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도 '목표' 없고 '슬로건'만 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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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도 '목표' 없고 '슬로건'만 난무
  • 홍강희 기자
  • 승인 2014.06.2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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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사는 충북·함께하는 충북·살맛나는 청주·녹색수도 청주 ‘애매모호’
정체성 없고 구성원들과 합의·토론과정 없어···끝난 뒤 평가도 안 해
오는 7월 1일이면 민선6기가 출범한다. 지난 1995년 7월 1일 민선1기가 시작된 이래 20년이 다 돼간다. 민선시대가 바뀔 때마다 지방자치단체의 목표나 방침도 바뀐다. 새로 취임하는 단체장은 임기동안 추진할 방향을 제시한다. 그러나 그 지자체의 구성원들과 관계없는 구호성 슬로건을 정하기 일쑤다. 현재 충북도청·청주시청·청원군청 등 광역·기초지자체는 목표와 방침을 각 실·과마다 액자에 걸어놓았다. 그러나 공무원들조차 이것이 걸려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알더라도 정확한 문구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구색맞추기식 목표로만 존재하다 다음 단체장이 들어서면 폐기된다. 따라서 도민과 시민들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하고 만들어졌다 폐기되는 과정을 계속 반복해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이낙연 전남도지사 당선자는 민선6기 도정목표와 방침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전남도는 도민에게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고 향후 도정 추진의 구심점이 될 도정목표와 방침을 설정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또 원희룡 제주지사 당선자는 민선6기 제주도를 이끌 슬로건과 목표, 방침에 대해 전국공모를 실시중이다. 제주도 새도정준비위는 “도정이 추구해야 할 비전을 20자 이내로 제시하면 된다. 새 도정의 가치와 비전을 함축적이고 친근하게 표현하고, 당선자의 비전과 철학을 반영하면 된다”고 발표했다.

   
▲ 민선5기 청주시는 '녹색수도 청주'를 주창했다. 하지만 너무 추상적이고 범위가 넓어 시민들로부터 많은 공감을 얻지 못했다.

민선1기 주병덕 지사의 충북도정 목표는 ‘힘있는 충북건설’ 이었다. 2기 이원종 지사는 ‘열린 미래 희망찬 충북’이라고 했다. 연임에 성공한 이 지사는 이어 3기에 ‘으뜸도민 으뜸충북’을 주창했다. 그리고 4기에 취임한 정우택 지사는 ‘잘사는 충북 행복한 도민’, 5기 이시종 지사는 ‘함께하는 충북’을 내세웠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누가 어떤 목표를 내세웠는지 모를 정도로 비슷하다. 충북의 민선시대는 힘있는 충북-희망찬 충북-으뜸 충북-잘사는 충북-당당한 충북으로 이어졌다. 약간의 분위기만 바뀌었을 뿐 매우 유사하다. 공무원 모 씨는 “충북은 3% 경제를 탈피하지 못해 도세가 약한 지역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래서 민선1~3기에는 힘있는-희망찬-으뜸충북으로 이어졌고, 4기에는 경제특별도를 끌고가면서 잘사는 충북으로 정했다. 이어 5기에는 도민들의 화합을 강조해 함께하는 충북이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목표에는 충북의 정체성이 들어가 있지 않고 타 지자체와 구분이 안될 정도로 평이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목표에 따른 세부방침도 매우 유사한 단어들의 나열이다. 균형발전과 문화창달은 기본으로 들어가 있고 대부분 경제활력과 평생복지를 언급했다.

정체성없는 청주·청원 그대로 나타나

청주시의 목표도 추상적이기만 하다. 민선1기 김현수 시장은 시민과 함께하는 시정, 2기 나기정 시장은 세계와 미래를 향한 변화와 창조, 3기 한대수 시장은 세계 일류도시 청주, 4기 남상우 시장은 살맛나는 행복한 청주, 그리고 5기 한범덕 시장은 녹색수도 청주를 주창했다. 민선시대 들어 청주시장은 계속 바뀌었다. 시민과 함께하는 시정-변화와 창조-행복한 청주-녹색수도 청주로 진행돼 왔다. 안 그래도 청주시의 정체성이 교육도시인지, 역사문화도시인지, 직지도시인지, 녹색수도인지 헷갈리다는 의견들이 많다. 김미숙 청주대 사회학과 교수도 ‘21세기 지역사회의 갈 길-청주시의 경우’라는 지역연구서를 펴내면서 청주시는 정체성이 약한 도시임을 지적했다. 청주시 역시 방침에는 지역경제·교육문화 등이 기본으로 들어가고 열린행정·선진복지·신뢰행정 등을 넣었다.

청원군은 민선1~2기를 변종석 군수가 연임해 군정 목표와 방침이 8년동안 유지됐다. 변 군수 자신은 초정스파텔 건립과정에서 뇌물을 받아 구속되면서 민선2기 중도에 물러났다. 그러나 10여개월동안 군수가 공석인 상태로 넘어가 변화가 없었다. 변 군수는 ‘우뚝서는 청원건설’을 내걸었다. 3기 김재욱 군수는 ‘앞서가는 청원 변화하는 청원’을, 4기 오효진 군수는 ‘대한민국 행복1번지, 푸른 청원 첨단 청원’, 5기 이종윤 군수는 ‘잘사는 청원 따뜻한 지역사회’를 내놓았다.

청원군은 오송생명과학단지와 오창과학산업단지라는 특화된 IT·BT 산업단지가 있지만 한마디로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는 단어는 없다. 그러다보니 우뚝서는-앞서가는-행복한-잘사는 식으로 애매하고 정체성이 들어있지 않은 단어를 나열해 놓았다는 지적이다.

   

“슬로건이지 목표가 아니다”

강형기 충북대 행정학과 교수는 “향후 성공한 모습을 그려보는 게 비전이면 그것을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게 목표다. 목표는 구체적이고 지역민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야 한다. 지역이 지향해야 할 목표는 구체적으로 지역을 분석해서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토대로 한 구상을 세밀한 계획으로 표현해야 한다. 또 목표는 지역민들과 공유하고 기간이 끝난 후에는 성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면서 “방침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 도정·시정·군정 목표는 엄밀히 말해 목표가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목표의 방향을 압축적으로 제시한 구호라는 의미의 슬로건이라는 것. 이 때문에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함께하는 충북, 잘사는 충북 행복한 도민, 세계 일류도시 행복한 청주, 녹색수도 청주는 슬로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구성원들이 이를 보고 감동받지 못하고 또한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에 연유한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지자체는 목표와 방침을 정할 때 공무원들 손으로 하고 만다. 사전에 심도있는 준비와 연구, 토론은 이어지지 않는다. 충북도는 민선5기 때 도지사직무인수위가 이에 관여했으나 민선6기 때는 내부에서 하고 있다. 도 관계자는 “안전한 충북·행복한 도민, 함께하는 충북·행복한 도민, 충북도민 행복시대 등의 문구를 도지사에게 올렸다. 현재 검토중이다. 행복이 키워드라서 이를 토대로 만들었다”면서 “공식채널은 아니지만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들었다”고 밝혔다. 목표는 보다 구체적이고, 이를 향해서 함께 나아갈 도민들이 공감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민선6기도 내내 같은 지적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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