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택 감독이 왜 거장인가? 되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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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 감독이 왜 거장인가? 되묻고 싶다
  • 충북인뉴스
  • 승인 2015.04.29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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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소설을 영화화한 <화장>…연기는 어색하고 내용은 지루했다
▲ 김규원

애매한 팝콘
김규원 충북발전연구원 연구위원

아내가 암으로 죽었고 검은 색상의 전통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상여를 메고 지나간다. 영화 <화장>은 과거와 현재가 중첩된다. 죽어가고 있는 아내(김호정 분)를 정성껏 병간호하는 광고회사(자본주의의 꽃이라는 광고회사로 설정한 것은 의미가 있어보임) 오상무(안성기 분)는 경력사원으로 입사한 추은주(김규리 분)를 은밀히 연모한다.

아내는 죽음을 섹스로 외면하려고 하고 딸(전혜진 분)과 사위(연우진 분)는 喪妻한 아버지를 장례식장에 남겨두고 살아있음에 자정쯤 집으로 돌아간다. 장례식장에 찾아온 부하직원은 내면기행과 가벼워짐이라는 두 개의 광고카피를 신제품용으로 내놓고 결정을 해달라고 요청한다. 이른바 욕망 혹은 섹스에 대한 시선을 통해 죽음과 삶에 대한 해석이 엇갈리는 부분이다.

공감할 수 없는 연기

▲ 화장 Revivre , 2014
감독 임권택
출연 안성기 , 김규리 , 김호정 , 전혜진

임권택 감독이 연출한 많은 영화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최신 영화 <화장>은 2004년도에 이상 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김훈의 동명 원작을 소재로 했다. 배우 안성기의 연기는 참으로 어색했다. 배창호 감독의 <고래사냥>에서 민우역으로 나왔을 때의 모습이나 <화장>에서 오상무역이나 그다지 큰 차이가 없음은 나만의 생각일까. 김규리의 연기는 화려했으나 공감이 없이 혼자서 예쁘고 서툴렀다. 이것이 거장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영화인 <화장>에 대한 나의 짧은 연기 평으로 자평하고, 다음 원작소설.

나는 영화를 보기 전 소설을 읽었다(왠지 잘난 척 하는 듯) “운명하셨습니다.”

‘당직 수련의가 시트를 끌어당겨 아내의 얼굴을 덮었다’로 시작하는 원작은 기교 없이 짧으면서도 강렬한 김훈 특유의 문장이 거기에 있었다. 영화적 재미를 위해 원작 언급은 끝.

이번에는 감독 이야기. 임권택은 6·70년대 작품인 <원한의 두 꼽추>, <애꾸눈 박>, <속눈섭이 긴 여자> 등을 통해 통속적인 통쾌한 재미를 보여주었으나 <길소뜸>과 <티켓>이 보여준 사실주의적 성향을 거쳐 <아제아제바라아제>와 <서편제>, <취화선>을 통해 예술지상주의적 성향을 보이며 <화장>을 통해 마침내 임권택의 영화는 지루하다 못해 안타깝게 느끼는 관객들의 보편적 감성 형성에 큰 기여를 한다.

주지하다시피 <서편제>와 <취화선> 등은 해외영화제에서의 호평을 전제로 혹은 글로벌화와(글로벌라이제이션도 아니고 글로벌化 란 참으로 한글의 효율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인 듯) WTO체제 하의 상황을 예단하여 공공영역에서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을 받았고 당시 우리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서슴없이 내 돈 내는 단체관람을 가서 집단적 감동을 받았으며 조금의 부정적인 반응도 용납되지 않았다. 이른바 임권택의 영화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불만, 불평이 있으면 매국노로 치부되던 시절의 기억을 심형래의 <용가리>와 <디 워>에서 그리고 황우석박사와의 추억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래서 이른바 세계가 극찬한 영화, 진정한 마스터만이 만들 수 있는 영화, 인생, 죽음, 사랑에 대한 성숙하고 강렬한 시선 그리고 4월, 이 남자가 흔들린다는 광고문구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지루함과 재미없음을 예단할 수 있음에도 굳이 시간을 내어 영화를 본 것은 나의 생각에 대한 검증의 차원도 있었고 소설과 다른 영화만의 문법 특히 임권택 감독의 영상문법에 대한 독해를 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욕심이었다. 좀 야박하게 말해서 아무것도 없었다. 문법은 있으나 문장이 없었고 ‘내가 죽었으면 좋겠지 당신 마음에 있는 사람이 누구야 말해’라고 절규하는 여배우(김호정)를 연출하였으나 글은 없었다.

언젠가 한 작은 영화 공부모임에 초대된 임감독은 영화계 입문동기를 묻는 대학생들에게 먹고 살려고 전쟁통에 영화판에 들어갔다는 말로 생존과 생활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그래서 이 분은 반공영화를 만들었고 반공영화의 한 축인 액션이 6·70년대 영화산업의 본격적인 성수기에 큰 이윤을 가져다 준 것은 맞는 추론일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삶과 죽음을 주제로 하여 부인과 추은주, 개사료와 국물밥, 남편과 딸과 사위, 나와 남을 구분하는 영역에 뜬금없이 질투라는 영역을 대입시켰음은 참으로 한심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정말 당신이 마스터이고 거장이신가 묻고 싶다.

문법은 있지만 문장이 없다

영화 후반부 오상무가 ‘내면기행’과 ‘가벼워짐’이라는 광고카피 중에 택한 것은 가벼워짐이다. 한없이 가벼워짐은 어쩌면 중력을 거슬리는 것, 죽음에 맞서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동시에 이는 지극히 천박한 행위로의 진입을 말하는 것으로 늘 죽음이 가까이 있음을 알지만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는 모른다는 원작 소설의 말과도 통한다.

어색함은 전통상복색상을 검은색으로 한 것뿐이 아니다. 원작에는 없는 화려한 색상의 현대무용을 하는 장면 역시도 죽어가는 아내는 사실적으로 젊은 여자는 몽환적으로 그렸을 것이라는 공감보다는 생뚱맞다. 또한 추은주가 남편을 따라 외국을 나가게 되어 사직인사를 하러 오상무가 있는 별장을 방문하는 장면 역시도 그냥 어색할 뿐이다.

임권택 감독의 <화장>이 삶과 죽음과 욕망을 보여주는 방식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다. 원작에는 없는 아내와의 처절하거나 혹은 말도 안 되는 섹스장면 역시 어색하고 생뚱맞으며 왜 그랬을까이다.

그러나 이러한 장면의 이해는 임권택의 전작인 <안개마을>에서 수옥(정윤희)을 범하는 깨철(또 안성기네. 쿨럭)의 욕망과도 일치한다. 따라서 이 영화 <화장>을 지루하거나 혹은 답답하게 보아도 나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크크) 기르던 개 보리를 꼭 죽였여야 했을까? 그렇다. 삶과 죽음을 대비하려는 원작자의 의도가 그러하므로 안타깝지만 그러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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