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불성설 ‘임꺽정 문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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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불성설 ‘임꺽정 문학제’
  • 충청리뷰
  • 승인 2015.07.16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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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로 편지/ 류정환 시인
▲ 상당로 편지/ 류정환 시인

사람들이 도대체 염치를 모른다고 탄식하는 말을 심심찮게 듣는다. 옛날에는 그게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는 뜻일 게다. 사전을 뒤적여보니 염치란 ‘체면을 차릴 줄 알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고 적혀 있다. 우리 사회에서 염치없는 부류를 꼽으라면 십중팔구는 정치판을 떠올릴 것이다. 염치를 운운하며 물렁하게 처신하다가는 권력을 잡을 수 없고, 권력을 쥐더라도 오래 누릴 수 없을 테니 그러하기가 십상일 것이다. 딱하지만 이해는 할 만하다.

괴산지역에서 ‘임꺽정 문학제’를 열고 ‘임꺽정 문학상’을 제정하여 시상하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 ‘염치없다’는 말을 떠올리며 웃고 말았다. 얘긴즉슨, 괴산 출신 충북도의원이 나서서 지역 문인단체에 행사를 주관하도록 하고 괴산군에 예산 신청을 하면 도에서 추경을 세워서 지원하도록 한다고 말을 맞췄다는 것인데.

임꺽정은 경기도 양주에서 백정으로 태어나 화적(火賊)으로 죽은 사람이다. 그런 인물이 홍명희 대하소설 <임꺽정>으로 부활해서 괴산과 연을 맺고, 오늘날 한 고을을 상징하는 마스코트 자리까지 꿰찼으니 입신 치고는 희한한 입신이다.

아무튼 작가가 아니면 괴산과 아무 연관이 없는 도적놈을 관청이 앞장서 군의 마스코트로 모신 것만 해도 희대의 코미디라 할 수 있겠는데, 문학제에 문학상까지 만들어 기리겠다니! 임꺽정이 이끄는 무리가 관아의 창고를 털어 빈민에게 나눠주었다는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설’일 뿐이다.

임꺽정이 체포되었을 무렵의 <조선왕조실록>을 기록한 사관이 ‘정치의 잘못이지 도적이 된 백성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적었던 것처럼, ‘의적설’은 관리들의 탐학에 지친 백성들의 비원과 여망의 소산일지도 모른다.

설령 그가 실제로 의적이었다 하더라도 <임꺽정>은 그 여부가 중요한 소설이 결코 아니다. <임꺽정>을 둘도 없는 고전으로 꼽는 이유는 조선의 정서와 풍속을 재미있는 우리말로 풍성하게 그려냈기 때문인데, 소설을 읽지 않았다면 모를까 읽고서도 ‘임꺽정 문학제’를 운운하는 거라면 사람이 모자라거나 다른 속셈이 있는 게 틀림없을 터이다.

홍명희 문학제는 소설 <임꺽정>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엄혹한 일제치하에서 그런 대작을 집필했던 작가정신을 기리기 위한 순수 문학행사로 20년째 치러오고 있다. 그런 행사에는 한사코 예산을 지원할 수 없다며 다수 의석을 차지한 여당 도의원들 눈치를 보던 충북도가 의원님 입김에 어정쩡하게 추경을 편성하는 처지가 됐다는 것인데, 도정을 그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집행할 리가 있나 생각노라니 참 난감하고 당황스럽다.

또 애당초 홍명희 문학제 공동개최 제의를 거절했고, 홍명희 문학제가 열리는 동안 부지깽이 하나 드는 일 거들지 않고 강 건너 불구경으로 일관한 문학단체가 굳이 생뚱맞은 행사를 만들어 치르겠다고 고집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괴산 지역의 보훈단체에서 홍명희 문학제 개최를 극구 반대하는 마당에 나온 궁여지책이리라 여겨 보면서도 앞뒤가 여간 석연찮은 게 아니다. 설마하니 작가는 쏙 빼고 작품만 가져다가 관청 예산을 타내는 구실로 삼겠다는 건 아닐 거라고, 염량(炎凉)을 가리는 세태가 손바닥 뒤집듯 하는 시절이라 해도 문학을 한다는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알량하진 않을 거라고 믿어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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