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고] ‘특별법을 만들면 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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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고] ‘특별법을 만들면 뭐하나’
  • 홍강희 기자
  • 승인 2004.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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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강희 자치행정부장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신기남 열린우리당 의장 부친의 친일행적 등으로 어수선한 하루하루가 이어지고 있다. 이럴 때 가장 흔히 하는 말인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렸을 때 어떤 결과가 오는가를 현실은 보여주고 있다. 친일문제도 친일문제려니와 우리 주변에는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잊혀져가는 역사가 있다. 바로 영동 노근리의 미군양민학살사건이다. 많은 사람들은 2001년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내고 올해 2월 특별법까지 만들어진 이 사건이 해결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답보상태에 놓여 있다.

 정부는 노근리사건희생자심사및명예회복위원회(위원장 이해찬 국무총리)를 만들고 지난 7월 6일부터 10월 5일까지 행정자치부와 충북도, 영동군에서 희생자와 유족의 피해신고를 받고 있다. 한 보도에 따르면 지난 16일까지 이 창구에 접수한 사람은 모두 136명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지난 99년에도 정부는 피해자 접수를 받은 바 있다. 이 때 248명이 접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근리미군양민학살사건대책위의 정구도 부위원장은 “피해자 접수를 받고 심사도 하지 않은 채 방치했다가 진상조사 과정에서 문제를 제기하자 다시 접수를 받고 있다. 노근리사건은 이미 2001년 진상규명보고서까지 나왔다. 더 큰 문제는 이 사건을 과거사진상규명특위에 포함시키려 하고 있다는 점이다. 열린우리당의 안영근 의원이 언론에 이런 이야기를 해서 대책위도 면담 요청을 해놓은 상태다. 이 문제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이미 진상보고서도 나왔고 특별법까지 제정된 노근리사건을 진상규명조차 되지 않은 다른 사건과 합친다면 매우 큰 문제”라고 주장했다.

 실제 여러 언론 보도를 종합해 보면 ‘말 많은’ 과거사진상규명특위에서는 제주 43사건과 거창 노근리 여순 함평사건 등 한국전쟁을 전후해 벌어진 민간인 피해사건을 다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노근리사건을 알리고, 이에 대한 조사를 벌여 특별법이 제정되기까지에는 무수한 세월이 흘렀다. 정 부위원장의 아버지인 정은용 위원장이 지난 94년 노근리사건에 관한 책을 낸데 이어 두 父子가 미국에서 이 사건을 취재한 종군기자의 기사를 발견하고서도 정부는 5년 뒤인 99년에 나섰다. 그리고 피해자 조사, 진상규명, 추모사업과 명예회복 요구, 특별법 제정 요구 등의 지난한 일들이 이어졌다. 만일 이 사건이 과거사진상규명특위에 포함된다면 이런 지난한 일들을 다시 해야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대책위가 주장하는 피해자 명예회복과 추모사업은 언제 이루어질지 기약할 수도 없다. 특별법이 제정됐다고 좋아하던 피해자 유족들은 다시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1950년 7월 조용하던 영동 노근리에는 나흘동안 총성이 이어졌다. 북한군에 밀려 퇴각하던 미군은 쌍굴다리 앞 철길과 다리 아래에서 피난가던 양민들에게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이로 인해 죽거나 다친 사람이 최소 250명 정도 되는 것으로 전해졌으나 정확한 피해규모는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그 중 노약자나 부녀자, 아이들이 많은 수를 차지한 것을 보면 미군은 무고한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사살했음을 알 수 있다. 늙은 아버지를, 아니면 어머니, 형제, 자매를 하루 아침에 잃고 50여년 동안 가슴에 묻었을 가족들을 생각한다면 정부는 하루빨리 특별법 제정에 걸맞는 일을 추진, 피해자들의 응어리진 가슴을 풀어줘야 한다. 어느 때보다 역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게 하는 요즘, 영동 노근리사건을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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