내부문제를 잘 안다는 한 인사는 “만약 도로의 원상복구가 안 되면 법주사와 상가, 그리고 관련 기관단체들 사이에 영(令)이 제대로 서지 않을 것이다. 중부권을 대표하는 가람이 이런 소소한 문제에 조바심내는 것이 이상할지 모르지만 어쨌든 이 사안은 이렇게 자존심 문제로 변질됐다. 법주사로선 기를 쓰고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키려 할 것이다. 서로 명분에 집착하다보면 쉽게 해결될 일도 꼬이는 법이다. 지금의 상황이 이렇다”고 말했다. 결국 전임 주지 지명스님이 물러나면서 후임인 도공 현 주지에게 이 과업(?)을 인계하기에 이른다.

법주사 강경 입장에 주민들 눈치보기
상가 주민 일부가 보은경찰서에 황색선을 진정한 것에 대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마지못한 수용’으로 이해하고 있다.
결코 내키지 않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이 법주사의 뜻에 따랐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 주민은 “주민들로서야 황색선이 칠해지는 것을 찬성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렇지만 법주사가 워낙 강하게 밀어부치니가 세입자 신분의 우리로선 이에 반기를 들 재간이 없다. 때문에 일단 법주사의 뜻대로 황색선에 동의했지만 경찰단속에 있어선 융통성을 발휘하기를 바랄 뿐이다”고 말했다. 법주사의 자존심을 살려주면서도 상가활동엔 불편함을 겪지 않겠다는 현실적 접근인 것이다. 보은경찰서도 “황색선이 그어지면 주정차를 할 수 없지만 그곳이 지역의 대표적 관광지인데 단속을 제대로 할 수 있겠나”고 반문해 속 사정이 복잡함을 시사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과거 J씨의 사례를 들어 “만약 특정인이 원칙대로 단속할 것을 요구하면 경찰로서도 회피할 방법이 없다”며 향후 파장을 우려했다.

실제로 문제 도로의 양쪽 경계를 흰색으로 하느냐, 황색으로 하느냐 하는 논란은 이런 특정인으로부터 비롯된 의혹이 짙다. 과거 십수년동안 황색이던 도로 경계선이 3년여전 갑자기 흰색으로 바뀐 것은 당시 모 큰스님의 지원으로 소형주차장을 운영하던 J씨가 자신의 주차장 이용률을 높일 목적으로 경찰에 집요하게 단속을 요구했기 때문이라는게 중론이다.

J의 처사에 반발, 상가주민들과 경찰이 법주사와 상의없이 의기투합해 황색을 흰색으로 갈아 치운 것이다. 문제의 소형주차장은 지루한 명도소송 등을 통해 다시 관리권이 법주사로 넘어갔고, J씨는 다른 문제로 현재 영어의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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