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건설-전문건설, “지금은 소리없는 전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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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건설-전문건설, “지금은 소리없는 전쟁중”
  • 한덕현 기자
  • 승인 2004.06.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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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군 70억대 하수관거 공사놓고 업권 다툼
입찰공고 후 논란 불거지자 백지화, 행정신뢰추락

지난 3일 영동군이 입찰공고했던 하수관거 정비공사는 영동읍과 양강면 일대의 오수관거 2만4635m와 우수관거 1362m를 대상으로 한다. 공사예정금액이 관급 포함 78억원대로 업계에 따르면 도내에서 발주된 동종 공사로는 최대 규모다.

영동군은 입찰공고를 내면서 참가자격을 전문건설업중 상하수도 설비공사업 등록업체로 한정했다. 일반건설업체(종합)의 참여를 원천 배제한 것이다.

논란은 여기서부터 불거졌다. 당장 일반건설업계의 권익기관인 대한건설협회충북도회(이하 충북건설협)가 반발, 9일 이곳 사무처장 등 관계자들이 영동군을 방문해 강력 항의하기에 이른다.

건설업계 이해당사자간의 의견이 상충되며 상황이 복잡하게 돌아가자 영동군은 하룻만인 10일 돌연 입찰취소공고를 내게 냈고, 그러자 이번엔 대한전문건설협회 충북도회(이하 충북전문건설협)가 발끈하고 나선 것이다.

결국 영동군은 자체 입찰을 포기하고 16일 충북지방조달청에 경매를 의뢰하기에 이른다. 이에 대해 영동군 담당자는 “당초 공고된 내용에 특별한 하자가 있었다기보다는 어쨌든 관련 기관간 의견이 엇갈려 전문기관의 의사를 물을 필요성이 제기됐다.

론 이에 앞서 여러 곳에 자문과 질의를 했고, 최종적으로 이런 결과를 도출한 것이다. 입찰공고 취소가 아닌 보완 내지 수정하는 쪽도 생각해 봤는데, 그럴 경우 업계의 특성상 더 많은 혼란과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판단돼 부득이하게 조달청에 입찰의뢰를 하게 됐다. 무슨 잘못이 있어서가 아니고 전문기관에 분명한 판단을 요구하기 위한 방책이었다”고 말했다.

조달청에 의뢰, 전문가 의견 구해
그러나 전문건설업계의 반응은 달랐다. 영동군이 업계의 의견이 상충되는 현안에 대해 전형적인 책임회피, 무소신으로 나왔다고 비판한다.

한 관계자는 “이와 유사한 공사가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많았지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공사의 성격을 감안, 전문건설업에 한정해 입찰을 실시했다. 공고를 내기 전에 이런 논란을 빚었다면 몰라도 이미 공고된 상태에서 전면 취소한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처사다. 그렇다고 영동군이 절차적인 하자를 인정하는 것도 아니다. 단순히 일반 건설업계가 반발하니까 한발 빼며 눈치를 보는 것이다. 이래서야 지방자치가 무슨 소용이 있겠나”고 반문했다.

조달청 입찰은 대개 업체의 시공능력 평가액을 기준한 등급 입찰로 시행되기 때문에 도내 업체의 참여기회는 그만큼 축소될 수 밖에 없고, 통상 의무하도급의 50% 이내에서 해당 지방업체에 하도급을 주도록 관례적으로 강제하는 지자체의 입찰과는 달리 조달청 입찰에선 이런 강제성이 약하기 때문에 결국 지역업체로선 득될게 없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문제 공사의 기초금액 63억원(관급제외)을 기준한다면 건설산업기본법상의 의무하도급 비율이 30% 이상이기 때문에 이중 50%에 해당되는 9억여원이 최소한 지역업체에 떨어질 수 있다.

당초 영동군이 문제의 하수관거 공사를 전문건설업으로 한정해 입찰공고를 낸 것은 공사의 성격상 상하수도 공사가 주된 공사, 이른바 주공사이고 나머지는 부대공사라고 단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설협의 주장은 다르다. 비록 공사명이 ‘하수관거 공사’이지만 이에 들어 가는 공종은 토목, 구조물, 포장, 가시설 등 다양하므로 복합공사로 봐야하고, 이에 기준해 종합면허인 일반건설업체가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상하수도 공사를 하더라도 도로 등을 굴착, 흙을 걷어내고 설비 후에 다시 포장 등을 해야 하는 복합공사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상하수도 전문건설업으로 시공사를 한정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결국 전문건설협의 부대공사냐, 건설협의 복합공사냐의 문제로 시일이 촉박한 하수관거 공사가 차일피일 미뤄지게 됐다.

업권다툼 입찰취소는 건설업계 수치
영동군으로부터 입찰을 의뢰받은 충북지방조달청은 관련 사안을 다시 본청 기술심사팀으로 넘겨 해법을 구하게 된다. 충북조달청 관계자는 “설령 우리가 입찰을 대행한다고 하더라도 발주기관의 의사나 권장사항을 최대한 반영, 지역업체에 실제적인 혜택이 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조달청이 당초 영동군의 공고대로 전문건설업으로 입찰 참가자격을 제한할지, 아니면 건설협의 이의를 받아들여 일반건설업으로 전환할지는 현재로선 분명하지 않다. 다만 확실한 것은 눈앞에 떨어진 ‘파일’을 놓고 서로 업권 다툼을 벌이는 바람에 충북은 또 한가지 새로운(?) 시각의 ‘우수운 꼴’을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전문 건설인들은 이번처럼 행정기관의 입찰공고가 건설협회와 전문건설협회간 업역(業域) 다툼으로 취소된 것은 행정기관의 공신력 실추와 함께 건설업계의 수치로 받아들이고 있다.

건설관련법의 모호함이 문제
부대공사 개념 해석 이현령비현령


우리나라 건설관련 법이 애매모호하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똑같은 조항을 놓고도 해석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다른 법안도 마찬가지이지만 국회에서 건설관련 법안을 심의, 제정할 땐 말 그대로 사활을 건 로비가 펼쳐진다. 그렇다보니 선을 분명히 긋기보다는 두루뭉수리한 표현이 많아 이해 당사자들 사이에 이현령비현령의 해석을 낳게 한다. 예외조항과 유권해석이 특히 많은 것도 건설관련 법이다. 이번 영동군 하수관거 공사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건설협회와 전문건설협회의 ‘부대공사’ 논란도 원흉은 바로 어정쩡한 법조항이다.

부대공사를 정의한 건설산업법 시행령 제21조는 부대공사의 개념을 <주된 공사를 시공하기 위하여 또는 시공함으로 인하여 필요하게 되는 종된 공사 (1항), <2종 이상의 전문공사가 복합된 공사로서 공사예정금액이 1억원 미만이고, 주된 전문공사의 공사예정금액이 전체 공사예정금액의 2분의 1 이상인 경우 그 나머지 부분의 공사> (2항)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 쉽게 말하면 공사의 목적성에 해당되는 공종이 주된공사 즉 주공사가 되고 나머지는 부대공사로 분류된다. 전문공사에 한해 1억원미만의 기준을 정해 사업비 50% 이하의 공종을 부대공사로 규정한 것은 주로 소액공사를 도맡는 전문건설업체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이 법이 좀더 정확하게 인식되려면 부대공사 못지 않게 주된공사에 대한 개념규정도 명시할 필요가 있다.

이에 따라 이번 영동군 하수관거공사같은 업역(業域) 내지 업권(業圈) 다툼을 우려해 그동안 업계가 시행령이나 시행규칙 등에 이를 명문화 할 것을 줄기차게 요구했으나 이행되지 않았다.

위 1항을 적용하면 영동군 하수관거 공사는 말 그대로 목적이 상하수도 공사이기 때문에 전문건설로 입찰을 제한할 수도 있고, 2항을 적용하면 전문공사이지만 사업비가 1억원이 넘기 때문에 상하수도 외의 공종을 부대공사가 아니라고 우겨도 할말이 없다.

이를 감안 전문건설협회는 자체 실무지침(교재)을 통해 1억 이상의 복합공사라 하더라도 ‘주된 전문공사의 시공목적과 시공과정상 필수적으로 수반되거나 종속되는 공사는 모두 주된 전문공사의 부대공사로서 주된 전문건설업 면허자에게 발주해야 한다’고 교육하고 있다.

업계에선 통상적으로 사업비를 기준, 목적공사가 전체의 50% 이상을 차지하면 주된공사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영동군은 당초 입찰공고를 낼 당시 공사비를 기준한 게 아니라 공사의 성격을 따져 전문건설업으로 참가를 제한했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공사의 목적이 상하수도이고 사업비 역시 이 분야의 공종에서 가장 많이 차지하기 때문에 전문건설에만 참가자격을 줬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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